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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던 사람이 또 왔고 간혹 새로운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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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던 사람이 또 왔고 간혹 새로운 사람도 있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1.05.24 1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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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여꾼들이 마당에 상여를 놓고 저만치 떨어져 거적을 깔고 앉았다.

집안 식구들이 그들에게 따로 상을 내어 왔다. 상여를 안전하게 잘 모셔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이런 날은 그들이 양반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홀대하지 않고 정중하게 대했다. 그들도 그런 대접을 마다하지 않았다.

오늘 같은 날이라도 사람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스스로 했다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자꾸 상기시켜 주었다.

자네들이 고생이 많아.

상주들은 그들 옆을 지날 마다 공치사를 했다. 아직 고생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러면서 연신 많이들 들게, 하고 빈말이 아닌 진정에서 우러나는 말을 했다. 머슴들에게 하는 최고의 찬사였다.

그들은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답례했으나 당연하다는 자부심을 가졌다. 누군가 죽으면 그들은 평소에는 고개를 숙였으나 그날은 아니었다.

돼지고기에 막걸리 한 사발씩을 먹은 그들은 한쪽에 모여서 상주들이 준비되기를 기다렸다. 너무 취하면 상여를 제대로 맬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조심하고 있었다.

술을 먹을 기회는 상여를 놓고 매장하는 과정에서도 있었다. 그들은 취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미리부터 그러고 싶지 않았다.

상주들도 그들이 너무 많이 먹는지 지나가면서 지켜봤다. 다행히 그들은 노련한 꾼들이어서 그 이상은 마시지 않았다.

안방에서 시신이 나왔다. 그들은 상여에 시신을 조심스럽게 들여 놓았다.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들렸다.

끊겼던 소리가 갑자기 들리자 부엌에서 음식을 장만하던 아낙들도 고개를 빼고 마당곁을 내다봤다.

용순을 비롯한 세 명의 며느리가 서럽게 울었다. 천구는 그 모습을 한쪽에서 서서 지켜보았다.

정태를 비롯한 자식들은 베옷을 입고 머리에는 볏짚을 꼬아 만든 새끼줄에 동아를 틀어 감았다. 마을 사람뿐만 아니라 언덕 너머 여송과 성재리에서도 손님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부고가 나가고 삼 일 내내 들락거렸으므로 천구도 그들의 낯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왔던 사람이 또 왔고 간혹 새로운 사람도 왔다.

정태는 쉰 목소리로 여전히 그들을 맞을 때마다 곡을 했다. 곡소리는 낮았으나 멀리 퍼졌다.

그 울음소리는 기이했다. 슬픈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고 아닌 것 같으면서도 정말로 슬픈 목소리가 하루 종일 집안을 감싸고 돌았다.

슬픔이 하늘까지 치솟아 자칫 큰일이 벌어질 것 같은데도 어느 순간 차분하게 일을 지시하고 처리하는 것을 보고 사람의 태도가 저렇게도 변하는구나 싶었다.

어떤 때는 슬쩍 웃는 빛을 보이기도 했는데 그것은 한동안 천구의 마음속에서 이해하지 못할 의문으로 남아 있었다.

상여가 나가기 전에 돼지 한 마리가 팽나무 밑으로 끌려왔다.

보통 한 마리 잡는 것이 상례였으나 손님이 많아 벌써 동이 났고 소문을 늦게 들은 더 먼 마을 사람 30여 명이 발인 당일에 한꺼번에 들이 닥쳤던 것이다.

커다란 가마솥에 불길이 솟고 있었다. 돼지를 삶을 물이 펄 펄 끊어 올랐다. 돼지는 쉬지 않고 소리를 질러 댔다.

아직 멱을 따기도 전이었는데 돼지는 멱따는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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