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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울시약 '권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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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울시약 '권태정'
  • 의약뉴스
  • 승인 2003.1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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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40매) 권태정(53) 서울시약 정책단장(동네약국살리기운동본부장)이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서울지부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그는 강한 비판의식, 행동하는 양심, 과감한 추진력 등을 무기로 남성 후보자들을 제압한다는 자신감에 넘쳐 있다.

여성스러움보다는 남성의 다이나믹한 힘이 느껴지는 것은 그의 평소 언행 때문일 것이다. 거침없이 휙휙 자동차 핸들을 돌리는 과감한 결단성에 회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 출마의 변을 들려달라.

" 지금은 누구나 유권자가 좋아하는 말만 한다. 미사여구를 동원해 내가 이런 사람이다라고 선전한다. 하지만 한 사람의 평가는 그의 말을 통해서가 아니라 과거 행적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다.

후보자는 그가 어떤 자리에서 어떤 말을 했고 행동했느냐가 중요하다. 후보자라고 등장하는 사람들이 너무 자신을 미화하는 것을 보고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과거 나의 행적에 대해 평가를 받고 싶다. 나는 진실 된 말을 하지 않거나 신의에 어긋난 행동을 하지 않았다. 말 또한 미화하지 않고 진실만을 전달하겠다. 회원들은 엄격한 잣대로 제대로 본다." (그는 말대로 거침없이 말했다. 거기에는 나만큼 깨끗하고 진실한 후보가 있겠느냐는 자신감이 뒷받침 된 듯 했다. 얼굴은 생기가 돌고 목소리는 우렁찼다.)

- 답변을 못 알아 들어 두 번 질문하는 경우는 없을 것 같다. 원래부터 목소리가 큰가.

" 성격 탓이다. 나는 고향이 경북 안동이다. 그곳에서 태어났다. 낙동강에서 세수하고 수영했다. 종갓집 며느리다. 유교의 본고장에서 자라 예절이 무엇인지 안다. 유교가 여성을 얽매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주 평등하다. 능력만 있으면 남녀 차별을 하지 않는다.

정직과 신의의 교육을 철저히 받았다. 그래서 여자지만 돌림자를 쓰는데 '태'(泰)자다. 남편에게서 철저한 교육을 받았다. 나는 어릴적 부터 행동이 바랐다. 좋은 곳에서 자라고 행동해서인지 매우 건강하다. 나는 원래가 잠이 없는 여자다. 하루 3시간 수면으로도 하루 일정을 아무 문제없이 소화한다. 강철체력이다. 보통 새벽 3시경에 잔다."

- 그 시간까지 잠 안자고 뭐하나.

"주로 책을 읽거나 낮 동안 있었던 것들을 정리하기도 한다."

-약사회와는 언제부터 인연을 맺었나.

" 내가 회무와 연을 맺은 기간이 25년이다. 영등포분회 대방반 부반장부터 시작했다. 김명섭 의원이 회장으로 있었던 시기에 활동했다. 김회장이 국회의원에 출마한다고 했을 때 첫 약사선량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선거운동 참 열심히 했다. 나는 뭐든지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그는 동네 주민들에게도 잘못하면 쓴소리를 마다 하지 않는다고 했다.)

- 별명도 많을 것 같다.

" 호랑이다. 동네 사람들이 그렇게 붙여줬다. 회무를 시작할 당시는 중동 특수가 일 때였다. 아빠(남편)가 건설회사와 관련 있는 직업이어서 그쪽 사람에게 부탁해 사우디 등으로 동네사람들을 많이 보냈다. 사우디서 보내주는 돈으로 어떤 사람은 열심히 저축하기도 하는데 또 어떤 사람은 헤픈 행동으로 돈을 다 날리기도 했다. 나는 그런 꼴은 못 본다. 악을 쓰고 다니면서 정신차리라고 독려했다.

호랑이는 이 때문에 생긴 별명이다. 그 사람들은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어도 약을 살 때는 꼭 우리약국으로 온다. 단골이 된 그들은 나를 볼때마다 그때 약사님이 야단치지 않았으면 지금 같은 생활을 할 수 없었을 거라고 감사해 한다.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다."

- 이름 권태정으로 3행시를 지어 '권태로울 때마다 나타나서 정신없게 만드는 여자'라고 하기도 한다는데 들은적 있다.

" 그렇다. 하지만 권태정은 '권태로울 때마다 나타나 정신차리게 하는 여자'가 더 어울리는 평가다. 별명은 초지일관이다. 상황논리를 내세우며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는 것은 권태정이의 체질이 아니다. 내 인생에서 그런 일은 없다. "

- 약사회가 뭐가 좋아 그토록 오랫동안 활동했고 앞으로도 하려고 하나.

