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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의협 대표 정일용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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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의협 대표 정일용 의사
  • 의약뉴스
  • 승인 2002.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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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봉사못해 부끄럽다
의미없는 이름은 없다. 원진녹색병원. 처음 이 병원의 이름을 들었을 때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원진레이온과 녹색이 같는 의미를 보았기 때문이다.

예감은 적중했다. 원진녹색병원은 원진레이온이 악명을 떨쳤던 바로 그곳 구리시에 있었다. 그곳에서 인도주의실천의사협회 공동대표인 정일용 의사를 만났다.

그는 전화로 인터뷰를 약속할 때부터 만남을 꺼렸다. 별로 할 애기가 없다는 것이 주 이유 였다. 덧붙이면 지금은 봉사활동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데 언론에 나오는 것이 부끄럽다고 했다.

몇번의 사양 끝에 어렵게 만난 그는 의사의 이미지가 갖는 단호함이나 엄격함 무뚝뚝함 대신 인자함과 왜소함 나약함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목소리도 차분하고 웃는 모습이 시골 농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상 타고난 봉사꾼의 모습이 이런게 아닌가 싶었다. 그가 봉사활동과 인연을 맺은 것은 의대생 때 부터다. 봉사동아리를 만들어 진료에 나서는가 하면 87년 민주화 열기가 드높을 때는 거리에서 진료봉사를 자청했다.

본격적인 노숙자 돌보기나 원진 직업병 환자 치료는 한참 후의 일이다. 그는 지금 원진녹색병원장이며 일반외과 과장이다. 그의 병원에는 원진 환자들이 치료를 받고 있다.

자연스럽게 원진레이온 애기가 나왔다. 월남전의 고엽제와 탄광촌의 진폐증을 뻬고 단일 사업장에서 이렇게 많은 환자들이 직업병 판정을 받은 것은 원진이 최초라고 말했다.

800여명의 원진 노동자들이 이황화탄소에 장시간 노출돼 신경이 마비되고 뇌위축 말더듬 운동장애 손발저림 눈이 나빠지는 안저 현상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산재로 인정해 달라고 김봉한씨(사망) 등이 투쟁하던 92년 이었다. 그는 이들을 돌보기로 했다. 99년 기회가 왔다.

원진의 주거래 은행이던 산업은행은 아파트 부지로 막대한 이득을 봤다. 환자들은 우리의 피땀으로 번 돈이니 자신들의 병을 치료해줄 병원을 지어줄 것을 요구했다. 산업은행이 110억원 직업병 판정으로 160억원 받아 원진직업병 관리재단이 만들어 졌다.

원진녹색병원에는 800여명의 환자 가운데 500여명이 있다. 이들에게 그는 의사이기에 앞서 동료이며 친구로 통한다. 평생 봉사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부터 생긴 환자사랑을 이들에게 아낌없이 쏟아 붓기 때문이다.

그는 말했다. 원진 공장 부지에 세워진 부영 아파트의 인기가 높고 가격도 세 사람들이 너도나도 입주를 원한다고. 처음에는 원진의 터라는 이유로 꺼리던 사람들도 이제는 살기좋은 아파트라고 몰려들고 있다고 했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그는 세상은 변하고 사람도 변하는데 원진 환자들만 질병의 고통에서 변하지 않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원장이니 만큼 병원 수익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은 경영이 어렵다" 며 "병원이 안정을 찾으면 노숙자 진료나 다른 봉사활동을 위해 시간을 마련하겠다"고 수줍게 말했다.

87년 만들어진 인의협에는 88년 가입했다. 청주에서 공중보건의로 일하면서 나환자를 돌보던 시절, 인의협의 존재를 알았다. 의사들이 병원에서 돈받고 치료를 하는 것도 본연의 임무지만 돈 없고 소외된 사람을 위해 치료하는 것도 그것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여기던 시절이었다.

한양대 재직때는 회원을 모아 외국인 노동자 진료도 했다. 지금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지만 당시만 해도 이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원장은 이처럼 남보다 한발 앞서나갔다. 그는 "언젠가는 원진 병원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 힘없이 말했다. 후배들도 고민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이 그가 떠나게 될 이유이다.

" 의사로서 필요한 개인적인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는 정원장. 의약분업으로 의사들의 행동이 점차 과격해질 기미를 보이고 있는 요즘, 같은 의사이면서 자신의 생각을 좇아가는 정일용 의사는 다른 의사들에게 또다른 고민거리를 안겨주고 있다.

돈만 아는 의사,집단이기주의 이런 인식의 바탕위에서 그를 올려 놓는 것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길거리를 가다 사고를 만나 허둥대는 환자에게 옷에 피를 묻히고 응급처치를 한후 조용히 사라지는 그런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가 보여줄 앞으로의 모습이 궁금해 진다.


이병구 기가(bgusp@news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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