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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나라야마 부시코(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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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나라야마 부시코(1983)
  • 의약뉴스
  • 승인 2012.06.24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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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높고 계곡은 깊다. 가을이다. 낙엽진 오솔길은 운치가 있고 붉은 단풍은 바람에 날린다. 지게를 탄 노인은 행복해 보인다.

죽음에 이르는 길이 이 정도만 같으면 한 번 죽어봐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만산홍엽의 절경은 슬픔을 더욱 키우는 도구일 뿐이다. 그래서 더 처연하고 구슬프다. 나이든 어머니를 나라야마에 버리는 아들의 심정은 담담하다.

일본인 감독 이마무라 쇼헤이는 '나라야마 부시코'를 통해 삶과 생활 섹스 그리고 죽음을 노래했다.

영화는 정말 노래로 시작해 노래로 끝나는 듯 하다. 69살의 노인 앞에서 70살에도 죽지 않고 살아있으면 이빨이 33개나 달린 귀신이라고 아이들은 동요를 부르듯이 합창을 한다.

사는 것이 짐이다. 가난 때문이다. 남의 일 같지 않다. 오늘날에도 많은 노인들이 자식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며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간다. 세월은 흘렀어도 지독한 가난은 방식만 다를 뿐 죽음과 깊은 연관이 있다.

이제 죽을 때가 됐는데 그래서 더는 거동을 하지 못해야 하는데 육신은 너무나 싱싱하다. 오린( 사카모토 스미코 분)은 건강한 자신이 너무 밉다. 그래서 몰래 돌로 이빨을 까고 절구통에 부딪쳐 생이빨을 부순다.

오죽하면 그럴까. 그런데 이 정도는 약과다. 죽은 사내아이의 시체가 논두렁에 널부러져 있다.

기근에 감자를 훔쳤다고 한가족을 생매장하는 장면은 끔찍하다 못해 소름이 끼친다. 오린은 손주를 임신한 아들의 신부감을 죽음의 수렁으로 밀어 넣는다. 이 가난한 마을에서 죽음은 흔한 일이다.

 
그리고 어느 날 오린은 아들 타츠헤이 ( 오카타 켄 분) 에게 나라야마에 가자고 통보한다. 나라야마는 멀고도 먼 길이다. 엄마는 죽으러 가기전에 집안 청소도 하고 새로 온 며느리에게 물고기 잡는 법 등을 가리킨다. 새옷으로 갈아입고 먹을 것도 챙겼다. 이제 죽음을 위한 만반의 준비는 끝났다.

아들은 어머니를 지게에 태우고 이제 가면 더는 되돌아 올 수 없는 멀고 먼 길을 떠난다.

가는 길은 험하지만 산세는 수려하다.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다. 앞 부분을 건너 뛰고 그 장면만 보면 효심깊은 아들이 노모를 위해 산천여행을 하는 것이라고 오해할만하다. 그만큼 감독의 수완이 뛰어나다. 까마귀가 운다. 죽음을 알리는 장송곡이다.

주변에는 뼈들이 널려 있다. 시체에서 까마귀가 나온다. 아들과 어머니는 무심한 듯 바라본다.

그리고 마침에 나라야마에 도착했다. 아들은 가지고온 음식을 어머니에게 주지만 엄마는 한사코 거부하고 아들의 지게에 음식 보자기를 걸어준다. 나라야마에 가서는 돌아보지 말라는 어른들의 충고도 무시하고 아들은 한 번 뒤돌아 본다.

어머니는 태연하다. 모자는 한 동안 껴안고 말이 없다. 떨어지지 않는 아들에게 엄마는 철석 따귀를 갈긴다. 아들은 발길을 돌린다.

돌아오는 길목에서 타츠헤이는 새끼줄 그물에 짐승처럼 묶인 한 노인이 살고 싶다고 발버둥 치는 모습을 목격한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벼랑으로 밀어 떨어 뜨린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길은 무겁다.

그러나 어느 순간 눈앞에 흰눈이 펑펑 쏟아 진다. 눈이다. 첫눈이다. 휴양림의 집처럼 멋진 집들이 눈속에 파묻힌 첫장면 처럼 그런 흰눈이 펑펑 내린다.

아들은 돌아서서 어머니에게 간다. 엄마는 가부좌를 틀고 기도를 한다. 집에 온 아들은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따뜻한 음식을 먹는다. 엄마를 갖다 버린 아들이 불효자가 아닌 것 처럼 보인다. 엄마도 아들을 탓하지 않고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다.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일본판 고려장은 어찌보면 해피핸딩이다.

사는 것이 죽는 것 만큼이나 힘들어 괴로울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진한 섹스는 참 볼만하다.

어릴적 시골에서 보았던 독이 없고 몸길이가 매우 긴 구렁이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쥐 올빼미 사마귀 개구리 노루 등 온갖 동물들이 등장하는 장면들은 테렌스 맬릭 감독의 전쟁영화 씬레드라인( 백채기의 내생애 최고의 영화 4번에서 소개) 과 겹쳐 지면서 삶과 죽음을 이어주는 끈처럼 보인다.

국가: 일본

감독: 이마무라 소헤이

출연: 사카모토 스미코, 오가타 켄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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