" 부반장을 거쳐 여약사간사(지금의 여약사위원장)여약사 총부 보건위원장 한약위원장 여약사담당 부회장 시약약사위원장 시약여약사담당 부회장 분업정책단장 등을 거치면서 약사와 함께 하는 삶이 너무 즐거웠다.

특히 한약강좌를 하면서는 내가 약사라는 사실이 너무 자랑스러워 마냥 행복했다. 시어머니나 애 아빠도 공익을 위해 일하는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가족 모두가 도와줬다."

- 분회장에 도전해 보지 않았나.

" 영등포가 원래가 대가 센 곳이다. 여러 차례 권유가 있었다. 실제로 지난번에는 출마하려고도 했었다. 그때마다 대의원선거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다.

능력하고는 상관없었다. 개인적인 이유지만 나는 '약속'을 해서 못나왔다. 나는 신의를 어긴적이 없다. 의리 지키는 것은 집안내력이다."

-분회장을 거치지 않고 시약회장에 도전하는 배경을 설명해 달라.

" 이제는 직선제 아닌가. 회원에게 직접 심판 받고 싶다. 나의 살아온 과거를 말이다. 분업이 한 4년 됐나. 그동안 대약의 몇몇 임원들은 나를 분업 반대론자로 몰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김희중 회장 시절 분추협 대표로 정부에서는 수석부회장(문재빈 당시 서울시약회장 )이 참석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 분회장들이 모두 반대했다. 비판하기 어려운 인물이라는데 의견을 모은 것 같았다. 김희중 회장은 빨리 결정해야 한다고 걱정을 크게 했다. 나는 김회장에게 문회장이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사고를 갖고 있으므로 분업의 원칙을 만드는 대표로 적합하다고 말씀 드렸다. 그리고 문회장을 설득하기로 마음먹었다. 분회장들이 거부하니 문회장은 예스라고 대답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문회장이 비행기를 이용한 적이 있었다. 시간이 급박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내가 공항으로 마중 갔다. 문회장이 깜짝 놀랐다. 얼마나 힘들고 두렵겠나 그러나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용기를 줬다. 회원을 위해서 꼭 해야 한다고. 그 후 문회장은 분추협 회장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분추협이 열릴 때마다 복지부 복도를 서성였다.

약사들 잘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나! 참 심부름 열심히 한 여자다. 나를 분업반대론자로 몬 것은( 김희중 사람들이) 분업협상과정에서 원래 약사법과는 달리 자꾸 변질이 됐기 때문에 내가 그것을 지적하자 그렇게 오해한 것 같다. 대표단은 협상에서 밀리고 와서는 물컵 세 개를 그려놓고 잔이 넘치면 옆으로 옆으로 흘러 동네까지 처방전이 나온다고 했다.

적어도 한 약국이 600만원의 월수입을 올릴 수 있다고 했다. 나는 협상의 최근거리에 있었다. 이런 식으로 밀리면 다 뺏긴다. 분업에서 진 사람들은 심판받아야 한다. 그리고 회원들에게 사죄해야 한다. 그래야 약사회가 뭉쳐진다. 대약후보든 누구든 나와 함께 토론을 하면 나는 진실만을 말할 것이다. 천하를 속여도 나를 속이지는 못한다. 역사의 길목에서 나는 있었다.

나처럼 눈치 안보고 겁없이 말할 사람 있나. 권태정은 사심없다. 목숨 내놓고 한다. 약사사회에 나와 모두 봉사한다고 하지만 우리 회직자들은 깊은반성을 해야한다. 잘못인정 안하면 안된다. 내가 나서는 것은 알권리를 진실되게 알리기 위해서이다.

-대약 집행부에 불만이 많은 것 같다.

" 대약이 제일 잘못한 것은 동네약국을 살리지 못하고 죽인 것이다. 일반명 처방에서 성분명 상품명 처방으로 바뀌어도 말 한마디 못한다. 복지부 같다 와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만 한다. 그런 말은 지나가는 애들도 할 수 있다.

오죽 하면 대한약사회를 '복지부 2중대'라고 부르겠나. 도장 찍으면 안된다고 그렇게 주장했으나 먹혀들지 않았다. 정부와 대화하고 오면 설득당하고 와서 오히려 약사들을 설득했다. 나는 민초의 생각이 진실이고 하늘의 뜻이라고 여긴다.

회원의 뜻을 존중했었다면 이렇게 분업이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대약 사람들은 책임지기 싫으니 임총 열고 이사회 열어서 탕탕탕! 때리기만 한다.

