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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은 두 스푼 정도의 소금으로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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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은 두 스푼 정도의 소금으로 맞췄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9.10.28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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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이 당기는 힘과 방향으로 짐작해 보건대 녀석은 우럭이 틀림없었다. 서해안의 얕은 바다에서 대충 끼운 미끼를 덥석 무는 녀석은 우럭밖에 다른 어종은 생각할 수 없었다. 망둥이나 놀래미는 이런 정도의 힘을 쓰지는 못했다.

아래로 당기는 힘과 좌우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힘을 쓰는 녀석에게 나는 무한한 감탄을 느꼈다. 내 손맛이 아니라 놈이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장엄한 몸짓에 작은 경외심까지 일렁였다.

뭉툭한 대가 아니라 초릿대 정도의 날렵함이라면 끝이 크게 휘어질 것이고 휙, 휙하는 소리가 장난이 아닐 것이었다. 나는 손맛을 느끼면서 놈과 씨름하는 척하다가 그대로 위로 세게 당겨 올렸다.

조악한 채비로 놈을 놓칠지 모르는 상황을 벗어나야 했다. 놈을 안전지대인 바위 사이의 모랫바닥에 떨어뜨리고 나서 나는 안도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놈은 우럭이 아니라 돔, 그 가운데 감성돔이었다.

조심스럽게 놈을 제압한 후 눈높이로 들어 올렸을 때 나는 확실히 놈이 우럭이 아닌 돔이라는 것을 알았다. 가까이 눈앞으로 가져왔다. 온몸의 은빛이 틀림없었다. 핸드폰의 후레시 불빛을 이용해 놈을 자세히 관찰했다. 놀라웠다. 감성돔이었다.

검지 손가락 사이로 놈이 작은 이빨을 이용해 빠져나가려고 발버둥 쳤다. 이빨이 피부로 파고들었다. 발버둥 치면서 털어내는 물방울이 얼굴을 마구 때렸다. 안경으로 몇 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나는 개의치 않았다. 아가미에 낀 엄지손가락에 더욱 힘을 주었다. 아가미가 찢어 지면서 약한 피 맛이 감돌았다. 검지 손은 이제 통증을 느낄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그런 상황을 벗어나기보다는 즐기려고 했다.

놈은 손가락을 바늘 정도로 생각하고 털어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망망대해는 아니더라도 검푸른 바다를 유영하고 있어야 할 녀석이 고작 작은 인간의 초라한 낚싯대에 걸려들었다.

녀석은 나를 탓하기 전에 나쁜 운을 저주해야 했다. 그리고 아무리 저녁이라고 해도 허술한 미끼에 그것도 잡어들이나 집적대는 챔질에 말려든 것은 그의 실수였다. 나는 내려놓았다.

녀석은 이날 횟감 대신 매운탕 재료로 써야 할 것이다. 회는 손질도 많이 가고 혼자 먹는 맛이 아무래도 당기지 않았다. 바닷속에서는 제왕처럼 날뛰었지만 지금 그는 초라했다.

겨우 숨을 붙이고 있기 위해 헐떡이고 있었다. 짧은 순간 나는 녀석을 동정했다. 하마터면 놓아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미 망둥이 상당수를 살려줬기 때문에 녀석이 없는 매운탕은 싱거울 것이고 맛이 덜할 것이다. 녀석이 마지막 숨을 몰아 쉬면서 바다로 가기 위해 팔딱거렸다.

녀석의 생존 의지는 대단했다. 주변 땅은 진도 5 정도의 울림이 있었다. 아니 그렇다고 느꼈다.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불쌍한 녀석과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망둥이처럼 녀석도 바다로 갈 지 몰랐다.

그러나 내 입맛을 고려하면 녀석은 모래를 뒤집어쓰고 죽어야 했다. 나는 호주머니에서 주머니칼을 꺼내 들었다. 가까운 친척이 돈 천 원에 나에게 판 맥가이버 칼이었다. 친척은 칼을 주기 전에 돈 을 먼저 요구했다. 칼은 흉기이므로 친척에게는 선물로 줄 수 없다고 했다.

미신이지만 그럴듯했고 천 원에 나는 그 수십 배가 넘는 질 좋은 스위스제 칼을 소유하게 됐다.

칼은 검은빛에도 야수의 본능을 숨기지 않았다. 은빛보다 더 강렬했다. 여러 날 중 나는 그중 가장 큰 날을 뽑았다. 손이 미끌거렸다. 날을 빼내는 것이 쉽지 않아 옷에 물기를 제거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죽은 듯이 가만히 있던 녀석은 내가 아가미를 짓누르자 다시 꿈틀거렸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녀석을 놓아주면 살아서 다시 어둠 속에서 큰 눈을 부라리며 먹이 찾기에 나설 것이다.

새우는 물론 작은 물고기 혹은 죽은 시체도 마다않고 달려들 것이다. 나는 녀석을 꼼짝달싹 못하게 한 손으로 제압한 후 칼로 목 뒤를 깊숙이 찔렀다. 잠깐 꿈틀하던 녀석은 이내 미동을 멈췄다.

녀석의 등 뒤에서 나온 한 줄기 피가 칼날에 묻어 나왔다. 나는 칼도 옷에 쓱쓱 문질러 닦았다. 펼친 칼을 접어 칼집에 넣을까 생각하다가 혹시 한 놈이 더 걸려들지 몰라 그래도 두었다.

삼십 분 정도 나는 낚시질을 더했고 우럭 두어 마리를 더 수확했다. 제법 살이 올라 손바닥만한 녀석은 기세등등했고 등의 가시는 감성돔처럼 예리했다.

다행히 나는 손을 찔리지 않고 녀석들을 해체하고 작은 냄비에 집어 넣는데 성공했다. 낮에 보아 두었던 국화 몇 송이와 향신료 열매를 다진 마늘, 고춧가루와 함께 집어넣었다. 간은 소금을 두 스푼으로 맞췄다. 섬 청소를 하는 나는 그런 종류의 식재료는 항상 가지고 다녔다.

생수를 이용해 손과 몸을 대충 닦은 나는 매운탕이 끓는 동안 잠자리를 정리했다. 시계를 보니 9시가 조금 넘었다. 초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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