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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6 00:17 (금)
5. 인천지부 '김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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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인천지부 '김사연'
  • 의약뉴스
  • 승인 2003.1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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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남동구분회장 김사연(53) 씨는 특이한 경력이 있다. 지금도 발행되고 있는 '월간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정식 등단한 문인약사이다.

김 회장은 "이번 기회가 약사로써 봉사하는 마지막이 될 것 같아 출마를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누구나 인생을 끝낼 때는 노자 돈 '동전세잎'만 필요하면 된다" 며 "지나친 욕심이 세상사를 어렵게 만든다"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 동전세잎을 자주 생각하나.

" 지금 세상이 너무 물질 만능으로 흐르고 있다. 하지만 생전의 부를 저 세상으로 다 가지고 갈 수 없다. 부자나 빈자나 저승길에는 누구나 동전세잎만 필요하다.

자주 생각하기보다는 늘 생활 속에서 자신을 반성한다. 살아있을 때 열심히 살고 그런 과정을 통해 물질보다는 보람된 일을 찾게 되는 것이다."

- 출마의 변은 지부장이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가.

" 이번 기회가 약사로써 약사에게 봉사하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79년인가 민관식 회장 당시 대약 새마을사업위원회 홍보위원으로 약사회무를 시작했다.

그 후 이런 저런 임원을 거쳐 분회장이 됐다. 하지만 분회장의 역량으로 무슨 일을 한다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 정말 열심히 일했다. 자화자찬 하는 것 아니다."

_ 언제부터 분회장을 했나.

" 93 년부터 이니 많은 시간이 흘렀다.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회비를 한푼도 사용하지 않고 전부 사비로 충당했다. 그러니 다른 분회장 들의 시기가 좀 많았겠나.

하지만 나의 지론은 회비는, 정말 피땀어린 회비는 꼭 필요한 곳에 쓰여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약국만 운영해서는 이렇게 못한다."

- 재산이 많은가.

" 근처 만수동 일대에서 11대가 살았다. 증조부 조부 등이 재산을 많이 남겼다. 땅부자 이지만 남들처럼 땅을 팔아서 다른 곳에 쓴 것이 아니라 나는 땅을 팔면 다시 땅을 샀다.

내가 대학을 8년만에 졸업한 것은 땅을 팔지 않고 벌어서 학비를 충당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동생도 대학생이어서 학비에 쪼들릴 수밖에 없었다. 동생은 뉴욕은행 한국지점장을 하기도 했다. 그 많은 땅은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됐다.

나는 이런 구멍가게( 실제로 그의 약국은 70년대의 약국처럼 보였다. 간판은 꼬질꼬질 때가 묻었고 천장의 형광등은 가물거렸다. 사방 벽은 낡은 벽지로 색이 바래 곰팡이 냄새까지 났다.) 로 생활하지 않는다. 임대료로 산다."

- 인생역정을 말해달라.

" 다른 삶도 그렇지만 내 삶도 평탄치 않았다. 6.25가 나던 해 태어났다. 3일만에 대퇴부고관절염을 앓았다.( 그는 지금도 제대로 걸음을 걷지 못한다.) 치료를 못해 지체장애 4급 판정을 받은 장애인이다. 부친은 전쟁에서 보름만에 사망했다.

그 후 나는 일만 했다. 땅부자가 일부자 아닌가. 하지만 나는 장애를 몹시 비관,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대학 1년 휴학 중 청산가리를 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철이 없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 자랄수록 몸에 더욱 심한 장애가 왔다.

이성 문제가 가장 큰 문제였다.( 그는 본부인과 이혼 후 화가 여성과 재혼해 늦둥이 딸을 두고 있다.) 여자들은 대개 배신의 길을 걸었다. 마음적으로 너무 견디기 힘든 시기였다. 다른 사람과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

- 다른 생각이란 뭔가.

" 나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한다는 것이다. 나를 제쳐놓는다. 약사회 모임 등 약사관련 일을 할 때 나는 나의 이익 보다는 다른 사람의 이익을 먼저 생각한다. 대국민 이미지가 좋아진다면 나도 그런 것에 한 몫 했다고 자부하고 싶다.

나는 매년 한번씩 해외 여행을 가는데 그 때마다 임원들에게 선물을 한다. 립스틱이다. 임원들은 내가 오면 으레 선물을 받는 것으로 생각한다. 내 선물은 못사도 다른 사람을 챙긴다. 이것은 습관이다."

-사회봉사도 활발한가.

"그런 편이다. 지난해에는 남동구 구민상을 받기도 했다. 구청 동사무소 검 경에 인맥이 많다. 회 차원의 무료투약을 진두 지휘하면서 쌓아 논 인간관계다. 전에는 한 초등학교에 장애 인 이면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학교에서는 자신들이 주고 싶은 사람을 골라 상을 줬다. 나는 그것이 싫어 그 후 지원을 끊었다. 한 번은 약국이 철거 대상으로 지정돼 3일 후면 철거될 운명에 처하게 됐다. 그런데 대약에서 전남지역으로 무료 투약을 가자고 연락이 왔다.

나는 만사를 제켜 놓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돌아와 보니 약국은 엉망이 돼 있었다. 약국을 하는 것 보다 무료투약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나 하나 희생해 그것이 방송에 나오고 신문에 나면 약사 위상이 높아지는 것 아닌가."


- 분회장으로 기억 남는 것은.

" 화합과 단결이다. 93년에 회장 당선되고( 전임 회장이 한약분쟁 와중에서 증발됐다고 그는 말했다.) 나서 94년부터 '촛불지'를 냈다. 현재 103호까지 진행중이다.

