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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도 무심하지, 어쩌자고 자꾸 푸르기만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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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도 무심하지, 어쩌자고 자꾸 푸르기만 하느냐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1.04.19 1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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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어린아이였다. 그는 모든 사람의 부모였고 할아버지였고 조상님이었다. 세상은 그가 없이는 돌아가지 않았고 그가 있을 때 해는 뜨고 졌다.

부드러운 얼굴로 다가와 젖을 물려 주면 아이들은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세상은 달라졌다. 그가 없어도 여전히 바람이 불었고 낙엽이 졌다.

계절은 어김없이 가을을 지나 겨울로 가고 있었다. 다 같이 울고불고 난리를 쳐야 한다는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모여서 통곡하자는 소리는 이제 더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려고 준비를 했던 사람들은 머쓱해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 모든 것들이 낯설었다. 성일은 호주머니 속의 손이 가볍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누가 옆으로 다가와 많이 힘들지 하고 위로의 말을 해주기를 바랐다. 이런 때는 싫은 사람일지라도 옆에 있어야 했다.

주먹으로 내지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껴안고 다독이면서 내가 잘못했다고 모든 잘못을 내게 있다고 무조건 용서를 빌어야 했다.

그러면서 이유를 몰라 당황하는 상대방에게 두려워서 그런다고 그러니 이렇게 잠시만 같이 있어 달라고 애원하고 싶었다.

다 내 잘못이다.

성일은 그의 죽음이 자신 때문이라도 되는 듯이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런 마음은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가 져야 했다. 그들 역시 그의 자식이었고 손자이지 않았던가.

잘못은 자신이 했다고 죄인은 나라고 자기 가슴을 주먹으로 치면서 서로 내 탓을 말해야 한다. 지금은 그래야 하는 시간이다.

울고불고하면서 서로 위로해 주고 위로를 받아야 한다. 뉴스를 전하는 다급함은 그래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함께 그분이 없는 세상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두 손을 비비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것이 불과 며칠 전이었다.

그런데 그런 소리는 자꾸 줄어들고 있다. 어느 순간에는 아예 들리지도 않았다.

하늘도 무심하지, 어쩌자고 자꾸 푸르기만 하냐고, 너는 슬프지도 않느냐고 따지던 공기는 가라앉았다. 조금이라도 분을 삭이기 위해서는 그래야 한다던 다짐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멈추지 않고 숨 쉬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낙담이라는 것이 있다면 이런 것이고 낭떠러지 앞에 선 심정이 바로 이것이었다. 뒤로 물러나기보다는 앞으로 나아가서 그냥 꽉 고꾸라져야 한다.

대장 들쥐의 뒤를 따라 무작정 떨어져 내려야 한다. 성일은 이유 없이 얻어터진 것처럼 화가 잔뜩 난 상태로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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