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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달리는 두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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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달리는 두 다리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02.05 1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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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름을 제대로 먹고 나서 나는 두 발에 감사했다. 산길을 오를 수 있도록 걷는 힘을 주었다. 온몸을 앞으로 밀고 나갈 수 있었던 것도 오로지 발 때문에 가능했다.

몸을 지탱하면서 앞으로 갈 동안 나는 발에게 어떤 감사한 마음도 갖지 않았다. 그냥 누구나 있는 것으로 알았다. 사람이라면 다 발이 있다. 하물며 개나 돼지나 소도 그렇지 않은가.

짐승까지 있는 것에 감사할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 생각은 내가 초등학교에 갔을 때 깨지기 시작했다. 다리가 불편한 친구가 있었다. 목발을 하지는 않았으나 오른쪽 다리가 왼쪽 다리보다 조금 짧았다.

그래서 걸을 때는 그쪽으로 절뚝거렸다. 쓰러질 듯 위태로웠다. 오른쪽으로 몸이 쏠릴 때면 허리에 찬 책보도 그쪽으로 쓰러졌다.

그 모습은 기괴했고 보기에 좋지 않았다. 마치 다친 다리를 끌고 가는 옆집 개와 같았기에 나는 그 친구를 생각하면 개가 떠올랐다.

나를 포함한 우리들은 간혹 그런 모습을 흉내냈다. 단지 흉내만 낸 것이 아니라 큰 소리로 웃고 떠들기 까지 했다. 어떤 때는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느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부끄러움을 모르던 시절이었다. 평소에는 친하게 지내다가도 화가 날 때는 병신이라고 욕을 했다. 그냥 병신이라고 할 때도 있었고 다리 병신이라고 꼭 집어서 말할 때도 있었다.

눈을 부릅뜨고 그것이 마치 네가 잘못한 증명이라도 되는 양 큰소리로 외쳤다. 비록 그가 잘못하지 않았어도 병신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친구는 울음을 터트렸고 상황은 그것으로 종료됐다.

병신은 잘못과 같은 말이었다. 잘못하지 않았어도 그 소리를 들으면 그는 잘못한 사람이 되었고 그 소리를 지른 사람은 잘못했어도 잘못하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나를 포함한 우리들은 모두 마법 같은 그 단어를 필요할 때만 써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큰 죄를 지었다.

친구는 울었고 울다가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고개를 책상을 향해 떨어뜨리고 어깨를 들썩일 때 우리는 미안한 감정보다는 그러니까 앞으로는 까불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야기를 한동안 잊고 지낸다. 그러다가 체육 시간 이거나 달리기 시합이 있을 때면 다시 상기하는 것이다. 제대로 걸을 수 없는 자와 달릴 수 없는 자와 그러지 않은 자는 늘 대비됐다.

선생님은 그에게 너는 빠져 있어, 라고 매정하게 말했다. 대열에서 이탈된다는 것은 친구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만일 내가 친구 대신 너는 빠져 있어, 라는 말을 들었다면 내 가슴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으름을 배불리 먹고 나서 나는 그때 그 친구를 생각했다. 내가 그 친구였다면 나는 지금 이런 풍광을 마주하지 못할 것이다. 산을 넘 거나 언덕의 아슬아슬한 부분을 거쳐 올 수 없었고 나무를 타고 오르지 못할 테니까.

그러니까 나는 오늘 다치지 않은 건강한 두 다리에 감사하고 있다. 세상에는 감사한 것이 많이 있고 그것을 잊고 지낸다. 그러다가 문득 어떤 계기로 인해 그것을 깨닫고 미안한 감정까지 더해지면 잠시 착한 사람으로 돌아온다.

배가 부르고 다친 어린 시절의 친구까지 떠오르자 나는 지금 순간의 편안함에 감사했다. 나는 누워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여기저기 펼쳐진 그림을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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