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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6 12:11 (금)
빛나는 졸업장을 가슴에 품지 못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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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졸업장을 가슴에 품지 못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09.10 15: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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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이 관통한 가슴에서 피가 솟구쳤다. 그는 엉겁결에 손을 가슴에 댔다. 쓰러질 듯 휘청였다. 그때 저쪽에서 누군가가 아는 체를 하면서 다가왔다.

선주면 소학교 담임이었다. 정태가 한문깨나 알고 국문을 익힌 것은 5학년 때 담임을 맡았던 그 선생 덕분이었다. 정태는 졸업을 하지 못했다.

빛나는 졸업장을 가슴에 품지 못한 것은 집안 사정 때문이었다. 졸업을 한 해 남기고 정태는 학교 대신 논으로 밭으로, 다른 집의 품팔이로 가족의 생계를 도왔다.

자네가 웬일인가.

정태는 담임을 보고 너무 놀라 인사하는 것도 잊었다.

그래 무슨 일이야.

자초 지경을 설명할 때 정태는 찔끔 눈물을 흘렸다. 그때나 지금이나 차분한 담임 선생님은 정태가 멈추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아무개하고 아까 자신에게 입영 통보를 했던 병무계를 불렀다. 홍성 병무청에 근무하던 담임은 정태의 목숨을 바로 끊지 않고 길게 늘어뜨렸다.

복잡하고 불리한 전황에서 소년 가장이 입대를 미루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 이유라면 전방에 군인은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담당자는 정태를 보더니 내일 다시 나오라는 말을 했다. 담임은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정태는 그 뒷모습에서 어떤 희망의 끈을 보았다.

그는 다시 집으로 향했다. 홍성에서 천웅까지는 기차로도 두 시간 정도 걸리는 먼 거리였다.

기차역 앞에서 그는 차에 오르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막차가 떠났다. 걱정하는 어머니의 시선 대신 기찻값이 든 주머니에 손을 더 깊이 찔러 넣었다.

그는 주변을 돌아다니다 늦은 저녁 병무청사의 계단 아래서 잠을 청했다.

조금 추웠으나 몸은 그러지 않았다. 마음이 포근한 밤이었고 밤하늘의 별은 빛났다. 새벽녘 유성의 꼬리가 길게 동쪽으로 지는 것도 보았다.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광산김씨는 저녁이 늦어도, 날이 새도 오지 않는 정태가 전쟁터에 끌려갔다고 한탄했다.

간다는 말도 없이 떠난 자식을 앞에 두고 광산김씨는 흐느꼈다. 남편을 보내고 자식마저 먼저 보낸 죄인이라고 가슴을 쳤다.

이제 살아서는 보지 못할 텐데 밥 한 그릇 따뜻하게 먹이지 못한 것이 가슴에 못으로 박혀버렸다.

그녀는 아침을 굶었다. 점심도 그럴 작정이다. 저녁은 생각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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