총무에게 책을 내는데 도와 달라고 하니 술을 사주면 원고를 쓰겠다고 하는 등 영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타자치는 것 등 스스로 배워 9년째 했다. 회원 134명에 우선 발송하고 나머지는 인천지역 임원들에게 무료로 공급했다.

내가 회원단합이라고 쉽게 말한 것은 1년에 한번 부부동반으로 단합대회를 여는 등 회원일체감을 위해 노력해 왔기 때문이다. "

- 단합을 저해하는 회원들은 없었나.

" 말도 마라. 난매를 치거나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약사법위반 사범도 많았다. 그런 경우 세무서에 연락해 탈세여부를 조사하게 하고 정말 피나는 싸움을 했다.

회칼로 떠죽인다는 협박도 받았다. 나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손에 돌멩이를 들고 다녔다. 한 회원이 만족하면 더 많은 다른 회원은 고통받는 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 회원들의 민심은 어떤가.

" 솔직히 임원 몇몇만 알고 나머지는 자세한 것을 모른다. 그래서 촛불지 등도 만들고 했다. 회원이 회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을 알아야 회무에 참여하지 내용을 모르는데 동참할 리가 없다. 회보를 통해 참여를 독려하고 있어 과거에 비해 관심도가 높아졌다."


-이쉬운 점은 없나.

" 약사들은 이기적인 경우가 있다. 특히 분업 후 서로 양보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선배고 후배고 동무이고 간에 처방이 있다 싶으면 무조건 치고 들어온다.

과거에는 난매가 문제로 동네약국이 어렵더니 이제는 처방전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는 아우성이 일고 있다. 도덕윤리나 인간미가 없다. 이런 것을 꾸준히 개선하려고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 당선을 확신하나.

" 그럴 것으로 본다. 하지만 다른 후보들도 다 유능한 사람이라 결전을 치러봐야 알 것 같다. 감이 좋은 것은 사실이다. 나름대로 수 십 년간 약사회를 위해 봉사해 왔다. 나를 알아주는 회원이 많다면 당선되는 것 아닌가. "

- 당선된 후의 활동은.

" 우선 감시체계를 바로 잡겠다. 약사들은 범죄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소한 것으로 전과자로 낙인찍힌다. 돌출간판 하나로 몇 년간 밀린 세금을 한꺼번에 내기도 한다. 해도 너무하다. 당선되면 우선적으로 이런 것을 고쳐나가겠다.

약사는 필요한 사람이고 약국은 필요한 시설이라는 것을 알려야 한다. 그런 것은 국회의원들이 하니 나같이 발이 넓은 사람이 국회의원들을 만나 활동해야 한다. 또 언론 등에 활발한 기고를 해 약사위상을 높이도록 하겠다. 지금도 지역 일간지에 컬럼 등을 쓰고 있다. "


- 대관업무는 어떤가.

" 관내 인사들과 친분이 두텁다. 한 번은 경찰서장이 연락이 왔다. 체했는데 힘드니 빨리 들어오라고. 그래서 경찰서에 가서 손도 따주고 소화제도 줬다.

화색이 돌았고 차 타는 곳에 까지 와서 안내해 줬다. 다음날 다시 들어가니 복분자 술도 주면서 고마움을 표했다. 경찰에서 이런 환대를 받는 것은 그만큼 나에 대한 신뢰일 것이다. 이런 일들을 나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한다. 지금 그 경찰서장하고는 아주 친밀하게 잘 지낸다.

나는 돈으로 로비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된 마음으로 로비를 한다. 내가 약국해서 돈 벌 재주는 없지만 자존심 버리고 약사의 일이라면 어디든, 어떤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는 일은 자신 있다. 개인을 위한 행동이 아닌 회원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이니 회원들이 나에게 표를 주지 않겠나.

분업 초에는 처방을 한 3백 건 정도 받았다. 근처에 약국이 없어 전부 처방이 몰렸는데 다른 사람 같으면 죽자고 했을 텐데 나는 후배에게 의원 근처에서 오픈 하도록 밀어줬다. 그 뒤로 하루 10건도 처방이 안나온다. 그래도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

-지지 세력은.

" 98년 구의원 선거에 나왔다가 떨어졌다. 말로는 다 나를 지지 한다고 했는데 투표함을 열어보니 그렇지 못했다. 부인도 누구를 찍는지 모르는 것이 선거다. 분회장으로 최선을 다했으니 기다려 봐야 한다."

- 장 ·단점은 .

"나를 버리는 것이다. 모든 것을 상대방에게 다 준다. 단점은 집착하면 나름대로의 고집이 있다. "

- 중도 포기 없나.

" 끝까지 간다. 단일화 어렵다. 대학단일화는 이미 물 건너 갔다. 작년에 성대 인천 지역 동문회장을 내놓은 것도 선거에 전념하기 위해서이다.."

-가족관계는.

" 모친과 서양화가인 부인이 있다. 큰 놈은 군 제대후 서강대를 졸업했다. 둘째는 연대 치대 본과 1년생이다. 몸 때문에 가정이 파탄나 다시 결혼했다. 초등학교 2학년 늦둥이 딸이 있다."


김사연 남동구 분회장은 "비록 몸은 불구이지만 회원을 위한 봉사정신 만큼은 누구 보다고 강하다" 면서 "회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중도 포기는 없다" 며 "이번 기회를 통해 자신의 수 십 년 회무 결과에 대한 평가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 사랑하는 여인의 연속된 배신으로 한때 죽음을 생각했을 만큼 여리기도 했으나 분회장을 10 년 간 하고 있는 그가 약사회 사상 첫 문인 지부장으로 다시 태어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bgusp@news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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