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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자를 만나지 못한 서운함을 자연으로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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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자를 만나지 못한 서운함을 자연으로 달랬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9.09.03 0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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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갑자기 부어오른 손바닥의 원인은 뱀독이었다. 뱀의 피부에서도 강한 독이 뿜어져 나왔던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만일 뱀에게 물렸다면 어땠을까, 소름이 돋았다. 나는 굴 안에 들어간 뱀이 지금은 안정을 찾았기를 바랐다. 비록 손을 부어오르게 만든 장본인이었지만 그가 죽지 않고 살아나서 자손을 번식하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잡아 끌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뱀의 안녕을 기원하는 나의 이중성을 탓할 일은 아니다. 잡아당길 때도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나와 뱀과의 장난이라고나 할까. 나는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그러나 뱀은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아닌 밤중에 이런 홍두깨도 없을 것이다. 가던 길을 가고 있는데 누군가 갑자기 뒤통수를 갈기고 도망간 꼴이나 진배없었다.

도망간 자와 나와는 일면식도 없었다. 그러므로 무슨 원한 같은 것이 끼어 들 틈이 없었던 것이다. 뱀에게 미안했다.

잡았던 허리는 두 동강이 나지 않고 제대로 붙어 있을지라도 얼마나 놀랬을까. 거꾸로 세웠던 비늘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재생될 것이다.

그 이전에 먼저 뛰는 가슴을 진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지나친 흥분은 사람이나 뱀이나 나쁜 결과만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나는 뱀이 이 기회에 인간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끼기를 그래서 두 번 다시 나와 같은 인간에게 잡히는 수모를 받지 않기를 바랐다.

인간이 왜 자신들을 그토록 미워하고 혐오하는지 뱀이 알 리가 없었다. 그러나 네발이 아닌 두 발로 걷는 짐승은 반드시 피해가야 하고 그럴 수 없을 때는 선제공격만이 살아남는 길이라는 것을 후손들에게 그 뱀은 그날 알려 주었다.

뱀에게는 많은 식구들이 있어 그날 오후 녀석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면서 식구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힘든 목소리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은 소리가 들리면 피하라, 그것은 필경 인간이라는 자들이 지껄리는 소리가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언가 나무토막 같은 것으로 땅을 찌르는 것 같은 울림이 들면 역시 피하라. 나약한 인간이 자신의 몸 하나도 건사하지 못하고 지팡이라는 물건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역겨운 냄새가 나면 이 역시 굴속으로 급히 숨어라. 인간에게는 온갖 냄새가 난다. 우리 동물처럼 신선한 자연향이 아니다. 그들은 먹을 수 없는 것까지 먹어대는 잔학한 동물이다.

모인 뱀들은 일제히 인간을, 그것도 자신의 집안 어른의 허리를 잘라 놓으려고 했던 그 인간을 저주했다.

그들은 혀를 낼름거리면서 언젠가 만나면 떼로 달려들어 물어 죽이자고 소리를 높였다. 나는 뱀들이 그런 작당 모의를 하는지 안하는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부어 오른 손등은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하더니 저녁이 되자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휴가의 마지날이다.

나는 내일이면 떠날 설악산의 저녁 노을 바라보고 있었다. 멀리 서해바다로 떨어지고 있는 장엄한 해가 아쉬운 멈칫거리는 순간을 즐겼다.

내일 아침에는 일출을 보리라. 몸만 돌리면 됐다. 방향만 틀면 지금 보고 있는 그해를 내일 다시 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아쉬움은 사라지고 마음은 차분해졌다.

애초 기대했던 절대자를 만나리라는 생각은 포기했다. 이번에는 절대자에게 더 급한 용무가 생긴 모양이다. 포기하는 마음이 생기자 짐을 내려 놓듯이 무거운 마음도 사라졌다.

그래서 나는 자연이라도 감상하자고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어스름이 찾아온 설악산은 장관이었다. 사방을 둘러 보아도 돌들의 무더기 였으며 어느 한 곳 같지 않고 제각각 다른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나는 자연 앞에 겸손해 지면서 이번에 만나지 못한 절대자는 일하는 중에 혹은 휴식 중에 언제든지 올 것을 믿었으므로 서운해 하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절대자는 찾지 못했지만 자연 앞에 쪼그라드는 인간의 왜소함을 본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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