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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리에서 포장지를 뜯어 보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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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리에서 포장지를 뜯어 보고 웃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9.04.19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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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도 꾸지 않았다.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요란한 자명종 소리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약속 시간에 늦을 뻔했다.

눈을 뜨고 부랴부랴 단장하고 로비로 나오자 5시 3분이었다. 그녀는 두리번거렸으나 등 뒤에는 리처드가 이미 와 있었다.

그는 그녀를 놀랠 목적으로 그녀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따라 움직여서 그녀의 시선 밖으로 밀려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다가 결국 들키고 말았다. 둘은 웃었다. 그리고 바로 차로 행했다.

아침은 가는 길에 먹기로 작정했다. 한 20분 정도 달리니 먼 데서 붉은 기운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해가 떠오르려는 모양이다.

도로는 해를 향해 뻗어 있었으므로 두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출을 보았다. 장엄했다. 그 풍광을 지금 여기서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송창식의 노래가 저절로 따라 나왔다. 그녀는 지금 순간이 매우 좋았다. 리처드도 그녀가 흥얼거리는 목소리를 따라 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노래이고 가사 내용이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노래를 부르는 그녀와 중얼거리는 그가 있을 뿐이었다.

새벽에 달리는 드라이브는 다른 때와는 달랐다. 상쾌한 기분은 더했으며 마음은 여유로웠다. 차량도 드물어 고속도로를 전세 낸 기분이었다.

그런 기분으로 그들은 그랜드 캐니언의 장엄한 풍광을 보았다. 끝간데 없이 이어지는 붉은 돌들의 향연에 넋을 잃었다.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둘은 근처의 기념품을 파는 곳을 겸한 식당으로 향했다. 오는 길에 햄버거 하나를 먹었으나 시장기가 있었다.

그곳에는 그들보다 먼저 자리를 차지한 일행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가게 종업원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기계에서 햄버거를 빼내 먹고 있었다. 두 사람도 그들처럼 그렇게 하지 않고 콜라만 마셨다. 막상 먹으려고 하니 먹을 것이 없었다.

그녀는 핸드백을 열어 초코릿을 꺼냈다. 콜라와 그것은 궁합이 맞았다. 허전한 뱃속에 무언가가 들어가자 포만감이라는 색다른 즐거움이 뇌를 자극했다. 동전만한 그것의 위력은 대단했다. 달콤한 작은 것이 두 사람의 기분을 한층 배가 시켰다.

아직 종업원은 출근하지 않았다. 기념품 가게도 문은 열어 놓았으나 출입금지 팻말로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봉쇄돼 있었다.

둘은 다시 벼랑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아래로 내려가는 길을 찾아 그들은 위에서 바닥을 향해 걸었다.

구불구불 걸어내려 오면서 그녀는 천년의 역사를 생각했다. 이런 지형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아마도 수 천 년, 혹은 수만 년의 세월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녀는 자연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없는 인간의 유한성을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순간의 행복을 즐겼다. 한국에 가면 그녀는 이런 기억을 남편에게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들이 아래로 내려가 이십 분 정도 트래킹을 하고 위로 올라왔을 때는 한 무더기의 단체 관광객들로 인해 시끌벅적했다.

벌써 시간은 9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기념품 가게에 들렀다. 그녀는 그곳 돌로 만들었다는 포효하는 작은 늑대 한 마리를 샀다.

그리고 역시 그곳 돌로 만든 작은 지구본의 포장을 부탁했다. 늑대는 리처드에게 주었다. 여행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

그녀가 그것을 내밀었을 때 리처드는 그것을 받으면서 자신도 그녀에게 무언가를 주었다. 둘은 그 자리에서 포장지를 뜯어보고 웃었다.

똑같은 늑대였다. 서둘러 그들은 엘에이를 향해 방향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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