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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3-29 23:03 (금)
등에 난 가시가 검은 빛 사이로 얼핏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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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에 난 가시가 검은 빛 사이로 얼핏 비쳤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9.10.22 1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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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의 섬은 느리게 흘렀다. 어두워지고 나서 나는 일을 멈췄다.

주운 쓰레기를 한곳에 모았다. 그리고 미리 가져온 육수로 고양이 세수를 하고 샤워도 대충 마쳤다. 습한 해수의 기운이 사라지자 조금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배고 고팠으나 억지로 먹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혼자 먹는 밥이 당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굶을 수는 없었다. 그때 낚시를 해 보자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주머니의 지갑에는 낚시를 묶은 줄이 항상 들어 있었다. 남들이 잘 때 자지 않고 낚시를 하는 것은 나의 오래된 취미였다. 검푸른 바닷가에서 홀로 낚시를 할 때 느끼는 살아 있는 기분을 온전히 즐겼다.

주변을 둘러보니 떠내려온 작은 막대기 같은 것이 있었다. 숲으로 들어가 생나무를 꺾을 까, 하다가 그대로 그것을 낚싯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이런 경험은 아주 많았으므로 전혀 새로울 것이 없었다.

오 분이 채 안돼 나는 낚싯대를 완성하고 낮에 보아 두었던 장소로 이동했다. 미끼는 주변에 널려 있는 고동을 사용하기로 했다. 몇 개 깨서 주변 바위에 놓고 나는 줄을 던졌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 낮은 소리가 울렸고 곧이어 입질이 시작됐다. 지금쯤이면 서해안에는 물이 오른 망둥이가 제철이다. 녀석은 너무 흔하기도 했지만 너무 잘 물어 미끼가 없는 빈 낚시에도 곧잘 걸려들었다.

그러나 내가 노리는 녀석은 망둥이가 아니었다. 가시가 달린 우럭이 회는 물론 매운탕으로 제격이었다. 뻘 쪽을 피했는데도 첫 번째 걸려든 녀석은 역시나 망둥이였다. 제법 컸다. 그래서인지 묵직한 손맛을 선사했다.

나는 얼른 미끼를 빼서 녀석을 돌려보냈다. 잡아 죽여서 쓸모가 없는 살생을 굳이 할 필요가 없었다. 계속해서 녀석이 올라왔고 던져 버리는 일이 되풀이됐다.

자리를 옮겼다. 조금 서 있기가 불편하고 빠질 위험이 있으나 우럭을 잡으려면 돌 틈을 노려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녀석들은 노는 물이 달랐다. 우럭은 바위틈을 좋아했다. 숨어 있다가 자신보다 작은 녀석이 나타나면 무자비하게 잡아먹었다. 잡식성인 녀석은 등에 가시를 키우기 위해 무엇이든 먹으려고 달려들었다. 가짜 미끼에도 쉽게 속는 것은 이런 식탐 때문이었다.

돌과 돌 사이로 물이 들었다 나갔다를되풀이 했다. 이곳은 어림짐작으로 틀림없이 우럭이 지나다니는 곳이었다. 이쪽저쪽 돌 틈을 다니면서 새우나 힘없는 어린 녀석을 공격하는 매복의 달인을 유혹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고등냄새를 맡은 첫 녀석이 덥석 물었다. 살아 있는 피의 냄새를 맡은 녀석은 작은 녀석이 따먹기 전에 선수를 쳤다. 부르르 줄이 떨리고 끝이 뭉뚝한 낚싯대가 움칠거렸다. 이것은 분명 망둥이와는 다른 입질이었다. 채기도 전에 녀석이 끌고 들어가서는 안 된다.

부실한 낚싯대로 구멍 속으로 들어가 숨은 녀석을 끌어낼 수가 없다. 신중하고도 빠르게 챔질을 하고 나서 확실히 녀석의 주둥이가 미늘 안쪽에 걸린 것을 확인했다.

줄이 이리 저리로 움직였다. 위협을 느낀 녀석이 필사적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그럴수록 팔에도 힘이 더해졌다. 나는 녀석을 끌어 올렸다.

낮이었다면 놈의 형태가 분명했던 터였지만 지금은 저녁이라 순간적으로 비쳤던 등의 가시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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