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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를 만나서 붕어빵을 얻어 먹고 싶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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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를 만나서 붕어빵을 얻어 먹고 싶지는 않았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07.14 09: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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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에 파란 불이 들어왔다. 신호에 걸리자 가던 차들이 일제히 멈춰섰다. 반면 멈춰선 사람들은 움직였다. 멈추고 이동하는 것이 동시에 일어났다.

백 미터 스타트 라인에 선 스프린터처럼 탕 소리와 함께 움직였다. 반응하기로 말하면 걷는 사람들의 행동이 딱히 뒤쳐 진다고 볼 수 없었다.

건너려는 사람은 모두 바쁜 볼 일이 있는 사람들이었고 그 신호를 놓치면 본의 아니게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신의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성일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건너편에서 무슨 볼일이 없음에도 맞은 편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것은 아프리카 들소가 물을 찾아 대규모로 이동하는 무리와 같은 행동이었다.

앞선 자를 따라가는 것은 본능이었다. 일부러 급한 척한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그들을 따라 하고 싶은 그런 마음 때문이었다.

왜 이유 없이 그래야 하는 때가 있지 않은가. 대개의 사람들은 허겁지겁 건너고 나서는 별일 없다는 듯이 태연한 것과 다를 바 없다.

멀리서 달려와서는 막상 건너자 무슨 일이 있었지 하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을 지금도 우리는 숱하게 보고 있다. 아픈 다리를 절룩이면서 신호등이 꺼질새라 마음보다 급하게 와서는 어디로 갈 지 몰라 갈팡질팡 하고 있는 모습은 측은한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물을 먹거나 풀을 뜯는 들소들은 사람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그들은 서두르는 이유가 명확했고 지금 성일은 그런 것과는 무관했으며 성일과 같은 사람은 이 무리 속에 분명 여러 명이 있었다.

다음 신호에 편히 오라고 그런 사람을 붙잡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 들 정도로 성일은 서두르는 사람들을 경멸했음에도 자신도 그 대열에 끼고 말았다.

다음부터는 그러는 사람들에게 바로 전까지 가졌던 혐오의 시선을 거두리라고 다짐은 하지 않았으나 다른 눈으로 봐야겠다는 마음은 들었다.

길을 건너면 맘모스 백화점과는 더욱 멀어졌다. 그것은 집으로 가는 지름길과는 다른 방향을 의미했다. 그쪽 길은 호기심과 설렘과 부끄러움이 상존했다.

청량이 588 초입부터 성일의 발걸음은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여기에서는 아까와는 다른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무슨 급한 일이 갑자기 생긴 사람 흉내를 내면서 얼굴도 그런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다.

거리로 나와 있는 사람에게 아무리 그래봤자 나는 바쁜 사람이라는 속내를 겉으로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가던 길을 멈출 수 없는 뚜렷한 징후를 내보였던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손목이나 가방을 잡히면 괜히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시간만 낭비하는 서로 손해인 행동을 하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노골적으로 다가와 몸의 일부를 잡아당겼다.

너만 그런 척 하는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다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나  하듯이 그녀들은 거침없었다. 그런 수작으로 마음의 일부를 달래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이쯤해서 그만두고 원래의 목적한 바를 다시 말해 굳이 이 길로 걸어가는 이유를 충족시키라고 시선은 벌써 문 안쪽을 가리켰다.

그러면 잡힌 사람의 눈도 자연히 안쪽으로 이동하게 되고 거기서는 들어갈 것인지 말 것인지 양자 택일해야 하는 위험한 순간을 맞게 된다. 여자들이 노리는 것은 바로 그 지점이었다. 선택을 빨리 하라고 압박하는 이유였다.

예상대로 몇 걸음 못가 성일은 가방을 잡혔다. 가방을 잡힌 성일은 멈칫했으나 그것은 동의의 표시가 아니라 반동에 의한 본능이었다. 당연히 버티는 힘은 세력을 잃지 않았고 그는 첫번째 관문을 통과했다.

