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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마조마한 순간들이 순식간에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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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마조마한 순간들이 순식간에 지나쳤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9.06.27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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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잤을까. 잤는지조차도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나는 눈을 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지 않은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무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숨바꼭질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을 보니 짧은 순간 기억의 혼돈이 왔던 것은 사실인 것 같았다.

어둠 속에서 나는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그리고 이곳이 설악산 깊은 산속의 텐트 안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 챘다. 그랬다. 나는 지금 3일간의 짧은 휴가를 얻어 노숙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것은 내가 자초한 일이었다. 그 자초는 기분 좋은 것이었고 무엇을 기대하기 위한 것이었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절대자를 만나 플라스틱을 사라지게 해야 했다.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져야 할 것은 플라스틱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지구상에 사는 어떤 인간도 해낼 수 없었다. 오직 절대자 만이 그것을 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주체였다.

나는 절대자에게 그것을 요구할 것이다. 그런데 절대자는 어디에도 없었고 흔적을 찾을 수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막연히 이곳에 와서 절대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동은 물론 장소이동까지 자유로운 절대자는 내가 어디에 있든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는 부산의 해운대 앞바다에 있을 수 있고 대구의 근대골목에서 맥주잔을 기울지도 몰랐다.

광주의 금남로에서 차를 마시면서 지난 과거를 회상할 수도 있었고 공주의 마곡사에서 경내를 돌아보면서 만해 한용운과 차담을 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아니면 알래스카의 어느 곳에서 연어 떼와 춤을 추거나 알프스의 골짜기에서 프랑켄슈타인과 인간과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논쟁을 벌일지도 몰랐다.

말하자면 절대자는 어디에도 있었고 아무 곳에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절대자가 다시 내 앞에 나타날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이것은 어떤 확률이 아니며 과학도 아니었다.

직감이 그렇게 나에게 말을 걸었던 것이고 그것은 복권당첨처럼 까마득한 것이었지만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무지막지한 신념에 들떠 있었다. 눈에 생기가 돌았다.

마치 잊었던 것이 다시 생각나 허리춤을 추스르는 것과 같은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 목적이 어떤 것이었는지 분명하게 떠오르자 나는 몸을 일으켰다. 다시 자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대로 날을 새면서 밝아오는 여명을 맞는 것도 나쁠 것이 없었다. 밖은 조용했다. 사방은 말 그대로 쥐죽은 듯이 고요했다.

세상의 어느 곳에서는 인간의 번뇌로 고민 받고 있는 불쌍한 영혼들이 있을 것이고 또다른 곳에서는 인간이기에 느끼는 환희로 몸부림치는 행복한 영혼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어디에 속해 있는가. 바람이 조금 불어 오는 듯 텐트 자락이 펄럭였다. 나는 무심한 듯이 그것이 설사 절대자가 왔다는 신호라고 해도 크게 신경쓸 일이 없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번에는 더 센 바람이 불었는지 텐트 자락이 조금 더 흔들렸다.

나는 귀를 기울였다. 전처럼 신경을 귀에 모아 두고 다른 세포가 흩어지는 것을 막았다. 그래야 미세한 움직임을 감지해 낼 수 있었다. 작은 개미들이 떼를 지어 이동할 때 나는 조마조마한 순간들이 그야말로 순식간에 지나갔다.

천둥 번개가 몰아친다는 느낌이 든 것은 바로 그 때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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