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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7 00:08 (토)
땅꾼은 뱀의 허물을 잡고 위로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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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꾼은 뱀의 허물을 잡고 위로 들어 올렸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07.08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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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 길을 따라 한참을 갔으나 뱀은 없었다. 뱀을 유인하는 300 미터 간격으로 설치된 작은 그물망도 두 개를 지나쳤다. 다른 곳보다 그곳을 더 유심히 살폈던 땅꾼은 그곳 역시 비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더 빨리 그곳을 지나쳤다.

없어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면서 땅꾼은 여유를 부렸다. 아니 부리려는 기색이 역력했고 그것을 성일은 아는 척하지 않았다.

속상함을 그런 식으로 푸는 땅꾼만이 가지는 방식을 뭐라고 흠잡을 이유는 없었다. 다만 미안한 생각이, 뱀이 그물에 없는 것이 자신이 동반한 때문은 아닌지 미안한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부정을 타서 오던 뱀도 사라졌다는 일말의 자책감 같은 것이었다. 누구도 그렇다고 말로 내색은 하지 않았으나 없는 뱀에 대한 화풀이 같은 것은 필요했다. 그래야 땅꾼에게 덜 미안했다.

그래서 성일은 농약을 많이 쳐서 생태계가 파괴됐고 그래서 뱀이 줄어든 것 아니냐, 는 식의 말을 스쳐 지나가듯이 말했다. 좀 유식한 티를 내려는 의도를 담아서. 뱀의 남자는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대꾸를 하지 않아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것은 둘째치고 뱀이 어떤 식으로 그물에 걸려들고 어떻게 직접 잡아들이는지 눈으로 보려던 것이 실패로 끝나가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였다.

아직 끝난 것은 아니지만 이러다가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하면 아닌 밤중의 달빛 체조로 끝날 수도 있다. 그런 생각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 앞쪽에서 무언가 색다른 것이 보였다.

작년 것인지 흰색이 아니고 누렇게 변색되고 그나마도 구멍이 숭숭 뚫린 뱀 허물 하나가 멀리서 랜턴을 받아 주변과 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뱀 허물은 간혹 본 적이 있다. 산으로 들로 쏘아 다니던 시절뿐만 아니라 뒷간 근처나 호젓한 곳에는 간혹 그런 것이 눈에 띄었다. 대개는 호기심으로 바라보지만 이내 못 볼 것을 본 듯이 외면하고 마는 그런 뱀 허물이 그물 중간에 걸려 있었다.

뭔가 보여주면서 자신의 실력을 뽐내고 싶었던 땅꾼은 겨우 뱀 허물일망정 실망해서 낙담하지 않았다. 허물이 있다는 것은 온전한 것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것을 벗고 빠져나간 놈이 근처에 있을 것이다. 그는 허물을 잡고 위로 들어 올렸다.

몸통은 옛 성처럼 허물어졌으나 어느 부분이 얼굴 쪽인지 윤곽은 구별할 수 있었다. 좌우 눈의 위치도 구분할 수 있을 정도였다. 빠져나간 부분이 완전히 부서지지 않고 부분적으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작년 것이 아닌 올해 것일 수도 있었다.

그는 허물을 들고 그대로 둘까 잠시 망설이다가 등 뒤의 자루 속에 넣었다.

이것도 먹는 거야.

그는 뱀에 관한 한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심지어 뱀이 끌고 간 바닥의 흙도 거름으로 쓰면 좋다고 했다. 흙에 묻은 뱀 독으로 인해 채소에 벌레가 슬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연 농약이라는 것이 땅꾼의 설명이었다. 믿거나 말거나 그는 뱀에 대해서는 좋은 쪽으로만 말했다.

하지 않다가 말을 해서인지 다시 앞서가는 그의 뒷모습은 조금만 더 가보면 될 것을 초조해하지 말라고 안심시키고 있었다. 그렇다고 오늘 없으면 내일 잡으면 된다는 식의 철학적 사유가 뒷받침 된 것은 아니다.

뱀은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잡아야 한다. 뱀 사냥 철은 길지 않고 짧기 때문이다. 등 뒤의 여유는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라기보다는 의도적으로 그런 행동을 취했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사실 땅꾼은 초조했다. 그는 사촌형 집에 보름간만 있기로 하고 셈을 벌써 치른 뒤였다. 보름간의 기간은 그가 뱀 철로 정한 기한이었고 따라서 이 시간이 지나면 뱀을 잡을 수 없다는 판단이 섰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은 정한 기일을 3일 앞둔 시점이었다. 잡아 온 뱀은 겨우 작은 자루 하나 찰 정도였고 그것으로 일 년 농사를 지었다고 할 수는 없었다. 자루 속에는 비싼 구렁이가 한 마리 있었고 그 보다 조금 싼 독사가 네 마리 나머지는 꽃뱀 등 잡뱀이었다.