회원들은 아무런 권리행사를 하지 못한다. 분통이 터졌다. 나는 두 번의 단식을 했다. 주사제 넘어갈 때 하고 성분명에서 상품명으로 갈 때 였다. 누가 뭐래도 왜곡된 분업의 책임자는 김희중 원희목 문재빈이다.

약사회 대표로 나가 이들은 담합도 막아주고 뭐도 막아주고 다 한다고 했다. 왜 정부 말만 믿나. 주사제 주고 나면 약국은 힘들어 진다고 그렇게 말렸는데도 말이다. 담합유형에 대해서도 법적인 보장을 받았어야 하는데 말만 듣고 그렇게 했다. 말은 그럴듯하게 하면서 임총 열어 다 통과 시켰다.

의협처럼 여론투표를 했어야 했다. 하지만 겁쟁이들은 이러다 분업깨진다고 벌벌 떨었다. 허탈했다. 작년 4월 동문회 기금을 모으기 위해 마포의 한 약국을 갔었는데 방마다 재고가 엄청나게 쌓여 있었다. 그 약사님은 말도 안나오고 비참해 죽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때 무능한 약사회 때문에 눈물이 났다. (당시를 회고하면서 그의 눈가에도 이슬이 맺히는 듯 했다.)

-그 후로 무슨 일 했나.

" 절망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으로 다시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약사 자긍심을 다시 세워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성분명을 주장하는 홍보책자와 포스터를 만들었다. 대대적인 성분명 운동을 전개했다. 이것은 독립운동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약사의 진정한 독립 말이다. 하지만 대약에서는 무시했다. 세계 어디서고 성분명 처방하는 곳은 없다면서 의사들의 비위를 거스를지도 모른다고 지레 겁먹었기 때문이다. 대약 관계자가 이사회에 나와서 이런 내용으로 브리핑했다. 분통이 터져 죽을 지경이었다. 대약이 앞서지 않으면 아무 일도 안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 대약도 성분명 처방을 주장하지 않나.

"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시절 성분명 처방해 주겠다고 하니 태도를 싹 바꿔 따라 온 것이다. 하루아침에 태도를 바꾸다니...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반대할 때는 무리라고 설득하다가... 아! 대약 말만 나오면... 성분명 주장하는 나를 얼마나 구박했나."

-원래 화를 잘 내나.

" 나는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한없이 약한 사람이다. 눈물이 많고 정이 많다. 하지만 공익을 위하는 일이라면 화를 낸다.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잘 안다. 반성할 일이 있으면 반성하고 고쳐나가겠다...

나를 이단자로 몰아가는 사람들 때문에 나는 4년간 매도당했다. 사람들은 나를 '투쟁의 화신'이라고 부른다. 대화와 협상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대화와 협상이 필요할 때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내 역할은 여러차레 빛을 봤다. 한 직능의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서는 협상과 대화가 안되면 투쟁해야 한다. 가시덤불을 넘어 투쟁의 길로 가는 것, 초지일관이 내 별명 아닌가."


-당선을 확신하나.

"서울이 변해야 대약이 변한다. 회원권익을 위해 누가 적임자인지 회원들이 판단할 것이다. 여성의 강인함은 남성에 비할 것이 안된다. 분업과 관련 성명서를 내고 한 것이 무려 30번이 넘는다. 대약은 그때마다 헛소리 하지 마라고 했다.

회원들은 다 안다. 대약이 주사제 넘기고 성분명 못 얻고 한 것이 누구 잘못인지. 당시에 누가 어떻게 행동하고 처신했는지 다 안다. 만나고 다니는 동네약국 약사님들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정정당당 선거전을 하겠나.

" 나는 사사로운 일로 남 씹지( 헐뜯지) 않는다. 다른 후보들도 그러기를 기대한다. 권태정이 도덕적 윤리적인 문제가 있다면 나는 사표 낸다.( 출마포기한다는 의미) 이 게임은 진실된 공약으로 좌우된다."

- 공약은 뭔가.

" 선거 몇 달 전에 급조한 공약은 아니다. 내가 어떤 과거를 살았고 앞으로 살아갈 것인가가 내 공약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회원 화합이다. 즉, 공존이다. 구체적으로는 서울회원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겠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아닌가. 건강검진을 매년 1차례씩 받도록 하겠다. 건강해야 새로운 희망이 있다.

약사들이 오히려 건강을 챙기지 않아 걱정인데 건강만큼은 책임지겠다. 또 하는 말로 끝나는 공약이 아닌 실천하는 공약 예를 들면 팜파라치를 없애겠다. 그 다음으로는 회원을 화합 시키겠다. "

- 무슨 수로.

