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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0-08-08 11:59 (토)
사라졌던 달이 나타나자 모든 것이 명확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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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졌던 달이 나타나자 모든 것이 명확해 졌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07.02 09: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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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민구는 뱀 부부와 사촌 형과 함께 뱀 사냥에 나섰다.

집에서 30분 정도 가자 앞산의 그물 친 곳에 도달했다. 그물은 일 미터 높이로 중간중간 나무 말뚝이 세워져 있고 길게 늘어져 있었는데 길이가 2킬로 정도 된다고 했다.

뱀 그물 주변은 얼마나 사람이 다녔는지 발자국으로 인해 어둠 속에서도 반질반질했다. 철책선을 순찰조가 도는 길이 꼭 이와 같을까. 그 길은 군화로 인해 그렇게 됐고 지금 이 길은 땅꾼의 장화 발자국의 흔적이다.

문득 칠흑같이 깊은 밤 철책 주위를 돌고 있을 형이 생각났다.

형은 중부 전선 최전방 사단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한 학기도 마치기 전에 머리를 깎고는 얼른 갔다 오겠다고 말하고 사라졌다. 군대 가는 것이 마치 밥 한 끼 뚝딱하는 것처럼 쉬웠다.

원하던 것을 손에 넣은 것처럼 기쁜 얼굴로 배웅하는 민구를 쳐다볼 때는 신혼 여행가는 것처럼 형의 뒷모습이 가뿐했다. 그러나 어디 부모 마음은 이 같을 수 있을까.

누구나 가야 하는 길을 가는 것이니 못마땅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떠나보내는 품 안의 자식에 대한 걱정 같은 것이 없을 수 없었다. 한 달 후에 철원우체국 직인이 찍힌 편지가 보령 집으로 왔다.

예상대로 너무 잘 있어, 그러니 걱정 같은 것은 붙들어 매라고 되레 당부하고 있었다. 어른스러운 것이 한 발 짝 더 나아갔고 그래서 가족들은 모두 안심했다.

허겁지겁 무엇에 쫓기듯이 가서 어머니의 가슴을 멍들게 했으나 그날 민구네 밥상은 안도감과 작은 행복감으로 푸짐했다. 전쟁터로 끌려간 것은 아니지만 군대 간다는 말은 그만큼 세상 엄마의 마음을 졸개 했고 어머니 역시 그 대열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대열의 맨 앞자리에 섰어도 부족했을 어머니는 무슨 보물단지를 껴안고 있듯이 편지를 가슴에 품고 잠자리에 들었다. 잘 있다니 그보다 더 좋은 소식은 없을 것이다. 해주에서 큰아버지가 군수로 임명됐던 것과도 비교될 수 없었다.

밖은 어두워지고 이내 깜깜한 밤이 되자 누웠던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잠이 들었는지 아니면 그냥 누워있기만 했는지 어머니는 일어날 때 윗몸 일으키는 운동선수처럼 가뿐하게 상체를 들어 올렸다. 그렇게 하고 나서는 곧 매무새를 가다듬고 대문 뒤쪽으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물이 가득 담긴 흰 사발을 뚜껑 덮힌 장독대 위에 조심스레 올려놓았다. 등잔불이 그 옆에서 잠이 덜 깬 듯이 깜박깜박 조는 시늉을 했다. 어머니는 두 손을 맞잡고 빌고 또 빌었다. 정안수 떠놓고서 아들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막 떠오른 달빛이 비추었다 사라질 때까지 한 시간 넘게 계속됐다.

낮과 밤이 바뀌는 철책 근무는 페바 지역보다 어떤 때는 덜 피곤했다. 훈련보다 근무만 서는 생활이 육체적으로는 덜 고달팠는데 그렇다고 만사가 편한 것은 아니었다.

훈련이 적은 대신 잡다한 내무생활이 열외보다는 수시로 생겨났다. 무언가 해야 하는 일이 끝나기를 기다려 또다른 일이 바로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끝이 없었다.

