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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16 23:33 (화)
애들 흙장난 하기에는 좋은 물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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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흙장난 하기에는 좋은 물건이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9.11.05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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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지만 오늘 일을 복기해 보니 그런대로 괜찮았다. 애초 큰 쓰레기봉투에 50개를 채울 요량이었는데 38개를 채우는데 그쳤다.

해안가를 스치듯이 지나가면서 일을 했다면 충분히 가능했다. 널려 있는 쓰레기를 줍는 것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여반장이었다.

그런데 바위틈에 박힌 스티로폼이나 찌그러진 플라스틱병을 꺼내는 것은 어려웠다. 무시하고 지나쳤으면 됐으나 그러지 못한 것은 꾀를 부리기 위함이 아니었다.

눈에 거슬렸으므로 반드시 치워야 했고 이번에 그러지 못하면 몇 년이 걸릴지도 몰랐다. 아니 영원히 그 쓰레기는 치워지지 않고 수백 년 후 썩어서 무너져 내릴 때까지 그 자리에 있는지도 몰랐다.

그런 곳의 쓰레기는 일단 쓰레기봉투를 옆에 놓고 집게를 놓고 두 손으로 바위틈을 벌리거나 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걸렸다.

어떤 것은 손이 닿지 않아 엎드려서 집게를 뻗어야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오늘 일과도 썩 나쁘지는 않았다. 밖으로 나오자 우럭의 타는 듯한 냄새가 코를 확 앞질러 들어 왔다.

텐트 문 앞에서 스멀거렸던 냄새는 문을 열자마자 보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후각을 강하게 자극해 왔다. 뚜껑을 열었더니 희미한 불빛아래서 엎어진 감성돔의 은빛 비늘이 꿈틀거렸다.

나는 적당한 돌을 찾아 깔고 앉았다. 이미 손에는 수저가 들려 있었다. 수저를 볼 때마다 어떤 환상에 빠지는데 그것은 수저를 구입했던 곳에 대한 이미지가 함께 박혀 있었다.

수년 전 정확히 햇수를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거진 10년도 더 지난 세월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나는 황학동 근처에 있었는데 일을 마치고 귀사하려다 벼룩시장을 한 번 구경하자는 심사가 일었다.

시간도 그렇게 쫓기는 상태는 아니었으므로 한 시간 정도 후딱 둘러봐도 무리가 없었다. 그래서 이곳저곳을 돌다가 어느 한 곳에 발을 멈추었다.

그곳은 골동품 가게였는데 인디언 그림이 그려져 있기도 하고 칼이나 활 같은 것이 섞여 있어 마치 동서양 문화의 교집합 같은 곳이었다.

나는 긴 수저를 하나 발견했는데 일반 수저보다 길이가 한 뼘 정도는 더 길었고 끝에 구멍을 뚫려 있어 끈으로 매달고 다닐 수 있었다.

움푹하게 들어간 정도는 약해 거의 비스듬한 형태여서 수저로서 국물을 떠먹기에는 조금 부족하다 싶었다.

그런데 수저의 두께나 손잡이 부분이 매우 두꺼워서 잡는 순간 어떤 묵직한 감촉이 마음에 들었다. 일반 수저의 다섯 배 정도의 굵기였는데 스테인리스가 아니라 놋쇠로 된 것이었다.

이것이 수저로 만들었는지 아니면 다른 용도였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미로 같은 이곳저곳을 구경하다가 발이 멈춘 곳은 하필 아까 그 장소였다.

나는 주인에게 그것을 들고 이것이 수저인지 물었으나 주인은 자신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저로 써도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어디서 어떻게 굴러 들어 왔는지 자신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터무니없는 값을 부를 지도 몰라 관심이 없는 듯이 하다가 애들 흙장난하기는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만원이면 팔겠느냐고 묻자 바로 집어서 손에 안겼다.

오천 원이라도 팔겠다는 심사였는지 돌아서는데 늙은 상인은 안녕히 가시라고 친절하게 인사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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