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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아래에 민들레가 노랗게 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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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아래에 민들레가 노랗게 피어 있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2.02.25 15: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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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공기가 신선했다. 막사 끝에 간신이 걸친 해가 저녁을 알리고 있었다. 점례는 그중 하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몸을 돌렸다.

세상천지 누구에게도 자신이 여기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르는데 다른 사람이 자신을 알아보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하필 내가 나올 때 나오다니, 점례는 얼른 다시 들어갈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대신 고개를 숙이고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들에게 눈길을 주었다.

바람이 불어왔다. 점례는 한 번 더 심호흡을 했다. 가슴 아래로 무언가 펑 뚫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공기, 이 신선한 공기를 두고 다시 천막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점례는 한 걸음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바로 발아래에 민들레가 노랗게 피어있었다. 행여 밟을 새라 조심하면서 그 자리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꽃은 땅에 바싹 붙어있었는데 이 자리를 결코 떠나지 않겠다는 각오 같았다.

어떤 것은 벌써 씨앗을 맺었다. 휴의가 생각났다. 자신에게 불어주던 민들레 씨앗이 여기서도 피었다. 점례는 왈칵 설움이 몰려왔다.

엄마는 알까. 자신이 여기에 있는 사실을. 그리고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보고 싶다. 그러나 떠오른 얼굴은 엄마가 아닌 휴의였다. 그러고 보니 그와 작별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순사가 오고 삼 일 후에 점례는 마을을 떠났다.

그러기 전에 휴의도 그런 사실을 알았다. 처음에는 점례를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돈 벌어 자신도 논을 사고 싶었다. 다음 날 저녁 점례 집 주위를 서성이던 그는 점례가 나오자 잠깐 옆으로 잡아 끌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점례 손에 쥐어주었다.

‘가지고 가서 놀아.’

그는 하찮은 것이니 놀다가 버려도 좋다는 듯이 말했다. 나무로 만든 작은 인형이었다. 점례와 휴의였다. 뭐 이런 것을, 점례는 주는 것이니 받는다는 심정이었다.

보자기와 인형, 점례가 유일하게 위안을 삼는 것이었다. 군인들이 자신에게 위안을 삼을 때 점례는 휴의가 준 인형을 꺼냈다. 손때가 묻어 그것은 반질거렸다.

만질 때마다 소나무 향이 났다. 나무를 벗기고 송진을 먹었던 기억도 떠올랐다.

‘밤새 깎았어.’

돌아서면서 휴의가 말했다. 잘됐다. 차라리 잘 된 것이다. 점례는 무엇이 잘됐다는 것인지 알지 못하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두 명의 조선 여자는 점례가 외면을 하자 자기들끼리 뭐라고 떠들다가 각자 자기들 방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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