" 포상제가 통과될 때 나는 복지부에 있었다. 하지만 나는 협상 대표가 아니었다. 대표들은 당시 최선정 장관이 가동하지 않겠다, 예산도 없다고 말했고 2년간 무사히 지나갔다. 그런데 어느 날 의협이 투캅스를 운영한다고 했다.

번개같이 머리에 스치고 지나가는 것은 포상제 였다. 나는 과천으로 달려갔다. 서초동에서 말장난이나 하고 있을 권태정이 아니다. 나는 빨리 움직인다. 복지부가 내무부 행자부로 반상회에 약국의 불법을 신고하면 포상금을 준다는 반상회보를 내려보낸 상태를 확인했다.

다음날 아침 나는 국회로 달려갔다. 김성호 장관이 신임 인사하러 국회에 와 있었다. 나는 전화로 전영구회장에게 빨리 국회로 들어오라고 소리쳤다. 10시에 전회장이 허겁지겁 왔다. 시민포상제가 이런 것이다라는 내용을 복사해서 국회에 다 뿌렸다.

어떻게 약사를 간첩 잡듯이 전단을 뿌릴 수 있나고 고함을 질렀다. 난리였다. 김명섭 회장을 보는 순간 눈물부터 나왔다. 김회장 김홍신 김성순 의원 등이 이것은 잘못됐다고 해서 무마 시켰다. 김성호 장관은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이경호 차관 불러서 약사를 이렇게 까지 해도 되느냐고 의사 사주 받고 그러느냐고 하자 저녁 7시에 회보를 거둬들이겠다고 답했다.

그때 김회장이 왜 네가 와서 그러느냐? 대약 사람들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할말이 없었다. 아침에 나가 저녁 7시까지 미친 사람처럼 행동했다. 전영구 회장과 나는 서로 눈물을 흘렸다. 국회를 나오는데 다리에 힘이 빠져 쓰러질 것 같았다. 그때서야 점심을 먹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았다."

- 그 후 대약은 어떻게 나왔나.

" 나는 이렇게 했으니 나머지는 대약이 다 알아서 해줄 줄 알았다. 내가 대약 사람들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죽기살기로 막아주기는커녕 법을 지키면 되지 뭐가 문제냐는 대꾸가 날아왔다. 다음날 긴급 분회장 회의 하고 복지부 결의대회 열고 했을 때 대약이 적극적으로 나왔으면 없어졌다. 대약 집행부는 복지부에 가서 드러누워야 했다. 하지만..."



- 중도 포기한다는 말도 많다. 대약 후보들과의 연관관계 등 왜 이런저런 복잡한 문제가 많지 않나.

"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고 그런 질문 받는다. 하지만 그런 질문은 권태정이를 너무 몰라서 하는 말이다. 내가 누구처럼 사심을 위해 출마했다면 나는 한 표가 나와도 좋다.

강한 서울시약을 만들겠다. 서울회원이 주인인 그런 시약 말이다. 나는 단식할 때 정말로 물만 먹었다. 물만 먹고 단식한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다. 3박 4일 단식은 너무 길고 무서웠다. 저녁에 수위와 나만 이 건물에 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그러다 여명이 밝아오면 강인하게 변하는 나를 보게 된다. 두려울게 없다."

-8천표 중 몇 표나 얻을 것 같나.

" 코끼리 몸 만지기다. 다들 몇 표로 이긴다고 다니는데 다 허구다. 나는 지역에서 존경받는 약사다. 정치인 언론 공무원과도 교류가 대단하다. 동문( 동덕)은 적다. 하지만 나에게는 후원자들이 많다. 20개 약대에서 지원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

- 동네본부의 가시적 성과물은 뭔가.

" 동네약국의 활성화다. 복지부에서는 동살본이라고 한다. 살(殺)자를 붙일 만큼 대단하게 보는 것이다. 이름 자체만 해도 성공한 것 아닌가. 가장 중요한 것은 성분명 주장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일이다. 후배들이 선배 뭐했나 하면 나는 약권을 위해 성분명 주장을 했다고 말하고 싶다."

-주량은.

" 상황에 따라 다른데 맥주 1병 정도."( 기자는 그 후 다른 질문을 했고 그가 장황하게 설명했으나 오프더레코더를 요청해 받아 들였다. )

권태정 본부장은 "항간에 떠도는 자신에 대한 말은 모두 흑색선전"이라며 "선거전이 정책대결로 가지 않고 근거 없는 윤리적· 도덕적 문제로 번지면 상대 후보에게 확실하게 응대해 주겠다"고 말했다.

그는 "제약사로부터 개인적으로 한 푼의 돈도 받아 쓴 적이 없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남편과 고대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립대 석사과정에 있는 아들이 하나 있다.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bgusp@news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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