잡뱀도 수확이 신통치 않았으므로 오늘 밤 사냥에 땅꾼은 기대를 많이 걸었던 것이 사실이다. 낮에 한 번 돌아볼까 생각도 했으나 부정 탈지 모른다는 아내의 말을 따르는 척하면서 한꺼번에 다 잡을 생각으로 저녁에 나왔던 것이 이 모양이다.

땅꾼은 손에 쥔 뱀 막대기를 앞에 수풀이 있는 것처럼 휘저으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나아 가는데 지장이 있는 것을 제거하는 시늉을 낸 것이다. 이 막대기만 있으면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다. 아무리 큰 구렁이라도 아무리 센 독을 가진 독사라 해도 한 방에 제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 그는 뱀의 혀처럼 끝이 두 가닥으로된  막대기를 사용 했으나 뱀의 크기에 따라 불편함이 있다는 것을 알고 기역 자 모양으로 끝을 바꾸었다.

끝은 나무가 아닌 쇠였고 쇠는 그 스스로가 부러진 쇠스랑을 무두질해서 만든 것이었다. 마치 작은 괭이처럼 생긴 그것이 앞을 휘저을 때마다 후레시 불빛이 그 뒤를 따라가기도 하고 앞서가기도 했다.

휴가 나온 형은 철책을 돌 때 가장 든든한 것이 총이라고 말했다.

총만 있으면 든든해.

땅꾼에게 지금 든든한 것은 뱀 막대기였다. 식스틴의 차가운 금속의 느낌과 막대기 끝에 매달린 쇠의 느낌은 다르지 않고 같았다.

네 사람은 묵묵히 더 걸었다. 다시 침묵 모드에 빠져든 것이다. 그러다가 갈증이 났는지 앞선 남자가 갑자기 멈추더니 배낭에서 막걸리를 꺼내 흔들었다.일렬 종대의 대열은 흐트러지고 좁은 원형의 형태가 됐다.

뱀의 여자가 이쯤이 좋겠어? 한 마디했다.

그날 밤 뱀의 여자에게서 들은 첫 말이었다. 랜턴이 피워낸 불빛 사이로 보이는 여자는 남자보다 훨씬 더 어렸다.

그 말을 할 때 어린 목소리가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앳된 얼굴에 앳된 목소리가 뱀의 여자와 조화로운지 아닌지 모르겠다.

다만 성일은 여자의 얼굴이 어쩌면 그렇게 뱀의 남자와 똑같은지 한날한시에 나온 쌍둥이라도 그렇지 않을성 싶다는 생각은 했다. 대낮에 평상에서 보았던 옆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핏줄은 다른데 같은 모양의 사람이 지금 눈앞에서 서 있었다. 어쩌면 이들은 부부가 아닌 남매라고 해도 믿을만했다.

앉아있지 않고 섰을 때의 분위기 또한 달랐다. 우선 키가 남자와 나란히 일자였다. 줄자를 가지고 재보면 1센티의 오차도 생기기 않을 듯했다. 몸통은 다부져 모자 뒤로 내려온 긴 머리만 아니면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얼굴은 물론 전체적인 몸과 풍기는 분위기는 부부는 닮아 간다가 아니라 닮는다고 확정해야 옳았다.

남자가 술병을 들고 여자가 잔을 받았다. 술병을 흔들 때 여자는 가만히 있지 않고 잔을 챙겼다. 이들의 행동은 오랜 경험과 습관으로 인해 모든 것이 착착 맞게 진행됐다. 한 사람이 무엇을 하면 다른 사람은 그 뒤에 따르는 것을 알아서 해냈다. 술병을 들고 잔을 받쳐 든 뱀의 남녀는 진지했다.

그 모습은 조상의 제를 지내는 것처럼 공손했는데 잔이 채워지자 여자는 그 잔을 먼저 보아 두었던 옆의 넓적한 돌 위에 올려놓았다. 여기서 이렇게 하자고 미리 정해 놓은 듯이 돌이 있는 곳에서 남자가 멈춰 섰던 것을 이제야 알았다.

