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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의 시간은 길고 느리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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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의 시간은 길고 느리게 흘러갔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9.12.26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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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인수인계한 다음 날 나는 다시 육지로 나왔다. 전날 먹은 술은 과음이 아니어서 나른한 몸에 생기를 주었다.

갈매기 소리에 눈을 떴을 때는 아직 여명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간이었다. 파도는 잔잔했고 새들은 높이 날지 않고 가볍게 수면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방해받지 않는 지금 이 시간에 그들은 먹이 활동보다는 장난을 치면서 인생의 의미를 새기고 있었다.

아직 어린 녀석들은 형이나 누나의 몸짓을 흉내 냈으며 아버지와 어머니는 근처 바위에 앉아 지난봄에 태어난 아직은 어린 자식들의 재롱을 보면서 즐거워했다.

나는 좀 더 이불 속에 있을까 하다가 밖으로 나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섬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습기 대신 솜털 같은 바람을 실어 왔다. 텐트를 정리하고 나는 다시 섬의 위쪽으로 올라갔다. 간단하게 스프로 아침 요기를 하고 나서 배가 들어오는 모습을 지켜보기로 했다.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부지런한 육지 사람들이 섬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빨라도 9시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8시까지 출항 준비를 마쳐야 한다. 그러나 섬사람들은 더 부지런했다.

그 시간이면 그들은 이미 오전 일과의 상당 부분을 해치운 상태였다. 일주일가량 섬에서 생활하다 보니 섬의 시간은 육지의 시간보다 길고 오래갔다.

마치 북유럽의 밤하늘처럼 여간해서는 해가 지지 않았다. 밤 10시에도 환한 거리는 밤낮의 구분을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들었고 부지런한 사람조차 발걸음을 무디게 만들었다.

갈매기들은 점차 수가 늘어났다. 어디서 왔는지 떼로 지어 날아다니면서 물장구를 치기도 했고 솟구치면서 하늘로 비상하기도 했다. 그들은 신이 났으며 오로지 할 수 있는 것은 날개를 펴고 나는 것뿐이라는 듯이 쉬지 않고 날고 또 날았다.

그들의 지칠 줄 모르는 힘이 장관이었다. 한동안 지켜보았는데-그 녀석은 다른 녀석보다 조금 더 크고 몸동작이 더 거칠었다. - 휴식은 자기 사전에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것이 있다면 개나 주라고 말하는듯 싶었다.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그것이 정해진 루트를 따라가는 것이 아닐 때는 더욱 그렇다.

갈매기들에게 길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들이 나는 곳이 바로 길이었다. 애초 없는 길을 만들기도 했으며 있는 길을 없애기도 했다.

삼 십 분 동안 갈매기들이 허공을 난 것을 색으로 표시했다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다. 아무렇게나 날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저 동작에도 일종의 패턴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 패턴이 어떤 모양일지 궁금했다. 그들에게 그런 패턴이 존재할까. 그때 또 저쪽에서 한 무리의 갈매기가 무리에 합류했다. 그들은 만나자마자 큰소리로 인사를 하면서 몸을 비벼 대기도 하고 날개를 부딪치기도 하면서 알은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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