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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7-15 11:57 (월)
천 년은 긴 시간이야, 그러니 그 후에나 생각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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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은 긴 시간이야, 그러니 그 후에나 생각해 봐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12.08 1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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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울던 사람들은 웃고 떠들다가 어디론가 한꺼번에 사라졌다. 신기한 일이었다. 사라지는 사람 가운데 향숙이가 있었다.

그는 머리를 들고 소리쳤다. 두 손에 들고 있는 것이 자신의 머리였지만 당황하지 않았다.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있어야 할 곳이 여기가 아닌데 있는 것이 그저 신통했다.

못들었는지 향숙이는 그대로 있었다. 그래서 한 번 더 소리 질렀다.

향숙아.

그제서야 향숙이 고개를 돌렸는데 그도 머리는 없고 몸통만 있었다. 그런데도 그가 향숙인 것을 의심하지 않았고 향숙도 그를 알아보았다.

오빠, 왜 여기 있어.

그녀가 먼저 말했다.

그래서 소대장이 대답했다.

어, 그냥 별거 아냐.

왜 무덤 속에서 나왔어.

그러나 소대장은 이번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덤이 없었기 때문이다. 애초 그는 땅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자신을 위해 누가 무덤을 만들어 주지 않은 것이다.

자신은 그렇다쳐도 향숙이는 왜 저렇게 있는지 그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피난길에 비행기 폭탄을 맞았나. 소대장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하도 많은 민간인이 죽었으니 향숙이가 죽었다고 해서 놀랄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땅 속에 있지 못하고 땅 밖에서 산 사람처럼 돌아 다녔다. 서로 떠돌다가 우연히 만났다고나 할까.

어쨌든 만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살아서든 죽어서든 서로 알아보고 반갑게 달려 들 수 있다면 생사가 그리 무엇이 중요한가. 그런 생각이 들자 차라리 무덤 속이 아니 이런 상태가 더 좋았다.

가만히 무덤 속에만 누워 있었다면 향숙이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어디든기 갈 수 있는 지금 상태가 좋았다. 소대장은 손에 든 머리를 조금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마치 자랑할 것이 있다는 듯이.

그러면서 미리 생각이라도 한 듯이 천천히 말했다.

난 구천을 떠돌거야.

네가 천 년 동안 울어줄래.

그리고 나서 돌무덤이라도 만들어 주렴.

한참을 듣고 있던 그녀가 말했다.

오빠, 나도 같은 신세야.

그러면서 고개를 숙였는데 그제서야 향숙이도 손에 자신의 머리를 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눈이 없는데도 볼 수 있고 귀가 없는데도 들을 수 있었다. 입이 없어도 말이 되어 밖으로 나왔다.

천년은 긴 시간이야.

그러니 그 후에나 생각해봐.

향숙이 그렇게 말했고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렇게 하는 것이 옳았다. 그런데도 이상하다는 생각은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왜 그런지 확인하고 싶어서 그가 개를 들었을 때 그녀는 없었다. 사방을 둘러 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주렁주렁 밤송이를 달고 있던 밤나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밤나무 가지는 태풍이 불 때보다도 더 심하게 흔들렸는데 그것은 마치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보고 인사하는 것 같았다. 떠나면서 작별 인사를 하듯이 자꾸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때마다 익은 밤송이가 여기저기서 떨어졌다. 어떤 밤송이는 땅에 닿자마자 떨어지면서 떼구루루, 아래로 굴러갔다.

마치 던져진 수류탄이 그러는 것처럼 몸을 사방으로 굴리면서 갈수 있는데까지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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