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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5 23:31 (목)
동상의 다리는 굵어 6명이 숨기에 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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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의 다리는 굵어 6명이 숨기에 적당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07.24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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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괴로운 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기다리던 순간이 왔기 때문이다. 요란한 소리를 지르면서 사방에서 달려든 그들은 적이 보여주는 특이한 동태 대신 일반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다.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새로운 전술을 도입하지 않은 것은 게으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히 정권의 한복판으로 달려들 적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적은 그것 때문에 지금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8부 능선에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돌격 앞으로 하는 병사들과 같은 모습이 지금 광장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그러니 생명의 위협이 경각에 달려 있어도 우스운 것은 우스운 것이었고 그래서 잠시 대장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적들은 구중궁궐 깊숙한 곳에서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처럼 천진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외부세계와는 담을 쌓고 내부의 단속에만 급급했지 외부로부터 침공이 있을 것에 대한 대비는 없었다.

더구나 이런 소규모 게릴라 부대가 쳐들어 와서 이른 새벽부터 소란을 피울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것은 그들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그들은 그렇게 하고 남들은 그렇게 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그들이 순진했기 때문이 아니라 적의 관대함을 과대평가 했기 때문이다.

자신은 모질고 상대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것은 같은 민족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랜 세월 동안 쌓아온 학습효과가 그렇게 만들었다.

풍요로운 그곳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많은 것을 양보하고 있었다. 생떼를 쓰면 받아 주기도 했고 웬만한 것은 모른 척 넘어가기도 했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는 예단이 빗나갔을 때 그들은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그래서 마구잡이로 소리를 치며 달려 들었던 것이다.

먼저 배신해 놓고 그와 반대의 대접을 바랄만큼 그들은 스스로에게는 너무나 인정이 많았다. 그래서 그들은 당황한 나머지 서라, 거기서 꼼짝 마라, 라고 질러 놓고는 잠시 시간을 벌었다.

이해 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을 때 수습하기 위해서는 절대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들은 적들이 그들의 말을 실제로 따르는지 보기 위해 자신들도 달리기를 멈추고 서 있었다.

그들은 명령하면 누구나 그렇게 따랐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렇게 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대원들은 그 말을 따르지 않고 즉각 응사로 대응했다.

서지 않고 움직이면서 그들의 명령에 정반대 행동을 한 것이다. 서라고 소리지르던 몇 명이 순식간에 악 소리를 내면서 쓰러졌다.

명령을 따르기는커녕 되레 공격해오자 크게 당황한 적들은 그래서는 안되는 줄도 모르고 등을 보이면서 왔던 길로 도망치기에 바빴다.

동료를 수습할 생각도 하지 못한 그들의 처지는 처량했다. 그러나 공격을 받지 않은 다른 쪽에 있던 적들은 달려 오다가 멈칫 거리면서 도망가기 보다는 그 자리에서 엎드렸다.

그들은 등을 보인 적들보다는 우수한 인력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들 가운데 두명이 쓰러진 자들을 자신들 쪽으로 끌고 가기 위해 과감하게 광장으로 뛰어들었다.

이런 경우 대장은 그들을 처치하는 것이 옳았다. 영화에서 보면 저격병이 바로 조준 사격해 동료를 구하려는 용기 있는 동료의 숨통을 끊는 장면을 보여 준다.

대원 들 중 일부가 그렇게 하려고 하자 대장은 저지했다. 구하러 가는 그들의 태도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몸을 숙이고 급히 달려가는 제스처가 아니라 뻣뻣이 서서 두 손을 하늘로 들어 올리고 통곡의 소리를 질러 댔기 때문이다.

이것은 숫적으로 우수한 적들이 보이는 행동이 아니라 포로된 자가 자포자기의 심정일 때 반쯤 미쳐서 보이는 이상한 행동이었다.

그 이상한 행동은 신성한 광장에 피를 흘린 것에 대한 울분의 표시였다. 동료의 안위 때문이 아니라 거대한 두 개의 동상을 받치고 있는 광장에 피를 뿌려 더럽힌 것을 질책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아닐 수도 있지만 대장은 그 순간 그런 판단을 내렸고 그래서 식스틴의 연발사격을 중지시켰다. 손을 든 적에게 공격을 가하는 것은 비겁한 짓이었다.

적지에서 그런 짓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대장은 이런 순간에도 고도로 훈련받은 자의 자존심을 지켰다. 광장의 시체는 치워졌고 흘린 피는 검은 천으로 덮여졌다.

일시적으로 광장은 다시 소강 상태에 접어 들었다. 동상의 다리아래서 대장은 이런 상태라면 싸우지 않고 대화로 대적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생각을 했다.

아니면 차라리 정면 돌파를 시도해 왔던 길로 내려 갈 수도 있었다. 이 정도 경비라면 휴전선을 넘고 강을 건너 다시 모래섬으로 도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 과정에서 한두 명의 대원을 잃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감수해야 할 만한 일이었다. 그때 식스틴과는 다른 아카포의 콩 볶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대원 하나가 몰려 있는 적들을 잘 쏘기 위해 다리에서 내려 광장 쪽으로 달려나갔기 때문이다. 그 대원은 폭파조로 기둥 아래의 계단이 쏘기에 좋은 장소라는 것을 알았다.

