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4-04-18 20:22 (목)
아직 식지 않은 얼굴에 지리산 단풍이 떨어졌다
상태바
아직 식지 않은 얼굴에 지리산 단풍이 떨어졌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10.03 13: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럴 것까지야 있느냐 싶은 반장의 행동에도 부대원들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엎어진 그들 가운데 하나가 꿈틀댔다.

터진 입술 사이로 피가 흘러나왔다. 반장은 순간적으로 둘 가운데 하나를 처치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그러는 것이 살려 두는 것보다 자신의 신상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교차 확인한 결과 적의 위치와 숫자는 일치했다. 더 심문할 것이 없었다.

반장의 손이 권총 쪽으로 옮겨지는 그 순간 피를 흘리는 포로가 일어서는 기색을 하면서 물, 물 하고 외쳤다.

때를 놓치지 않고 반장은 뽑은 권총으로 그자의 머리를 박살냈다. 하얀 골수가 붉은 피 사이로 번져 나왔다. 부대원들은 놀라 한 발 뒤로 물러났다.

다른 포로 하나는 귀를 막고 고개를 땅에 박았다. 다음은 자신의 차례라고 생각한 듯했다.

‘이놈이 가짜 항복했다’.

몸속에서 수류탄을 꺼내려고 했다’.

반장은 이렇게 외치면서 죽은 자의 옷을 뒤졌다.

그러나 수류탄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안쪽 주머니에서 작은 성경책 하나가 손에 잡혔다.

소대장은 그것을 펼쳐 보았다. 네 명이 웃고 있는 가족사진이 책갈피처럼 펼쳐졌다. 그는 그것을 노획물로 삼아 주머니에 넣고는 남은 포로를 끌고 산으로 달렸다.

그 뒤를 대원들이 따랐다. 군홧발에 돌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달그락거리면서 따라왔다.

위쪽에서 따발총 소리가 들렸다. 총소리는 달리던 반장 일행을 멈추게 했다. 일 분대가 매복조에 걸려든 것 같았다.

그는 매복 위치나 인원에 대해 먼저 간 부대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 공격하는 쪽은 숫자가 적었으나 기습의 효과가 컸다.

일분대장을 포함해 세 명이 그 자리에서 죽고 네 명이 부상 당했다. 나머지 분대원들은 적의 위치를 확인하고 집중사격했다.

남은 적들도 응사했다. 그러나 교전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잠시 후 총소리는 멈췄다. 적들은 탄환을 다 소진했다. 손가락을 안으로 당겼으나 덜컥거리는 빈총 소리만 요란했다.

반장은 포로를 돌아봤다.

‘실탄은?

'저것이 답니다’.

반장은 그제서야 상부에 보고했다.

포로의 말대로 잔당들은 싸우려고 해도 싸울 수 없었다. 총알이 떨어지자 남아 있던 사기도 떨어졌다. 그들은 죽을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살기 위해 손을 들고 나왔다.

무릎 꿇은 포로들은 상체가 벗긴 채 두 손을 하늘로 들고 있었다. 그 옆으로 죽은 일분대장이 고개를 옆으로 돌린채 귀 쪽에서 피를 흘렸다. 아직 식지 않은 얼굴 위로 피보다 더 붉은 지리산 단풍이 떨어져 내렸다.

소대장은 일분대장이 죽은 것을 확인하고는 내심 잘 됐다 싶었다. 포로들을 발로 차면서 화풀이를 했으나 속마음은 환희로 들떴다. 이제 공은 모두 소대장 차지였다.

소대장은 포로들을 심문했다. 대대장이 보고서를 서둘러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그렇게 하기위해 조사 대신 고문을 택했다.

자유의 몸은 뒤로 미뤄졌다. 포로의 입으로 들어가야 할 소고기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두둘겨 맞기도 전에 포로들은 실컷 그렇게 당하고 난 후의 얼굴처럼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