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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한 시간의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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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한 시간의 여유
  • 의약뉴스
  • 승인 2016.02.25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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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대로의 생각이 있었다. 어차피 일행들과 오늘 일정을 같이 하기는 어렵겠다고 나는 전시장에 들어설 때부터 다른 마음을 품고 있었다.

모처럼 찾아온 이 기회를 내일봐도 혹은 모레 봐도 아니면 영영 안본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곳을 휴일이라는 이유로 배회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일행들과의 대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과 나누는 대화는 어제해도 괜찮고 오늘해도 문제가 없고 내일해도 된다. 아니면 영원히 안한다고 해서 아무런 걸림돌이 없다.

시장상인들이 하는 말과 진배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 하면 일행에 대한 모독 일 수 있지만 그런 하나마나 한 대화가 벌써 여러 차례였다. 그러니 대화를 통해 인생이니 철학이니 이념이니 하는 것들은 애시 당초 기대 밖의 일이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오늘은 핑계거리도 있다.

보고 싶었던 전시회에 시간을 낭비한다고 해서 딱히 손가락질 할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들의 대화는 맥이 없었지만 마음은 착하고 어느 정도 자존심도 있어 자신들만의 일정대로 움직일 수는 있는 그런 위인들이었다. 

나는 카톡으로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아 미안하니 거기는 거기대로 움직이라고 말했다. 다만 점심은 같이 먹어야 하니 자리를 잡으면 연락해 달라는 메시지를 오늘은 내가 쏜다는 말을 덧붙여서 남겼다.

그러니 홀가분하게 나는 혼자 전시를 즐겼다. 실컷 의자를 감상하고 나서도 나는 다시 어느순간 의자 앞에 멈춰섰다. 의자가 뭐라고, 문화유산이나 장신이 손때가 묻어 골동품의 가치도 없는 공장에서 기계로 찍은 그런 의자가 뭐라고 내가 다시 그 자리에 섰는가.

하지만 달리 보인다고 생각하니 달리 보였다. 누가 앉느냐에 따라 의자의 가치는 달라졌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인류에게 큰 위안과 공포와 기쁨을 주었던 거장의 의자 앞에 나는 또한 번 잠시 경건하기보다는 주눅이 들었다.

그는 감히 범점하기 어려운 감독이었고 한마디로 그 방면의 천재였다. 천재는 아니지만 천재를 알아보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보통사람들이 천재라고 느끼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 사람의 위치에는 오를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자의 고뇌는 심각해 때로는 깊은 우울에 빠져 들기도 하고 그것이 원한이 돼 사사건건 시비를 걸기도 한다.

나는 평생 그와 대면할 일이 없기 때문에 시비를 걸 일은 없다. 우울증에 빠질 일은 더더욱 없다. 내가 그 일에 종사하는 경쟁자도 아니고 설사 경쟁 한다 해도 거기에 범접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순간 스스로 포기하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감시자가 없는 틈을 이용해 나는 까치발을 딛고 의자다리를 한 번 슬쩍 만져 보았다. 그런다고 무슨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그런 인간이었다. 그 순간에 카톡으로 일행의 답장이 왔다.

언제나 친절한 그들은 마음껏 구경하라고, 우리들은 신경쓰지 말라고 안심시키면서 식당의 위치도 전시실과 가까운 곳으로 예약해 놓았다고 이름을 알려 주었다.

그 식당은 전에 내가 한 번 가본 곳이어서 이곳에서 한 시간 정도 더 둘러보아도 될 만큼 여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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