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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속의 사람들은 떠는 몸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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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속의 사람들은 떠는 몸을 멈추지 않았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09.21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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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자들은 줄어드는 해에 따라 몸을 움직였다. 굼벵이처럼 느리고 조심스럽게 한발씩 옮겼다.

서두를 이유가 없었고 그럴 힘도 가지지 않았다. 움직임은 둔했으나 떠는 몸은 의지대로 안 되는지 주기적으로 흔들리는 몸을 어쩌지 못했다.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었다. 저절로 그렇게 됐다. 남은 자들은 떨지 않는 따뜻한 곳이 있었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하루는 그들에게 일 년의 세월이었다. 길고 지루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증상이 그들에게도 나타났다.

떨다보면 배가 더 고팠다. 겉의 몸이 떨면서 속의 위장까지 흔들어 댔기 때문이다. 빈 위장은 가만히 있기를 바랐다. 채워지지 않을 거라면 그것이 낫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위장 역시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산속에서, 지리산 피아골 깊은 골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모여서 떠는 일 외는 다른 일이 없었다.

호석 아버지는 벌어지지 않는 입을 겨우 열어서 삼 일 만 참아 달라고 말했다. 아직 입을 벌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말하기가 여간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래도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주식 판에서 손절의 시기를 놓치면 견디기 힘든 길고 험난한 시절과 마주해야 한다.

여수에 내려가 정탐하고 오겠다.

대원들은 그가 자수 협상을 벌이려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했다.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었으나 그런 낌새를 챘다. 눈치 하나만은 살아 있었고 그들은 자신들의 그런 판단이 틀리지않다고 여겼다.

사전에 자수하면 선처받을 수 있다는 방송을 여러 차례 들은 바 있었다. 확성기를 통해 낮보다는 밤에 주로 군인들은 트럭 위에서 자수를 권유했다.

목숨을 살려준다는 말 다음에는 으레 직업도 주고 죄를 감해준다는 말도 나왔다. 어떤 때는 누구, 누구의 가족이라며 여자의 목소리도 들렸다.

애 아빠 이름을 부르며 울부짓고는 자수해서 광명 찾자고 흐느꼈다. 호석 엄마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교사 생활을 청산하고 군인들을 따라 산속으로 들어왔다.

호석 아버지, 자수해서 광명 찾으세요.

목소리를 그들의 몸처럼 떨렸다. 처절했고 애절했다. 애간장이 녹아 내렸다.

산속의 사람들은 둥근 몸을 더욱 쪼그라트리며 떨던 몸을 멈추지 않고 계속 떨었다. 대장의 아내가 변절했으니 부하들인 자신들이 그러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음속 위안을 그들은 그런 것에서 찾고 있었다.

대장의 부인이라 차마 젠장 맞을 년하고 욕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그녀의 그런 행동이 따뜻한 밥 한 그릇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거기다 더해 붙어 있는 목숨을 이어간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애가 있는 아버지는 살붙이를 만나고 죽는다면 원이 없겠다고 발을 비비 꼬았다. 그 말을 하고 부끄러웠던지 자기 주둥이를 손으로 한 번 쳤다.

동무들, 내가 헛소리를 지껄였소.

헛것이 보였기 때문이오.

그러나 누구도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럴 힘도 없었다.

그날 어두워지기 전에 호석 아버지는 권총 하나만 찬 채 마을로 향했다.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대원 하나 역시 권총 한 자루에 의지한 채 그의 옆에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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