예상했던 것이 들어맞았는데 그 예상은 기분 좋은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시험날 아침과 같은 언짢은 기분이었다.

굳이 표현하면 똥 밟은 듯이 나쁜 기분은 아니었으나 그런 쪽에 가까웠다. 그사이 다른 사람은 성일을 지나쳐갔고 그 사람이 정말로 다른 이유 없이 이 길을 가고 있다면 시간을 절약한 행운아였다.

다른 사람이 잡혀야 하는데 대신 잡힌 것이 조금 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느닷없이 온 것이 아니었다. 질척한 길을 걸어가면서 빠진다고 불평하면 비난받을 대상은 자신이다.

이쯤해서 성일은 마음을 누그러트렸다. 그리고 겨우 라고 할 만큼 격하게 싫다는 반응을 보여 두번째로 그녀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그녀들은 길 위에 서 있다가 혹은 유리문 안쪽에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고개를 내밀고 오빠하고 나직이 불렀다.

대답이 없으면 따라와서 나란히 걸으며 놀다가 하고 옷을 슬쩍 잡아챘다. 못 들은 척 뿌리치고 한 집을 무사히 통과하면 다른 집 앞에 있던 또 다른 손이 다가왔다.

비슷한 얼굴에서 비슷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레퍼토리는 같았고 새로운 단어는 나오지 않았다. 들려오는 목소리는 풀이 죽어 있기도 하고 드센 기운이 느껴지기도 했다.

어떤 때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고 할 만큼 박진감이 넘쳐 흘렀다. 이런 소리가 들리면 빠른 걸음만으로는 역부족이다. 길의 반대편으로 멀찍이 떨어져야 했다.

그러면 미리 누가 이쪽으로 오고 있는지 보고 있던 눈들 가운데 눈치 빠른 눈이 기다렸다는 듯이 앞을 막아섰다.

학생입니다. 그녀는 이렇게 받았다. 학생이면 그거 없어. 성일은 그런 소리를 들으면 매우 당황했다. 사실이다. 당황했던 그때의 순간을 지금 표현하라고 해도 당황이라는 말 이외의 다른 어떤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떤 누구라도 그 나이 때면 그럴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에 빠져 울어야 할 때를 놓친 아이 같은 낭패감이 몰려왔다. 만약 당신이 오십이 넘은 독자라면 이런 기분 이해할 것이다. 한두 번은 그런 경험이 있을 터이니 말이다.

그거 없어, 에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성일은 모르지 않고 알았다. 어렴풋이 아는 것이 아니라 확실히 알았다. 어찌 모를 수 있는가.

놀다가는 것에 대해서도 그랬다. 놀다 갈 시간이야 많았다. 그러나 놀만한 장소가 아니었다. 그리고 짐작한 것을 호기심에 옮길 만큼 배짱도 없었고 또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그때가 되려면 앞으로도 긴 시간이 필요했다. 성일은 긴 시간 후에도 놀다 갈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것은 어떤 예시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함에도 그가 이쪽 길을 굳이 택해 걸어온 것은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 집보다 멀리 돌아가는 길을 택한 것도 잘 알지 못한다.

40년이 훌쩍 지난 옛날의 마음을 지금에 다시 끄집어내서 정확히 진단하기가 어렵다. 그만큼 당시 성일은 복잡한 세계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어색한 순간을 벗어나기 위해 반대쪽으로 붙었던 성일은 상대를 무시하고 앞으로 밀고 나갔다. 그때 힘은 소가 밭을 갈고 싶지 않을 때 느닷없이 날아온 회초리를 맞고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무작정 앞으로 뛰는 것과 같은 힘이었다.

자신에게 무슨일이 닥쳤는지 알기도 전에 소들은 그렇게 앞서 나갔고 농부는 나중에서야 이랴, 이랴 소리를 쳤다. 그렇게 튀어 나간 힘은 누구도 잡을 수가 없었고 설령 운 좋게 잡았다고 해도 이내 손을 놓치고 만다.

