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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3-29 00:50 (금)
[기자수첩] ‘프리랜서 해촉증명서’ 제도, 재검토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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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프리랜서 해촉증명서’ 제도, 재검토할 때다
  • 의약뉴스 신승헌 기자
  • 승인 2020.12.15 06: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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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프리랜서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벌이는 싸움으로 인해 건보공단 직원들이 속앓이를 하고 있다.

내용을 들여다보니 이렇다.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이력이 있는 프리랜서 A씨는 지난 7일 건강보험공단 지사(支社)를 방문했다. 올해 1월 지역가입자로 전환된 그는 작년 말까지 2만원대였던 건강보험료가 7만원대로 올랐다. 보험료가 오른 원인 중 하나가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받은 일회성 원고료ㆍ강사료ㆍ인세 등이 상시수입으로 잡혀있기 때문인 것을 안 A씨가 이를 바로잡기 위해 공단을 찾은 것.

A씨의 민원을 접수한 건보공단 직원은 원고료 등을 준 곳에서 ‘해촉증명서’를 받아오면 정산해 환급하겠다고 응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건보공단은 국세청에 신고된 가장 최신의 과세소득을 건강보험료 산정자료로 활용한다. 이때 지역가입자의 경우 전년도 귀속분 소득을 해당년도 11월부터 다음해 10월까지 1년간 적용하고 있다. 올해 6월까지 국세청에 신고된 2019년도 소득을 바탕으로 산정한 건보료를 2020년 1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부과하는 식이다.

그러면서 ‘소득 발생’과 ‘부과 시점’의 차이를 감안해 소득 변동 등이 확인되는 경우 보험료를 다시 산정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경제활동을 중단한 경우에는 폐업(해촉)증명서 등으로 소득 없음을 인정받으면 보험료를 환급 또는 감액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휴ㆍ폐업, 해촉(퇴직) 등으로 인한 소득조정 규모는 작년 한 해만 22조 4746억 원에 이른다.

그런데 A씨는 해촉증명서를 직접 제출해야 보험료 조정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문제 삼고 나섰다. 해촉증명서를 발급받는 일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니 공단이 직접 사실관계를 확인한 후 보험료를 조정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스스로 밝힌 바에 의하면 A씨는 해촉증명서 발급 문제를 ‘전략적 신경질의 시작 지점으로 작심’해 두었었고, 전략에 따라 ‘1시간 넘게 큰 소리로’ 신경질을 부렸다.

물론 해촉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 계약관계가 끝난 사용자를 다시 찾아가야 하거나, 폐업 등으로 사업체가 사라진 상황 등을 마주한 프리랜서들이 느낄 불편을 생각하면 A씨의 행동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A씨의 행동은 과했다는 인식이 공단 직원들 사이에서는 지배적인 것으로 보인다.

건보공단 측은 결국 A씨의 요구를 받아들였는데, 그는 이 사실을 곧장 SNS에 공유했다. 거기에는 “해촉증명서를 공단의 부장이 출판사와 단체 등에 연락해서 받아 나한테 보고하고, 변경사항과 환불시점도 보고하는 것으로(약속을 받았다)”, “해촉증명서 발급과 전달을 나더러 하라는 것을 지랄지랄해서 싸워 공무원이 하는 것으로 했다. 모두들 현장에서 싸우시기를” 등의 내용이 담겼다.

며칠 뒤에는 한 일간지에 기고한 글을 통해 “해촉증명서를 공단 측이 떼게 한 것에 대한 놀라움과 칭송들이 댓글로 달렸다”고 밝혀 투사(鬪士)의 영웅담을 곱씹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나아가 A씨는 “나와의 일로 부당한 처우를 받는다면, 당신의 싸움을 시작하시길. 요청한다면 그 싸움을 돕겠다”고 승자(?)의 아량을 베푸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자신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보고’를 해준 건보공단 부장이 다른 직원들로부터 원망을 받고 있다며 한 말이다.

이에 대해 건보공단 측은 프리랜서의 해촉증명서 제출은 가입자가 스스로 경제활동의 중단을 공단에 신고하는 것으로, 공단은 소득신고 이후의 경제활동 계속여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직접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직원들은 본인 소득은 본인이 증명해야 하는데 공단 직원보고 하라는 건 갑질이라고 반응했다. 제도 개선을 위한 문제 제기를 넘어, 마치 거악(巨惡)을 단죄하고 굴복시켰다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A씨를 보며 사기가 많이 떨어진 모습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해촉증명 제도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해촉증명 제도가 현행 ‘소득 중심 부과체계’에 역행한다는 지적이다.

해촉증명은 일회성 소득이 상시수입으로 잡혀 보험료가 과잉징수되는 것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해촉증명서를 받아오면 이를 넘어 일회성 소득 자체가 없던 것이 돼 여기에 보험료가 부과가 되지 않게 된다. 이는 직장가입자 등과 비교하면 형평성에 어긋난다. 때문에 일회성 소득은 소득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고객 편의 향상’을 위해서나 ‘보험료 부과체계의 공정성 제고’를 위해서나 프리랜서 해촉증명에 관한 문제를 진지하게 들여다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건보공단이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갈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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