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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다 남은 뼈를 가루로 만들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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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다 남은 뼈를 가루로 만들지는 않았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9.11.13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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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저를 손에 잡자 편안한 기분이 몰려왔다. 마침 바다도 밀물이어서 저 아래쪽에서부터 물이 밀고 들어왔다. 바람한 점 없는 잔잔한 날이어서 마치 수저를 쥔 내 마음과 바다가 일치했다.

나는 긴 수저를 잡고 일단 국물을 한 번 떠서 먹어 보았다. 깔끔했다. 늘 나는 이런 표현을 썼다. 국물이 일단 깔끔하면 내용물은 어떤 것인지 상관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오늘은 우럭에 감성돔이 들어 있다. 흔하다고는 하지만 망둥어도 두어 말이 있으니 그야말로 잡탕이 되겠다.

아니 잡탕이 아니다. 고급 매운탕이라고나 할까. 살아 있는 것을 바로 칼질해서 넣었으니 신선하기는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것을 육지에서 먹었다면 바다 냄새가 난다느니 파도가 코끝에서 출렁인다느니 하면서 호들갑을 떨어도 충분했다.

일하고 나서 먹는 밥은 얼마나 충만한가. 건물이 아름다운 오래된 성당에 들어가면 저절로 고해성사를 하고 싶은 심정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밥을 먹었다. 빨리 먹으라고 재촉하는 사람도 없었고 기다리는 다음 손님을 위해 눈치 볼 필요도 없었다.

바닷물은 저 알래 발치까지 밀고 올라왔다. 잔잔하게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오는 것이 마치 숙련된 병사사 은밀히 침투하는 것 같았다. 밀물이어서 아래로 쓸려간 물은 저 멀리 가지 못하고 바로 다시 올라왔다.

달은 서쪽하늘에서 떠올라 이제는 머리 위에서 내려다 봤다. 주머니에서 소주병을 들고 달을 쳐다 봤다. 술친구가 따로 없다. 달과 내가 건배를 했으니 대작이다.

그 맛, 아주 달았다. 소주가 달 때는 처음 한 두잔 이지만 오늘은 한 병을 다 비우고도 여전히 달았다. 저린 다리를 풀기 위해 잠시 일어나니 그림자가 바닷속으로 떨어졌다.

그림자와 달과 내가 모여서 함께 술을 먹고 있다. 이백인지 누군인지를 흉내내면서 그렇게 한 시간 이상을 밥과 술을 먹었다.

나는 먹고난 음식물을 깨끗이 처리했다. 국물까지 다 비웠으므로 남은 것은 뼈다귀 밖에 없었다. 그릇을 들어 나는 뼈다귀를 평평한 바위 올려 쏟았다.

그리고 옆에 있는 역시 평평한 돌로 그것들을 조금씩 쪼았다. 아주 가루를 낼 까 생각도 했으나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나는 잘게 쪼개졌다고 생각할 때까지 여러 번 돌을 들어 내리쳤고 부서진 뼈를 바다에 던졌다. 보지 않았어도 근처를 배회하던 우럭이나 놀래미 혹은 망둥어 등이 덤벼 들 것이다.

먼 바다로 나가기 않은 감성돔이 있다면 녀석도 큰 눈을 두리번거리면서 녀석들과 아귀다툼에 동참할 것이다.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한 것은 그것들의 습성은 아주 강력했고 그것이 그들이 존재하는 이유였다. 대충 바닷물로 그릇을 씻고 입을 행군 물로 그릇을 비웠으니 설거지까지 완성됐다.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고운 모래사장에 발이 조금 빠지기는 했으나 걷는데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한 삼십분 정도 산책을 하고 이것저것 뒤처리를 했다. 시계를 보니 9시가 조금 못됐다. 시계의 야광 판이 반짝였다. 주변은 이미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먼 바다의 고깃배에서 나오는 집어등이 까마득했다. 야광 판을 한 참을 보다가 나는 텐트로 들어왔다. 발을 털고 익숙한 솜씨로 지퍼를 열고 안으로 들어오니 아늑했다. 밖에도 바람이 불지 않아 고요했는데 텐트 안은 더욱 고즈넉했다.

이런 기분이 들 때는 음악을 들어도 좋고 무언가 끄적여도 좋고 독서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나는 에어가 들어간 베개를 세우고 핸드폰에 꺼내 뉴스 몇 개를 검색한 후 옆에 있는 가계부를 집어 들었다. 가계 살림을 적은 것이 아니라 하루 일과를 기록하는 일기장 같은 것인데 자기 전에 한 두 줄 적어 놓는 것이 습관이 됐다. 그래서 오늘도 그 습관대로 무언가를 적어놓을 작정이다.

그 때 밖에서 무슨 인기척 같은 것이 들렸다. 이곳은 무인도라는 생각이 든 것은 바로 그 때였다. 아무도 없는 섬에 인기척은 무언가 꺼림칙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나는 안에 사람이 있다는 표시로 킁, 킁 거리는 소리를 몇 차례 낸 후 밖에 누가 있는지 물었다. 그러나 몇 초간을 기다려도 사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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