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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대원들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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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대원들은 없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07.21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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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밀어 보았으나 허사였다. 힘을 더하기 위해 손 대신 등을 이용해도 마찬가지였고 셋이서 함께 그래 보아도 미동도 없었다.

미는 것은 등이었으나 앞쪽에 있는 심장은 박동수를 더해갔고 대원들은 다급했다. 작전의 성공 여부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길어지면 승산이 없다. 게릴라전에 능숙한 그들은 이것은 말이 아닌 몸으로 알고 있기에 뛰는 심장을 억제하기 힘들었다.

다행히 주변은 아직 밝아오지 않았다. 움직이는 물체도 가까이 다가오는 기미가 없었다. 무언가 시도하기에는 아주 늦지는 않았다. 그런 작은 위안이 필요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 작은 것이 큰 것으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완고한 자물쇠의 벽에 막힌 대원들은 서두르는 마음을 억누르면서 플랜 비를 머릿속에 그렸다.

문 만 열렸더라면 작전은 완수됐을 거라는 가정은 의미가 없었으나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이곳까지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 순조롭게 당도한 때문이었다.

마지막까지 그랬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도 천운이 도운 결과였다. 적들과 마찬가지로 대원들도 강을 건너고 휴전선을 넘었다.

건너는 쪽이 남쪽이었고 북쪽인 것만 달랐다. 그들이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 서울 앞마당까지 왔던 것처럼 대원들도 누구의 눈에 띄지 않고 평양에 도달했다.

들을 건너고 산에 숨고 어떤 때는 길을 잃어 마을로 접어들기도 했다. 직접 말까지는 아니어도 얼굴이나 그 얼굴에서 나오는 냄새를 맡을 정도로 밀 접촉한 농부도 있었다.

그러나 서로 웃고 지나쳤을 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저항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놀라 달아나면서 소리쳤어도 그랬을 것이다.

웃는 얼굴 때문에 나오던 냄새의 주인은 더는 좋든 싫든 입안에 있던 것을 밖으로 뱉지 못하고 그것 때문에 산자가 아닌 죽은 자로 누군가에게 기억될 것이었다. 영웅 칭호를 받으면서 대대로 추앙받을지 누가 알겠는가.

그러나 농부는 다행히 죽어서 누리는 복보다는 살아서 가족들 품에 안기는 것을 택했다.

끼니는 훔쳐 먹지 않았다. 준비한 보급품이 충분했기도 했고 때는 가을이라 추수 전의 먹거리를 표나지 않게 확보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때로는 너무 조용히 지나치자 일부는 긴장의 끈을 조금 늦추기도 했다. 민소매 차림으로 빨래한 옷을 널고 있는 장병들 곁을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허술한 군 막사에서는 그들말고도 여러 명이 휴식 시간 인듯 한가하게 들어오는 햇볕에 몸을 맡기고 망중한 보내기도 했다. 저들에게 인민복을 입힌들 어떤 전투력이 나올지 대원들은 그 순간 의아했다.

그러나 그런 것을 물어보지 않고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지체하고 여유부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막사를 다 지날 즈음 붉은 완장을 찬 장교인 듯 한 자가 손에 든 책을 들면서 힐끔 대장 무리를 쳐다 봤으나 그뿐이었다.

무언가 귀찮은 일이 생기면 곤란하다는 표정이 순간 스쳐 지나갔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대원들 중 일부는 자신들이 배운 것이 사실이 아닐지 모른다는 의구심을 가졌다.

무언가를 해치면서 지나치지 않은 것을 전투력 손실의 하나로 보기도 했다. 실력 발휘의 욕망이 대원들 사이에서 발작적으로 피어났으나 그러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대원과 대장의 생각은 이처럼 달랐다. 대장은 최종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었고 대원들은 그러지 못해도 쑥대밭을 만들어 자신들의 존재를 북쪽은 물론 남쪽에게 널리 알리고 싶은 욕망이 앞섰다.

그런 대원의 마음을 눈치챈 대장은 그럴 기회는 얼마든지 있고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사실을 주지시키면서 살아서 돌아갈 희망을 이야기했다. 기왕이면 작전도 성공하고 목숨도 부지한다면 나쁠 것이 없었다.

그래서 침투의 흔적은 발각되기보다는 숨겨야 했다. 쫓기는 신세가 된다면 진군은 더뎌지고 목표물에 도달하기도 전에 전투력은 손실을 넘어 아예 회복 불능에 빠진다.

그것은 대장이 생각하는 가장 최악의 상황이었다. 바느질로 손수 견장을 달고 별 두 개를 붙일 때 대장은 정규 코스를 밟은 소장보다 자신이 더 우월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었다.

체력은 물론 돌발상황에 따른 임기응변, 적 앞에서 두려움이 없이 돌격할 수 있는 베짱에서는 전방의 어떤 사단장보다 내기에서 지지 않을 자신감이 있었다.