열흘 넘게 둘이 얼마나 뱀그물 주변을 다녔는지 지형지물을 완전히 숙지한 상태가 아니면 힘든 행동이었다.

언제 준비했는지 돼지 생고기 한 점이 받침대에 받쳐 잔 옆에 놓였다. 움직이던 여자가 동작을 멈추고 두 손을 가지런히 앞쪽으로 모았다. 준비가 끝났으니 이제 시작해도 좋다는 신호였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망설이지 않고 남자가 먼저 절 두 번을 했고 이어 여자가 같은 방식으로 절을 했다.

목맸혀.

여자가 두 번째로 말을 한 것은 남자가 막 절을 끝낸 상태였다. 남자는 아무소리 없더니 사촌에게 절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눈짓으로 물었고 사촌은 끝났으면 먹자고 말해 그러기를 거부했다.

성일은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할지 고민했으나 땅꾼은 그에게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여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여자는 그런 대상이 아니었다. 성일은 그가 사촌에게 했던 동일한 방식으로 물었다면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은 늦었고 뱀의 남자는 따라 놓았던 잔을 들고 그물 밖으로 뿌렸다.

뿌릴 때 흩어지는 물방울이 그물에 걸려 뱀 허물처럼 잠깐 흰색을 드러냈다. 그 자리는 뱀 허물을 떼어낸 곳이었다. 생고기는 그 자리 그대로 두었다. 남은 술은 뱀의 남자, 사촌, 성일 그리고 뱀의 여자 순으로 돌아가면서 한 잔씩 했다.

사촌이 뱀의 여자에게 먼저 마시라고 양보했으나 여자는 그러기를 사양하면서 먼저 드시라고 권했다. 그것은 상대의 의중을 떠보기 위해 하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실제로 그러기를 바라는 것이어서 사촌은 두 어 번 권하다가 그러면 하는 말과 함께 잔을 비웠다.

성일 역시 비슷한 제의를 했으나 여자는 이번에는 두 손을 저으면서 완강히 아니다, 라는 뜻을 전했고 남자 역시 먼저 먹으라는 시늉을 했다. 막걸리 맛은 어디 가지 않고 그대로였고 마침 목이 마른 참이어서 쉬지 않고 원샷으로 끝냈다.

앞선 두 사람이 그렇게 했으므로 성일도 따라 한 것이다. 시골에서 자란 성일은 일치 감치 술을 배웠다.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이미 경험을 한 터였다. 그러니 원샷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린 녀석의 술 솜씨를 뱀의 남자는 게의치 않았다. 성일은 빈 잔을 여자에게 넘겼다.

자기 차례가 왔음으로 여자는 사양하지 않고 잔을 들고 입을 벌렸다. 그녀 앞니 두 개가 없는 것이 확 눈에 들어왔다. 말할 때는 보지 못했던 것이 술을 먹을 때 보였다. 보려고 일부러 눈을 그쪽으로 가까이 댄 것은 아니다.

앞니 두 개가 없는 것까지 뱀의 부부는 다르지 않고 같았다. 그것은 나란히 놓인 밥상 위의 젓가락 두 개가 같은 것처럼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여자도 잔을 입에서 떼지 않고 다 들이마셨다. 그러고 나서 여자는 들었던 잔을 아래로 내려놓기 위해 눈을 위로 떴다. 그때 성일은 여자의 눈을 보았다.

마주친 눈은 작아도 너무 작았다. 뱀의 눈을 사람의 얼굴에 박아 놓은 것처럼 검은 깨알이 세모진 얼굴 좌우에 박혔는데 그 눈은 움직임을 멈춘 채 한 곳에 고정돼 있었다.

큰 종이에 먹으로 살짝 찍어 놓은, 점 같은 눈을 덮고 있던 눈썹이 움직이자 그나마 보였던 검은 동공은 사라져 눈 없는 얼굴이 눈앞에 서성였다. 놀라운 것이 있다면 이런 것이다.

섬뜩한 기운이 순간 지나갔고 성일은 어서 잔을 치우고 시간을 당겨 하던 뱀 사냥을 계속 해야 한다고 손을 입으로 가져가 입가심 하는 시늉을 냈다. 뱀의 여자에 대한 궁금증은 이쯤해서 끝내고 싶었다.

두 사람이 어쩌다 만났는지, 산속에서 뱀을 잡다 그랬는지 아니면 뱀 탕집에서 뱀을 고다 눈이 마주쳤는지 하는 그런 시덥잖은 사랑에 관한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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