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구부린 공룡의 허리처럼 굴곡졌으며 길고 높고 깊었다. 작은 바위에 앉아 그는 이런 상념에 젖어 하염없이 쉬고 있었다.
5월이라고는 하지만 땀이 식고 몸은 움직이지 않으니 좀 추운 느낌이 들었다. 그는 일어서서 계곡의 아래쪽을 하릴없이 내려다보았다. 골은 산 만큼 깊었고 골 사이는 넓었다.
쓰레기 처리 업자들이 이곳을 눈여겨본 이유는 이런 경제적 이유 때문이었다. 많은 쓰레기를 오래 처리할 수 있었기에 그만큼 이윤도 컸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후대에 두고두고 물려줄 아름다운 자연을 쓰레기로 채운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쓰레기 업자를 원망했다. 허가를 내준 정부의 잘못을 지적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일이었기는 그는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이런 가운데 쓰레기 산의 등산로가 새롭게 개척됐다는 뉴스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언론들은 이제 더 많은 쓰레기 산들이 만들어지기를 원했다. 쓰레기 산들은 등산의 효과뿐만 아니라 시각적 효과도 있었고 관광객들을 끌어모아 지역 경제에 적잖은 도움을 주었다.
‘전국쓰레기산 연합회’는 이런 사실을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광고했다. 직접 장엄한 산의 모습을 찍은 광고물을 올리기도 했고 언론을 통해 쓰레기 산을 오르는 것이 얼마나 건강에도 좋고 심신의 안전에 도움이 되는지에 열을 올렸다.
지자체장들은 앞다퉈 등산하는 모습을 언론에 공개했고 새로운 루트를 장비 없이 등반한 등산인들을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각 대학 산악회는 여름 방학 동안 겨울 등반을 위한 맹연습에 돌입했다.
학교들은 경쟁심이 붙어 가장 높고 험란한 산을 제일 먼저 등반하기 위해 밤낮없이 쓰레기 산을 오르 내렸다. 쓰레기 산의 최고 높이는 7000 미터를 넘어섰다.
이런 높이는 무산소 등정에는 무리가 따랐다. 더구나 산의 정상에는 3000미터가 넘는 굴뚝에서 쓰레기 침전물이 배출하는 유독 가스를 품어 내고 있었다.
삼중 필터가 달린 방독면을 쓰고도 어떤 등반가는 질식사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악인들은 이번에는 굴뚝 정복에 나섰다.
유명한 아웃도어 업체들이 수억 원이 드는 비용을 제공했다 방송사는 이들의 일정을 따라가면서 중계했다. 굴뚝을 오르는 것은 히말라야의 그 어떤 위험한 코스를 정복하는 것보다도 더 위험했다.
직벽의 공간을 로프와 맨손으로 올라야 했다. 다행해 굴뚝 외벽은 우둘투둘 한 손잡이가 달려있어 잡고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직벽이다 보니 잠시도 한눈을 팔 수 없었고 시도 때도 없이 불어오는 강한 바람과 일기 차로 번번이 실패하기 일쑤였다.
굴뚝의 중간에는 어떤 휴식공간이나 피신처도 없었다. 쉬기 위해서는 굴뚝에 자신의 몸을 묶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동사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하지만 당국은 죽는 사람보다는 살아오는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등반을 제한하기보다는 되레 부추겼다.
도전의식을 심어주고 쓰레기 산에 대한 혐오를 줄이는데 이만한 볼거리가 없었다. 쓰레기 산의 정상에 올라서 찍은 사진은 장관이었다.
간혹 정상에 올랐으나 사진을 찍다가 죽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외다리로 서서 한 손에는 태극기를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시신을 수습하는 것도 난감해 무려 한달 간 방치되기도 했다. 바람이 강해 헬기가 그 높이까지 날지 못했고 설사 날았다 하더라도 프로펠러가 내는 바람으로 시체가 이리저리 흔들렸기 때문에 고정해서 끌어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과학자까지 동원된 시체 처리팀은 다른 구조대를 보내 시체와 함께 내려오는 공동작전을 폈다. 그러나 시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구조대 3명이 시체와 함께 추락해 참사가 일어났다.
이 광경은 고스란히 텔레비전 생중계로 전국에 전파를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