대장은 대원들이 자신들은 멀리까지 보고 가까이 있는 적은 자신들을 볼 수 없는 은폐물에서 잠깐 하는 시늉을 하면서 손을 들었다. 몸을 더 등 뒤로 숙이라는 신호였다. 새로운 작전을 지시하기 전에 한 번 더 주변을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그는 배운데로 가까운데서부터 먼데로 경계의 시선을 번득였다. 깃발도 보였고 수령의 큰 얼굴도 있었고 익히 보던 구호 같은 것도 있었다. 목표물이 확실하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구호가 걸린 건물의 높이나 뚜렷한 붉은 색의 흔적이 지워진 것은 텔레비전에서 보던 것과는 달랐다. 대장은 그런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것이 도달한 곳이 애초 정한 목표지점을 의심할 만한 근거는 되지 않았다. 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얼굴은 상기됐고 죽음이 목전에 다다른 것을 의식했다.

이 순간 죽어서 살거나 살아서 돌아간다는 생각은 머릿속에 있지 않았다. 그저 목표물을 파괴하고 정해진 표적에 총격을 가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런 시간이 빨리 오기를 바랐던 만큼 지금이라도 언덕 아래로 달려 나가고 싶었다. 새벽의 푸른 공기가 걷히기 전에 시작한 작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원들은 대장의 눈치를 살폈다. 대장은 반대로 적의 동태를 살폈다. 어깨에 총을 멘 3명의 병사들이 순서없이 이리저리 흰 건물 사이를 돌고 있는 것이 보였다. 환영이었다. 그것은 좀 전의 상황이 아닌가.

그들은 쓰러진 모습으로 남아 있고 다른 경비병은 없었다. 그런데 대장은 결행의 시간을 늦추고 있었다.

사막 섬에서 상부의 지시가 늦어지는 것처럼 대장은 왜 그러는지 대원들은 불안했다. 섬에서처럼 연기되다 폐기되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차라리 여기서 죽는게 낫다는 생각으로 조여진 워커 끈을 잡아 당겼다.

대장이 그러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 만족의 시간이 늦춰지면 대원들이 어떤 동요를 벌일지 몰라서 그러는 것은 아니었다. 운동선수가 대회 날에 맞춰 컨디션을 최대로 끌어 올리듯이 침투 전에 목에 차도록 적의를 불태운 지금 이순간이 돌격의 시간이라는 것을 몰라서도 아니었다.

먹이를 눈앞에 두고도 먹지 못하는 사나운 짐승과 같은 꼴로 대원들을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은 대장도 마찬가지였다. 눈은 이글거리고 입에서는 소화되기 위해 거품이 나오지만 이빨로 씹지 못하는 짐승의 처지에 몰린 대원들을 다독이는 것을 이 순간 잊은 것도 아니다.

대장이 주저한 것은 3일에 걸쳐 여기까지 온 과정을 되짚었기 때문이다. 복기는 하루가 끝난 저녁에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대장은 그러지 않고 시계를 뒤로 돌렸다.

빠르면 빨랐지 북의 침투조보다 늦지는 않았다. 비슷하다면 인정할 것이나 지체됐다는 표현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반대가 맞다. 이것은 자신은 희생하더라도 부하들은 살리겠다는 대장의 숭고한 마음에서 나온 발로였다.

누구의 저항도 받지 않고 심지어 바람조차도 역풍이 아닌 순풍을 타고 온 것은 잘해서이기도 했지만 신의 뜻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모든 것은 신의 뜻에 달렸다. 대장은 이번 작전이 반드시 성공할 것 같은 예감이 몸을 떨었다.

먼저 왔던 북의 그들과 우리는 달라야 했다. 비참한 최후가 아닌 영웅적 칭호를 받아 마땅했다. 그들은 틀렸고 우리는 옳았다. 불의는 실패했고 정의를 성공할 것이다.

대장이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주먹을 쥐자 대원들도 따라서 주먹을 거머 쥐었다. 결심이 섰다는 표현이었다. 드디어 신이 응답한 것이다.

대장은 이런 중대한 결정은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고 신의 부름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부름을 받은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일 분이 채 못되는 시간이었으나 대원들은 한 시간은 지체했다는 듯이 이제 말로 지시하라고 대장에게 시선을 모았다. 대장은 알았다는 시늉을 하면서 손을 들어 손가락 다섯 개를 펴보였다.

5초 후에  시작하라는 뜻이다. 들었던 손을 아래로 내리면서 대장은 이런 생각이 현실에서 적용되기를 신에게 빌었다.

상부의 작전 명령 없이 단독으로 실시한 망나니 원이었지만 성공하면 모든 것은 용서된다. 조교 13명을 살해한 이유도 충분히 설득력 있게 설명할 자신이 있다.