빠져 나왔음에도 축축한 성일의 기분은 마르지 않았다. 독자들도 알다시피 그런다고 가라앉은 기분이 세워지지도 않는다. 가슴 뛰는 일을 연속으로 지나쳤는데도 마찬가지다.

나서서 부끄러운 속으로 들어갔는데도 기분 전환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그뿐이었고 앞에 있는 물건은 여전히 치워지지 않았다.

거리에는 배추 더미가 쌓여 있었다. 뒤늦은 김장을 한 흔적들은 그대로 있으면서 서서히 삭았고 썩는 냄새를 풍겼다. 지린내와 섞인 그 냄새는 다른 곳에는 없고 오직 그곳에서만 맡아지는 특이한 냄새였다.

100 미터 남짓 한 거리를 통과하면 거짓말처럼 냄새는 사라졌다. 냄새가 사라지면 긴장했던 몸도 느슨해졌다.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그저 그런 상태에 다시 왔다. 배호의 노랫말처럼 원점으로 온 것이다.

소매를 잡아끌기 전에 빗자루를 먼저 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성일은 골목길을 빠져나와서 이런 엉뚱한 생각을 그때 했던 거 같다.

몇 번의 실랑이를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이 이런 여유를 불러왔다. 참았던 작은 한숨이 비로소 새어 나오면 고개는 오른쪽으로 자동인형처럼 돌아갔는데 거기에는 시대 극장의 간판이 걸려 있었다.

간판에는 으레 반라의 여성이 눈을 감거나 입을 벌리거나 하는 모습으로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던 기억이 안개처럼 살며시 살아난다.

극장을 여러 곳 다녔지만 시대 극장을 들어가지는 않았다. 들어가 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의문이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든다.

그러면 분위기를 묘사하는데 도움이 됐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시대극장에 들어가 그때 상영했던 영화를 보고 난 소감을 적고 싶다.

시대극장을 통과하고 나서 건널목을 지나면 기와집이 이어졌다.

길하나 사이로 저세상과 이 세상이 확연하게 갈라졌다. 저쪽이 그늘이라면 여기서부터는 햇빛이 가득한 세상이다.

길 하나만 건넜을 뿐인데 세상은 이쪽과 저쪽으로 구분됐다. 이승과 저승 차이만큼이라면 과장됐지만 그 정도로 두 공간 사이의 간격은 컸다.

어떤 사람이 강남 교보 사거리에서 청담동 쪽으로 신호등 하나만 건너면 도시에서 읍으로 옮겨간 느낌이 든다고 표현한 것이 갑자기 생각난다.

그러니 이런 표현도 틀린 것은 아니다. 저세상을 벗어났다는 안도감은 시대의 이탈자는 아니라는 위안의 다른 이름이었다. 죽 이어진 기와집을 따라 한 오 분 정도 걸어가면 성일이 사는 집이 나온다. 성일의 집이 아닌 사는 집인 것은 겨우 방 한 칸을 얻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사는 집에는 성일 외에도 옆방 누나가 있다는 것을 앞서 이야기했다. 이곳은 지린내도 없고 나와 있는 여자도 없고 놀다 가라는 말도 들리지 않는 그야말로 조용한 주택가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성일의 눈은 사주 경계에 더 분주하다. 혹시 모를 옆방 누나와 마주칠지 모른다는 조심성 때문이다. 하교 시간과 누나의 퇴근 시간은 달라도 너무 달라 그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으나 알지 못하는 것이 세상사 아닌가.

몸이 아프거나 고향에 무슨 일이 있어 일찍 올지도 모르고 그러면 우연히 만나 집으로 같이 갈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떤 때는 정말 누나와 똑같은 뒷모습의 여자를 보고 설레면서 뛰어갔다.

누나하고 막 소리를 지르려는데 여자는 옆집 누나가 아니었다.

누나를 만난다고 해서 뭐 달라질 것도 없다. 붕어빵 하나 얻어먹으려는 심사도 아니다. 그냥 보조를 맞추며 걷기만 하면 된다. 말이 없어도 친하게 굴지 않아도 배고프냐고 묻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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