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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7-15 11:51 (월)
다른 방법이 없을 때 병사들은 스스로 그것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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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방법이 없을 때 병사들은 스스로 그것을 떠올렸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10.27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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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고지는 이른바 전략적 요충지였다. 아군이나 적이나 그곳을 차지하는 자가 중부 전선에서 결정적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중부의 우세는 서부나 동부의 전세까지 바꿀 수 있는 기회였다.

그래서 피아 서로 한치의 양보도 없는 공방전이 벌어졌다. 그것은 수많은 병사의 죽음을 의미했다.

낮에는 우리가 밤에는 적이 차지하기를 수 십번 되풀이 했다. 어떤 날은 하루에 태극기와 인공기가 번갈아 걸리기도 했다.

그곳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그곳에 오르면 적을 한 눈에 볼 수 있고 먼 거리에 있는 적까지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병사들은 죽을 줄 알면서도 고개를 넘어 고지를 향해 죽을 힘을 쓰면서 올라갔다. 다리에 쥐가 나고 총을 쥔 손에 땀이 나도록 앞만 보고 그렇게 했다.

그래서 겨우 팔부 능선에 다다랐다. 그곳까지 살아 온 것만 해도 용했다. 그러나 고지가 가까울수록 죽음도 한 발 가까이 왔다.

이 순간 병사들은 용감하게도 뒤로 물러나지 않고 조국을 위해 목숨을 기꺼이 바쳤다. 기꺼이, 라고 한 것은 오해가 있을 수 있었다.

누군가는 앞의 반대편으로 도망치고 싶었을 것이다. 돌격 앞으로는 곧 총알이 몸을 뚫고 지나가 지나간 자리에 피를 흘리게 만들 것이고 그 피는 아픔과 동시에 살아 있는 숨을 꺼져버리게 하기 때문이다.

무모한 젊은이 가운데 일부는 그런 것이 싫어서 돌격 앞으로 소리를 듣고도 못 들은 것 처럼 움찔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곧 함성소리와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동료를 따라 그들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뒤로 밀려나는 것은 비겁한 짓이었다. 그런 짓은 해서는 안된다고 중대장은 늘 말했었다. 그래서 이런 결정적 순간에도 그런 짓을 하지보다는 않기로 했다.

후퇴하라는 명령이 없다면 그들은 적의 총알이 몸을 뚫고 지나갈 때까지 앞으로 돌진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고 실제로 몸도 그렇게 했다. 비록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어도 몸은 마음과 달리 행동했다.

그것은 슬픈 일이었고 잔인한 일이었다.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 한 세상을 살지 못하고 앞으로 살아갈 나이가 창창한 젊음이 처참하게 죽어 나자빠지는 일은 보기에 딱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하루에도 여러 차례 되풀이 되면서 무덤덤한 상황에 이르기도 했다. 살아 있던 것의 죽음은 산자들을 충분히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나도 곧 저렇게 소리를 지르고 피를 흘리다가 움직이지 않는 송장이 되리라는 두려움은 온몸을 떨게 만들었다. 그래도 그들은 앞으로 달려나갔다.

손에 쥔 소총을 발사 하면서 내가 살기 위해 적을 죽이는 일에 몰두했다. 나의 죽음은 공포였으나 적의 죽음은 환희였다. 나와 적은 그렇게 갈렸다.

그들은 나아가면서 조국이나 애국을 가슴에 품었으나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죽음의 순간에는 원통함이 밀려들었다.

들을리 없건만 엄마 하고 외쳐보는 것은 그래도 죽을 때는 외마디로 소리로 그 말 이외에 다른 말은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배운 엄마 소리를 죽으면서 마지막으로 내뱉을 때 동료들은 오줌을 눌 때 처럼 부르르 몸을 떨었다.

마지막 숨이 끊어질 때 부르는 그 소리는 세상의 어떤 소리보다 숭고하고 높아고 깊었으며 절절했다.

그 소리를 듣는 옆에 있는 병사는 자신의 가슴속으로 파고드는 엄마 소리를 귀로 듣지 않기 위해 개새끼들 다 죽어라 외치면서 언덕을 향해 기어 올라갔다.

그러나 산은 비록 얕았으나 높은 곳에서 쏘는 적을 감당하기는 어려웠다. 죽어라 했으나 죽는 것은 적이 아니라 자신이었다.

조준하면서 쏘는 적의 총알은 헛되지 않고 올라오는 자들의 머리와 가슴과 팔과 다리를 뚫었다. 맞았다, 하는 순간에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했다.

총을 맞고도 살 수는 없었다. 간혹 운 좋게 빗맞은 총알이 있기는 했으나 그래도 스스로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부상을 당한 것이라면 서서히 죽게 되는 것이다. 살지 못하고 죽을 거라면 쉽게 죽고 싶었다.

고통을 빨리 끝내기 위해 부상을 당한 자는 부상 부위에서 피가 솟구쳐 오르는 것을 보면서도 막으려고 하지 않고 스스로 자기 총으로 적이 아닌 자신을 쏘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명백한 자살이었다. 자살은 사람이 태어나서 할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을 때 병사들은 그것을 누가 알려 주지 않아도 떠올렸다.

얼마나 고통이 극에 달했으면 그랬을까. 살 수 없다는 것을 안 그가 더는 세상을 보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한 두 번 더 바라본들 나무와 숲과 들판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물었고 없다고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위로해 주는 다른 병사들의 위로의 말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병사들은 그가 빨리 죽기를 바랬다. 그래야 고지를 향해 전진하는 발걸음이 가볍기 때문이다. 그런 눈치를 위로의 말을 하는 입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그는 죽겠다고 말하거나 죽여 달라고 소리쳤다. 그래서 다른 누군가가 그가 할 일을 대신하기 위해 총을 들었다.

소대장이나 중대장이 있다면 그들의 권총을 이용하면 손쉬울 것이었으나 그들은 그러기를 꺼려했다. 죽어가는 자를 보면서도 스스로 죽게 내버려 둘 수밖에 없는 현실에 그들은 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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