아카포의 소리는 식스틴과 비슷하지만 달랐다. 그 예민한 차이를 대장은 자다가도 구분할 정도였다. 서로 총을 바꿔 쏘기도 했다. 식스틴이나 아카포나 손에 익숙하기는 마찬가지였으나 깊숙한 적지에서 듣는 그 소리는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대장은 그 소리를 듣고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풀숲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서는 포위됐으니 꼼짝말고 손들엇, 했을 때 그 말하는 자가 아닌 포위된 자가 느끼는 당황함이 대장에게 갑자기 쏠렸다.

언제든지 그렇게 될 것을 예상했다고 해서 당황한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무수한 훈련을 해도 실전과 훈련은 같을 수 없었다.

대장의 명령을 무시하고 달려나간 대원을 향한 적의 사격은 일종의 작전 개시를 의미했다. 소리에 맞춰 물러섰던 엄청난 수의 적들이 일시에 괴성을 지르며 사방을 포위했을 때 느끼는 공포심은 적을 먼저 발견하고 사살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닥쳐올 것이 온 것이다. 비둘기들이 또다시 아까 왔던 곳으로 날아서 이동했다. 그들은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일정한 패턴을 유지하면서 이동했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이 상황에서 그런 것이 보였다. 믿지 않겠지만 대장 눈에는 움직이는 모든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비둘기가 내려앉자 다시 광장은 조용해 졌다.

소리도 없고 움직임도 없었다. 이럴 때는 잠자코 있는 것이 상책이다. 적들에게 응사를 해야 한다는 조건 반사적인 행동말고는 다른 것을 할 필요가 없었다.

대장은 표적을 잡기 위해 거총을 했다. 그런데 그 많던 적들은 순식간에 어디로 사라졌는지 다시 아무데서도 보이지 않았다. 착시인가. 그 순간 짧은 비명이 들렸고 계단으로 이동했던 대원 둘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비열한 적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조준 사격을 했다. 스나이퍼는 자신의 위치를 숨기고 노출된 적의 심장을 정확히 겨눴다.

계단에서 아래의 다른 계단으로 굴러떨어질 때 대원이 내는 짧은 비명 소리가 대장의 귀에 들어왔다. 33번 김가구나. 그는 소리만으로도 대원의 성을 알아 맞출 수 있었다.

남한에서 그의 죄명은 살인죄였다. 누구도 그것을 말하지 않았으나 그는 자신을 죽이려는 자를 우발적으로 그렇게 했다고 어느 날 자아비판하듯이 내뱉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죄를 속죄하는 심정에서 누구보다도 훈련에 앞장섰고 대원들 중 가장 용감했다. 대장은 잠시 눈을 감고 그를 추모했다.

그 자신 역시 그와 비슷한 경험으로 모래섬으로 끌려 왔기 때문이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대원들은 숨으려고 하는 대신 그 자리에서 앉거나 엎드린 자세로 총소리가 나는 쪽으로 미친 듯이 방아쇠를 당겼다.

지금 쏘지 않으면 영원히 쏘지 못할 것이다. 총알을 남기고 죽는 것은 수치였다. 밤낮없이 걷고 뛰면서도 무거운 탄통을 시비하지 않은 것은 남겨서 집에 가져가지 않겠다는 각오가 대단했기 때문이엇다.

대원 셋이 연달아 쓰러지자 대장은 아까 왔던 동상의 다리 쪽으로 남은 대원들을 대피시켰다. 수령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살려 달라고 애원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곳이 다른 곳보다 안전했고 싸울만한 장소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랑이 사이에 도착하자마자 움직이는 물체가 있는지 찾기 위해 눈을 빠르게 두리번거렸다.

자신들을 쏘려는 자들을 먼저 발견해서 먼저 쏘려고 했다. 잘하면 얼마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수령의 다리는 굵어 여러 명이 붙어 있어도 숨을 공간이 남아돌았다.

두 발 사이로 모여든 대원들은 도합 6명이었다. 사이 좋게 셋씩 다리 하나를 엄폐물 삼아 쪼그리고 앉았다. 그것이 편해서가 아니었다.

자세는 불편했으나 적의 동태를 발견하기 좋고 노출되는 신체 부위를 최소화 할 수 있었다. 자세를 잡고 완벽한 응사 준비를 했으나 적들은 다시 침묵을 지켰다.

광장은 다시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 텅 빈 공간으로 바뀌었다. 적들은 수령의 다리 아래에 있는 적의 위치를 놓친 것이 아니다.

궁지에 몰린 그들을 적들은 구석으로 몰지 않았다. 쉽게 적을 제압할 수 있는데 적들은 그러지 않았다. 대장은 적의 움직임이 없는 것이 이상했다.

그러나 곧 그것이 감히 수령에게 총질을 할 수 없어 멈췄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들은 다가오지 않았다. 힘센 나라의 외교 대신이 음주 운전 후 공관으로 피신한 것처럼 치외법권 지역이 동상 언저리였다.

총질도, 다가오지도 못하는 상황을 미리 알고 대장이 이곳으로 도피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됐다.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한 대장은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동상조차 그렇게 됐구나, 이런 생각이 들자 기둥을 폭파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신을 무력화하면 인민들의 해방은 저절로 온다.

대장의 확신은 더 강해졌다. 그러나 그것은 대장의 착각이었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리면서 일제 사격이 가해졌다. 동상의 다리에 맞은 총알은 사방으로 튀었다. 튄 탄환이 대장의 어깨로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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