그래서 병사들은 경사진 언덕에서 족구하는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없는 시간을 쪼개 네트 위에 대열을 정비하면 몸이 저절로 달아올랐다. 족구는 짬밥이었다. 체육학과 출신도 신병은 헛발질에 익숙했다.

그러나 운동이 뭐지? 하는 수준이었던 이병이 상병이 되면 상황은 달라졌다. 그것이 군대 족구였다. 보름 간격으로 오는 부식차가 도착하면 내기에 졌던 팀들은 자기 몫의 일부를 떼주어야 했고 다음에는 준 것을 받기 위해 다시 네트 위에 모였다.

그러고 나서는 잠을 자거나 얼굴에 검은 칠을 했다. 철책 근무는 이처럼 자는 조와 투입되는 조 두개 뿐이었다. 

그 무렵 대남방송은 더욱 뚜렷하게 막사를 흔들었다. 한마디로 극성을 떨었다. 무엇이 그렇게 급하고 고조되는지 그들의 목소리는 늘 흥분의 정점에 있었다. 그래야만 할 이유는 전혀 없었는데도 그렇게 매일 떠들어 댔다.

시대에 맞기보다는 아주 많이 떨어진 방송에 관심을 두는 병사는 없었다. 으레 그렇게 중얼대다 끝나는 성과없는 외침은 그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오기 정도로 여겨졌다.

그러나 새벽이 오면 상황은 달라졌다. 웅성거리는 소리는 비수가 되어 살점에 하나씩 밝혔다. 추석 무렵이었다. 달은 해보다 더 크고 더 선명하고 더 밝았다.

초소에서 병사들은 이것저것 생각에 잠겼다. 그런 것에는 둔감한 사람들도 머릿속이 제법 활발하게 움직였다. 고향을 그리는 사람도 있었고 친구나 두고 온 애인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런 감상에 젖는 시간에 들려오는 대남방송은 그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심금을 울렸다.

되지 않은 소리를 지껄여도 그런 때는 실제로 그런지 궁금증이 일기도 했다. 헛소리도 되풀이하다 보면 진심으로 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은 그런 시간을 교묘하게 파고들었다. 군대는 많은 것을 변하게 하니 어쩌면 그것도 그리될지 모를 일이다.

성구형도 변하는 삶에 익숙해졌다.

고참이 철모를 깔고 코를 골며 잘 때는 전방 주시에 더 신경을 썼고 멀리서 후레쉬 불빛이 보이면 순찰조가 누구인지, 외워야 할 사항은 무엇인지 점검했다. 내가 아니면 누가 지키랴 같은 군가는 묵직하게 가슴을 쳤고 그럴 때면 으레 물샐 틈 없는 경계가 뒤따랐다.

바람이 불었다. 빠르게 움직이는 구름이 달을 가리고 나뭇잎이 흔들렸다. 그중 몇 개는 유성처럼 꼬리를 일직선으로 뻗으며 땅으로 떨어졌다.

전방의 움직임이 수상하다. 두셋이 한 조가 돼서 앞으로 서서히 이동한다. 영락없는 적이 침투하는 모습이다. 철모 안의 머리털이 쭈뼛쭈뼛 일어선다. 잠시 여기서 어떤 독자들은 바짝 깎아서 일어설 털이 없다고 반박할지 모른다. 사실이다.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표현은 그만큼 긴장하고 있다는 비유의 표현이다. 그러니 가볍게 시비 걸어서 쉬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나 다음 장면이 궁금한 독자들을 위해 비켜서 주기를 바란다. 그만큼 그런 독자만큼이나 작자도 빨리 앞으로 달리고 싶기 때문이다.

잠시 고참을 흔들어 깨워야 할지 고민이다. 성구는 그러기 전에 한 번 더 전방을 주시한다. 움직임이 멈췄다. 적이 눈치챈 것일까. 그러나 사라졌던 달이 나타나자 모든 것이 명확해 졌다.

적처럼 보였던 것은 두세 덩어리의 검은 돌무더기였다. 적은 없었고 따라서 침투도 일어나지 않았다. 낮에 지형지물을 숙지하지 않았다면 일이 터질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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