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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6 16:37 (금)
냄새와 같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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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와 같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9.07.02 0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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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한 소리였다. 귀를 울리는 정도가 아니었다. 나중에는 텐트가 움찔 거렸다. 소리로 움직일 정도였으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소리가 나기 전에 이미 전조 증상이 있었다. 그것은 번개였다. 텐트의 여백 사이로 번갯불이 지나갔다. 미세한 틈을 면도칼이 예리하게 파고 들어가는 것처럼 천의 사이 사이로 빛이 들어왔다가 빠르게 나갔다.

그리고 몇 초 후에 우레에 같은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마치 천지창조의 순간과 같은 시끌벅적 한 기운이 한동안 이어졌다.

하느님이 세상을 만들 때 이 정도의 요란함은 있었겠다 싶을 정도였다. 번개와 천둥 다음에는 또 다른 소리가 나야 했다.

그것은 딱, 딱, 딱 마른 대지를 적시는 놀라운 생명의 소리. 바로 빗소리였다. 그러나 기다려도 그런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마른하늘에 날벼락만 치고 있었다.

빛과 소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됐다. 이상한 일이었다. 딱히 비를 기다린 것은 아니었는데도 비가 오지 않자 마치 비오기를 학수고대하는 농부처럼 그것이 쏟아져 내리기를 기원했다.

비만 오면 모든 문제가 일시에 해결될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귀를 기울이면서 나는 어떤 인기척 대신 빗방울이 텐트의 천장을 마구 치는 상상을 계속했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기다리다 지쳐 다시 잠이 들었다. 느긋하게 산을 탔다고는 하지만 종일 걸었고 늦게 누웠고 술까지 조금 마신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곧 깊은 수면에 빠졌다.

그러다가 다시 무슨 기척에 다시 눈을 떴다. 자다가 깨서 눈을 뜨는 것은 흔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왠지 색다른 느낌이 들었고 무슨 일인가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눈은 떴으나 몸은 뜨지 않은 상태를 유지했다. 숨소리조차 죽이면서 소리가 주는 어떤 예민함이 귀를 통해 전해지기를 기다렸다.

깊은 밤 텐트 안에서 두 눈이 초롱초롱했고 나는 그런 장면을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해 내려고 했다. 그것 역시 헛 수고 였다.

생각은 전혀 나지 않았고 움직임은 어디서도 감지되지 않았다. 오줌을 누러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눈만 뜨고 있던 상태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오줌 생각을 하자 이번에는 그것만 생각이 났다. 그리고 그것이 해결되면 만사가 해결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하나가 해결되면 만사의 문제가 저절로 얽힌 실타래가 풀리듯이 풀릴 것 같은 상상이 꼬리를 물었다.

바로 그때 밖에서 정말 무슨 소리가 분명하게 들렸다. 그것은 돌풍과는 다른 것이었다. 번개와 천둥이 잠시 주춤한 사이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바로 조금 전이었다.

그것은 잘 묶은 텐트의 밧줄을 흔들었고 그래서 텐트가 전체적으로 움직였다. 산정 부근에서 바람이 부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었기에 거기에 무슨 의미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런데 밖에서 나는 소리는 바람과는 결이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감지하려고 애썼다. 그러다가 문든 그 소리는 내가 관악산에서 절대자를 만나기 위해 마냥 기다리다가 들었던 어떤 이상한 냄새와 같은 소리였다는 것을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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