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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3-29 00:50 (금)
원형의 완전체가 사리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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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의 완전체가 사리지고 있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9.10.14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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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안에 들어 있는 것을 꺼내는 것은 힘든 일이다. 뱀을 꺼낼 때도 그랬다. 살아 있는 것이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무언가의 도전을 받았을 때 저항하는 것은 당연하다.

미물인 뱀조차도 그랬다. 비늘을 거꾸로 세우고 마구 거세게 반항하면서 굴속으로 더 들어가기를 원했다.

버티때까지 버티는 힘이 누가 더 센가로 결정 나기 까지 뱀은 자신의 의지대로 힘을 보여주었고 나는 그것에 대해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허리의 마디가 끊어지는 것같은 고통속에서도 최후까지 버티기를 그치지 않았던 설악산 공룡능선의 까치독사가 후손을 많이 낳고 번성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인류에게 해가 되는 쥐들을 잡아먹되 나쁜 인간을 제외한 선량한 인간들에게는 해를 끼치지 말기를 당부한다.

나쁜 인간이라고 할지라도 두 개의 날카로운 독침을 사용하기보다는 숨기고 피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물린 사람의 성향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겉으로는 선한 사람이라도 속으로는 악한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을 보면 즉시 구멍으로 들어가기를 바란다. 간혹 양지바른 곳에서 해를 받기 위해 똬리를 뜰고 앉아 있다가도 어디선가 소음이 들리면 몸을 풀고 숲으로 들어가라.

새소리, 풀벌레 소리, 사슴 소리가 아닌 소리가 들여 오면 지체없이 떠나야 한다. 그 소리는 모두 소음이다. 그들의 눈에 띄지만 않는다면 문제 될 것은 없다.

자신을 해치려는 의도를 보이지 않았는데도 겁을 먹고 막대기로 내리치면 죽음을 면치 못한다. 그런 다음 인간을 욕하거나 후회한들 무슨 소용인가.

강력한 독을 가진 뱀들의 제왕이 도망가는 것이 모양새가 나쁘다고 버티는 것은 진정한 용기가 아니다. 용기는 살아 있을 때 발휘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돌틈에 낀 쓰레기를 꺼내면서 산속의 뱀을 생각했다. 생태계의 한 축인 뱀들이 사라지지 않고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였다.

그들은 이런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다. 나는 낀 비닐이 삭아서 없어지기 전에 꺼내는데 애를 먹었다.

찢겨지고 거덜이 나서야 쓰레기의 일부가 나왔다. 나머지는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돌을 치우기 전에는 그 속에 들어간 비닐 조각을 그 누구도 제거하지 못한다.

그것은 나를 슬프게 했다. 어느 새 커다란 봉투에 쓰레기가 가득 담겼다. 나는 봉투의 끝을 묶었다. 그리고 수레가 갈 수 있는 곳까지그것을 들었다.

무게가 제법 나갔다. 물기 젖은 것도 있었다. 쓰레기봉투는 한 곳에 모아 두어야 한다. 그래야 배가 왔을 때 싣고 가기 좋았다.

선착장은 없었으나 배가 닿을 만한 곳, 다시 말해 나를 내려 주었던 그 장소에 쓰레기를 모아 놓으니 어느새 작은 산 하나가 생겼다.

어느 순간 88개의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었다. 그것은 해를 받아 반짝였다. 다시 해가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있다.

나는 그 순간만큼은 쓰레기 줍기를 포기한 채 바위에 걸터앉아 지는해를 바라보았다. 원형의 완전체가 물속으로 반쯤 잠겼다가 아예 보이지 않는 순간의 시간은 짧았다.

찰라의 순간에 오메가의 형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그것은 수면에서 잠시 꿈틀거렸다. 마치 뱀이 허리를 틀어 움직이는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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