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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된 근대의 눈과 풍경에 대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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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된 근대의 눈과 풍경에 대한 비판
  • 의약뉴스
  • 승인 2006.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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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순의 '꿈의 궁전' 사진전
▲ 사진은 작가가 2005년에 찍은 전농동 모습.

“치즈!”라고 말하면서 사진을 찍기 시작한 에드워드 시대가 극동의 제3세계 국가인 한 나라에서 “김캇라는 토착어로 변종한 그 시기만큼 사진이 담는 내용은 도시의 일상을, 여체를, 피망을, 결정적 순간을, 전장에서 죽어가는 병사를 찍어가면서 다양해졌다.

이제 극동의 한 사진가는 무얼 찍어야하나?

우리의 눈은 포식자다. 그래서 얼굴 정면에 달렸다. 포식자의 눈은 당연히 공격적이고 집중적이다. 눈 안에 펼쳐지는 풍경이 그래서 전부인 양한다. 인간, 정확히는 근대적 인간의 눈은 가장 게걸스럽다. 눈 안에 펼쳐지는 삶의 풍경을 전부 갉아먹어치운다. 근대적 인간의 눈에 걸리지 않는 풍경은 없다. 아니다. 걸리지 않은 풍경은 풍경이 아니다.

‘가든’이 갈비집으로 바뀌고, ‘파크’가 잠자는 곳으로 바뀌고, ‘모텔’이 러브호텔로 바뀌는 극동의 한 나라에서 포식자의 눈은 먹을 걸 찾지 못한다. 풍경은 있되, 없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찾는 사진가는 너무나도 똑같은 풍경에 길을 잃는다.

극동의 한 포식자인 박홍순의 시각은 이렇듯 사육된 근대의 눈과 풍경에 비판적인 시각을 부여한다. 그가 찍은 ‘국적을 알 수 없는’ 다양한 건축물은 사실 가장 한국적인 풍경임을 우리는 모른다. 왜? 우리는 이미 길을 잃었으니까. 그렇게 보도록 사육되고 있으니까 말이다.

인사동 갤러리 쌈지(7월 19일-8월 7일)에서 세 번째 개인전을 여는 박홍순의 전시 주제는 ‘꿈의 궁전(Dream Palace)’이다. 주제인 ‘꿈’과 ‘궁전’에서 우리는 이미 작가의 비판적 시각을 읽을 수 있다. 중세 유럽의 성(Castle)과 궁전이 꿈과 결합하는 방식은 일대일 대응관계처럼 다소 식상한 은유다. ‘꿈은 궁전에서 꾸는 것이거나 궁전을 꾸는 것이어야지 어디 모텔에서 꾸는 것인가. 촌스럽게...’

사육된 근대인의 꿈이 이뤄지는 궁전인 모텔이나 결혼식장은 액자 안에서 충분히 에로틱하고 이그조틱하다. 피사체의 디테일은 핀홀 카메라로 인해 버덩처럼 거칠다. 가까이서 보면 색들이 베돌지만 조금만 떨어져 보면 색채의 매무새를 아우른다. 인상주의 작가 쇠라가 사용했던 색의 병치처럼도 보이고, 르느와르나 모네의 부드러운 붓터치처럼 보인다는 말은 맞다.

작품은 이렇게 말한다. ‘아름다운 그대, 당신이 생각한 꿈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카리브 해안의 야자수가 흐드러지고, 몰디브의 하얀 백사장이 생각나는 곳으로 말입니다. 당신의 꿈을, 당신만의 꿈을 꿔보세요. 적멸하세요. 보궁속에서.’

작품 자체의 ‘이그조틱하고 에로틱한 풍경’은 사실 현실이다. 벋대지않은 풍경이다. 우리가 흔히 주위에서 보는 날것의 풍경이다. 모조로 뒤범벅된 현실을 살짝 뒤집었을 뿐 그의 사진은 개발의 몸살을 앓는 ‘백두대간’처럼 슬프디 슬픈 다큐멘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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