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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6 16:37 (금)
개들이 간혹 짖는 읍내로 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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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이 간혹 짖는 읍내로 접어 들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09.24 1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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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산으로 가고 있구나.

동지들의 운명이 촌각에 달려 있다.

떠난 대원은 어떻게 됐지.

그런 두서없는 생각이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농부를 잡아 옷을 바꿔 입고 줄행랑 칠까.

그런 식으로 보낸 대원처럼.

그러면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언젠가 가본 작은 섬. 순천에서 뱃길로 30분 거리에 무인도가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거기라면 충분히 여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물고기는 지천이고 오를 수 있는 작은 산도 있다. 토끼나 노루도 잡을 수 있다. 집은 지으면 될 것이다. 원숭이처럼 야생으로 산다. 사람이 아닌 짐승처럼, 짐승과 친구로.

이런 생각으로 하마터면 그는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품속의 권총은 어느새 손에 쥐어졌다.

그러나 행동은 그러기보다는 반대로 움직였다.

몸을 벌레처럼 말고 농부들이 모르고 지날 수 있도록 숨소리도 멈추었다. 그의 발길을 막은 것은 피아골에 남은 동료들이었다.

그는 고개를 접었다. 그러자 산을 내려 오기 전에 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느냐는 자책이 들었다. 대원들이 다 함께 뿔뿔이 흩어지는 방법을. 그랬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러나 부질 없었다.

산에는 굶주리며 그를 기다리는 대원들이 있다.

그래 나는 협상하러 간다.

죽으러 간다.

내가 죽어 대원들이 산다면 후회 없다.

호석 아버지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농부들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그들을 뒤따랐다. 뒤따라간 것은 아니다. 길이 그 쪽으로만 나 있어 그 길로 갔을 뿐이다. 이럴 때는 길이 하나인 것이 좋았다. 망설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어둠은 깊어 이제 앞에 무엇이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멀리서 겨우 형체만 보이는 초승달이 떠올랐다. 추석까지는 한 달 남짓 남았다. 호석 아버지는 길을 계속갔다.

이제 몸을 숨긴다거나 누가 온다고 해서 비켜나지 않을 작정이다. 그런들 다 무슨 소용인가. 대명천지는 물론 깜깜한 밤에도 빨갱이가 설 자리를 어디에도 없었다. 이렇게 걷고 있는 것만도 감지덕지할 일이다.

그제서야 그는 자신이 빨갱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래 난 빨갱이야, 하지만 내가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참을 수 없다.

다 좋다. 그런 질문만 하지 않는다면, 나는 내 동료의 숫자와 어디 있는지를 다 불 것이다. 식량상태는, 가지고 있는 무기는. 하루 치도 없다, 카빈 총과 수류탄 33발 그리고 실탄 883발이다. 심지어 민가를 협박해 쌀 두 말 뺏어온 집까지 지목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목숨을 살려 주고 내 목숨을 가져가라고 친구에게 사정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무릎도 꿇겠다. 그러나 한 가지, 단 한가지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빨갱이들이 자수하는 거지?

친구의 입에서 그 소리만 나오지 않으면 된다. 반란군 대접은 바라지 않은다. 포로 대우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것 만은 안된다.

그것은 그가 마지막으로 버티는 생명선이었다. 무너지기 전의 상징적인 저지선이 바로 빨갱이였다. 빨갱이라는 호명이 얼마나 더럽고 역겨운지 그 말을 들어보지 않은 자들은 모른다.

몇 명이냐, 삼 십 명, 삼 백 명, 혼자 묻고 혼자 대답하기 전에 호석 아버지는 그에게 모든 것을 다 말해 버리려고 작정했다.

빨리 끝내고 싶었다. 추위가 오기전에 배가 등으로 붙기전에 일을 마치고 싶었다. 칼자루는 그가 아니라 내가 쥐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 밑바닥에서 작은 힘 같은 것이 올라왔다. 대원을 살릴 수 있는 자가 바로 코 앞에 있다. 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헛 발질이 아니다.

그들은 더 한 짓도 하지 않았던가. 독립군을 쫒던 토벌대들은 독립된 조선에 와서도 기죽지 않았다. 염치 없는 자들과 산 속의 대원들은 비교 대상이 될 수 없었다.

누가 진짜이고 누가 가짜인가.

옷 속에서 금속의 차가움이 흔들거렸다. 이럴 때면 협상이고 뭐고 녀석의 머리를 뚫어 버리겠다는 적개심이 솟았다. 그러나 이내 이런 결심은 수그러 들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누가 누구를 탓하랴. 일단 생각의 폭을 좁혀 나갔다. 애초 내려 왔던 목적에 충실 하자. 그것만 생각하자. 탓할 자는 세상에 없다. 스스로 선택했고 선택한 것에 후회는 없다.

실수한 것, 준비 부족인 것은 남의 탓이 아닌 내 탓이다. 궁지에 몰린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용당하고 버려진 것이 아니다. 이용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를 지켜 줄 것을 다른 곳에서 찾을 이유 없다.

녀석이라면 자신의 목숨은 몰라도 남은 대원들의 생명은 맡길 수 있다. 생긴거는 모질어도 마음씨는 그렇지 않다. 어찌보면 순하게 생겼는지도 모른다. 소문에는 그가 효자였고 학교 다닐 때 말썽을 피우거나 다른 애들을 괴롭히지 않았다.

이북 출신도 아닌데 어쩌다 서청에 가입했는지는 모른다. 그를 만나면 왜 서청에 가입했느냐고 물을 이유도 그럴 생각도 없다. 그가 왜 산두목이 돼 이 고생이냐고 묻는다 해도 말이다.

읍내로 접어들었다. 밤에는 통금이 내려져 개미 새끼 하나 없는 마을에 개들이 간혹 짖어 댔다. 집에서 새어 나온 불빛이 바람에 흔들렸고 멈춰 섰고 다시 흔들였다.

길을 걸으면 마음이 좀 정리된다. 그 까짓 아무것도 아니다. 죽으면 죽는 것이다.

그는 서청 간부 집 앞에서 잠시 망설였다. 내려오면서 거부하면 죽이자는 계획을 짰으나 죽는 마당에 죽일 필요까지 있을까 하는 생각이 그 집 앞에 서자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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