동료 살해에 대한 책임을 묻는 다면 기꺼이 혼자서 짊어지겠다. 실패를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다. 그것은 곧 죽음이었고 죽음 이후를 상상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시간은 지나가고 있었다. 손목에 찬 시계 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나 각자 세고 있는 마음속의 시계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앞으로 진군하고 있었다. 그 시간은 길었다.

시간이 길다고 느끼면 작전이 실패로 끝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낮이 밝으면 광장에 사람들이 모일 것이고 지난 밤 허투루 섰던 근무조는 아침 조로 바뀌면서 새로운 눈들이 등장할 것이다.

처음 마주친 그들 가운데 하나가 누구냐고 물을 것이고 그러면 대원들은 뭐라고 대답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비가 없었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상황에 처한 대원들은 당시에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대답을 하지 못할 것이고 대답을 하지 못하면 수상한 자로 몰릴 것이 뻔했다.

다른 방법은 없었다. 재빨리 광장을 가로지른 대원들은 또다른 문을 받치고 있는 기둥 아래의 계단으로 모여 들였다. 대장의 지시라기보다는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그들은 눈짓 하나만으로 플랜 B를 즉시 가동했다. 그런 때를 대비한 훈련은 적절했다. 아직 써먹지 않은 것을 포함하면 두 개나 더 남았으나 이것이 실패하면 다른 것은 의미가 없었다.

그들은 내려왔던 계단을 다시 올라가 밀었던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세 명 대원들의 모습을 기둥 아래서 지켜보고 있던 나머지 대원들은 그들은 매우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감탄했다.

자신도 그 일원이었다면 남은 대원의 이런 칭찬을 받을 만큼 훈련인지 실전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일사불란한 움직임은 여명조차도 간파하지 못하고 수수방관하고 있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어제와 같은 오늘이 펼쳐 지고 있었다.

계단 아래의 대장은 생각보다 적의 방어가 매우 허술하다고 생각했고 주변에 모여 있던 나머지 대원들의 생각도 비슷했다. 허술한 적의 대비에 대한 플랜은 없었다.

전혀 그것은 대비의 과정에서 언급되지 않았다. 만약 지금과 같은 상황을 대비했다면 지금과는 다른 대책이 분명히 나왔을 것이다.

대장은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무모했지만 다른 방법보다 효과적이라는데는 이견이 없었다. 대원들이 달려나간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다이너마이트를 기둥 사이에 설치하고 계단 아래로 날 듯이 뛰어왔다.

비호가 옆에서 그 모습을 봤다면 나와 같은 녀석들이 배고 고픈지 새벽부터 날뛰고 있는 꼴을 아니꼽게 지켜봤을 것이다.

대원들이 앞을 보고 달려 나올 때 그들 뒤로 전선 줄이 길게 꼬리를 물었다. 휴지 하나 없는 깨끗한 문의 입구는 이물질로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다. 지그재그라기보다는 일직선을 향해 검은 줄이 길게 퍼져 뱀의 모양과는 비슷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전방을 주시하던 대장은 눈길을 아래로 돌려 손에 차고 있던 시계에 고정했다. 그리고 10을 거꾸로 세기 시작하더니 3에 오자 고개를 들고 눌러, 하고 말했다.

거침없고 단호한 목소리에 응답하기라도 하듯이 거침없이 단호한 폭발음 소리가 새벽 공기 속에 깊이 파고들었다. 나보다 일찍 일어난 무엇이 소란을 피우는지 궁금했던 광장의 비둘기 몇 마리가 화들짝 놀라 땅에서 지붕 위로 급히 올라갔다.

그걸 신호라고 파악한 듯이 대원들은 화염이 채 가시지 않은 대문을 향해 일시에 달려들었다. 열린 문을 통해 안으로 달려 들어가 닥치는 대로 총을 쏘기 위해서였다. 계획은 그러나 뒤로 미뤄졌다. 미뤄지는 것은 좋을 때도 있으나 나쁠 때도 있었다.

작전이 미뤄진 것처럼 돌진의 상황도 바로 오지 않았다. 문은 상처를 입고 깨졌으나 사람 하나 들어갈 공간은 나오지 않았다.

문에 부딪쳤던 대원 하나가 어깨에 손을 대고 아프다는 시늉을 하면서 다른 대원들과 함께 대장이 있는 계단 아래로 달려들었다. 비맞은 새끼 새가 어미품으로 뛰어드는 꼴이었다. 그만큼 다급한 상황이었다.

그들은 등으로 문을 밀 때와는 달리 약간 긴장하고 있었다. 눈빛이 흔들렸다. 돌발상황에서는 누구나 그러기 마련이다. 그래서 훈련이라는 것이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 훈련이 미진했다고 탓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강한 훈련에 반복된 대장이라고 하더라도 두 번이나 작전에 실패하면 막 입대한 신병처럼 당황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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