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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16 12:27 (화)
지금 일어난 일로 인해 평화가 깨지지 않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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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일어난 일로 인해 평화가 깨지지 않기를 바랐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09.23 1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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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인기척이 왔다. 말수의 움직임이다. 내 인생의 동반자이며 주인공. 내 삶의 전부인 그를 맞으러 용희는 일어섰다. 얼굴을 마주한 그녀는 말수의 표정을 살폈다.

‘많이 드셨어요?’

‘아니, 적당히.’

말수는 평상시와 다름없었다. 그는 좀처럼 자기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내일 수술 있잖아.’

‘그렇군요. 당신은 정말 철저해요.’

‘칭찬인가.’

‘그럼요. 든든해요. 어떤 경우도 안심이 돼요. 걸어오는데 춥진 않았나요?’

‘응, 논이 다 얼었어. 아이들이 썰매를 타더군.’

‘우리도 갈까요.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는 거 어때요?’

‘나쁠 거 없지.’

‘그래 주인장은 뭐래요?’

‘별거 없어. 떠벌이가 좋아하는 사람치고 건질말이 없잖아.’

‘그래도 궁금한 건 있잖아요. 숙제를 풀었나요.’

용희는 말수가 인사차 간다고 했으나 뭔가 알고자 하는 것이 있어 갔다는 것을 알고는 이렇게 물었다.

‘그런 게 있었나.’

말수는 조금 얼버무렸다. 거기까지 용희가 알아야 하는지 말수는 일단 판단이 서지 않았다. 몰라도 되는 것을 알게 돼서 나중에 곤욕을 치르지 않을지 걱정이 됐다. 그러나 오늘일 정도는 해도 괜찮을 듯싶었다.

‘그 사람 발 참 넓어. 일본 순사도 알고 독립하는 사람들과도 끈을 대고 있더군.’

‘그럼 어느 쪽이예요. 아니 어느 쪽에 더 가까운 거 같아요?’

‘아직은 몰라. 살기 위해서 적당히 타협하고 있는 거 같기도 하고. 깊은 속을 알 수가 있어야지. 그건 그렇고 이거 먹어봐.’

말수가 손에 든 종이를 건넸다.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었다. 종이의 감촉이 좋았다.

‘만두군요, 냄새가 올라와요. 아직 식지 않았네요.’

‘그래, 식기 전에 어서 맛 좀 봐요.’

말수가 재촉했다.

‘그 집 안식구 손이 야무져. 나물 반찬을 안주로 먹었더니 기분이 좋아.’

말수는 그 말을 하면서 고사리며 호박고지며 고구마 줄기를 먹고 있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고향이 그립지요?’

한 잎 베어 물고 용희가 말했다.

‘꼭 그런 건 아니고.’

‘봄이 오면 산과 들로 나가 산나물 좀 뜯으러 가요. 우리도 나물밥 해 먹죠.’

용희가 신이 난 듯 말했다.

‘그래, 들기름은 필수야.’

‘어떻게 알았어요.’

‘그 집 아주머니가 말해줬어.’

둘은 웃었다. 이런 시시껄렁한 대화가 좋았다. 용희는 만두를 맛있게 먹었고 말수는 지켜봤다.

그러다가 용희가 지나가는 투로 한 마디 했다.

‘조선에서 큰 사변이 난 거 알고 있어요? 그런 말 하지 않던가요.’

‘무슨 말?’

용희가 무릎걸음으로 다가왔다.

‘아까 환자 하나가 왔었는데 조계지에 소문이 퍼지고 있대요. 조선독립군이 총독부를 공격했데요. 총독은 목숨을 건졌으나 직원 여러 명이 죽었고 부대 근무를 하던 일본군들이 다수 사망했다고 해요.’

‘신문에는?'

‘아직요. 사실이라면 곧 나오겠지요. 이곳에도 한바탕 회오리바람이 불 것 같아요. 그러니 당분간 그 집에 가지 말아요. 그 사람도 만나지 말고요. 무슨 불똥이 튈지 모르니까요.’

걱정어린 시선으로 용희가 말수를 응시했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그 남자도 알았을 텐데. 설마 그랬을 리라고.’

말수는 믿을 수 없었다. 세계 재패를 눈앞에 둔 일본을 상대로 조선독립군이 총독관저를 공격했다는 것은 꿈속에서도 어려운 일이었다.

일본이라면 상대를 잘못 고른 것이다. 그들은 너무 강한 상대였기에 공격대상으로 삼았다면 무모한 작전이었다.

그런데 용희의 말은 구체성이 있었다. 단순히 공격했다더라가 아니라 공격했는데 총독은 죽지 않았으나 그 부하들 여럿이 죽었고 호위하던 부대 군인들도 그랬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정황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았다. 말수는 조금 긴장했다. 상해서 조선에서 일어난 일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금으로써는 알 수 없었지만 불안한 기운이 감돌았다.

여러 명이 죽었다면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천황 다음가는 대단한 위세를 부리는 총독을 시해하려 관저까지 들어갔고 관저 직원들을 죽였다면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말수는 놀라움을 진정시키면서 조금 전 만났던 포목점 집 남자를 떠올렸다.

‘나를 속이나.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속여서 무슨 이득이 있나. 알 필요가 없으니 알리지 않은 걸까. 아니면 그도 정말 몰랐을까.’

말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내가 가기 전에 일본 순사가 그 집에서 나왔거든. 그 사실을 그 집 안주인과 남편도 숨기지 않더라고.’

용희가 씹던 만두를 입에 둔 채 잠시 그러기를 멈추었다.

‘그냥 염탐차 들렀다고 하는데 그것 이상인가 봐.’

‘그 남자, 두 얼굴의 사나이가 틀림없어요. 조심해야 해요. 가지도 말고 오지도 않았으면 좋겠어요. 당분간은요.’

‘나도 걸어오면서 죽 그 생각을 했어. 지금 내리는 소나기는 무조건 피해야지. 어떤 직감 같은 것이 와.’

용희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여보, 말해줘서 고마워요.'

그러면서 자신에게 온 이 평화가 너무 오래 지속됐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일시에 깨지는 일이 이 일로 인해 일어나지 않기를 용희는 간절히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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