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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여행의 일종으로 거기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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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여행의 일종으로 거기에 참여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9.04.10 09: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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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해는 막 서산에 지려 하고 있었다. 서산은 그저 지은 이름이고 어쨌든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서산이 갑자기 생각난 것은 그녀의 고향이 충남 서산이었기 때문이다. 서산은 상징의 의미도 있지만 실재 지명 이름이기도 했다.

그녀는 고향의 하늘도 저렇게 멋진때가 있었다는 것을 상기했다. 어린 시절 그녀는 바닷가 근처에서 놀았다. 조개도 잡고 낚시질을 하는 아빠를 따라 나서기도 했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는 것을 그녀는 그때 이미 알고 있었다. 밀려오고 떠 내려가는 파도는 바다가 아니면 그 누구도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자연의 오묘한 조화에 눈을 뜨게 해준 고마운 바다가 지금 그녀의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라스베이거스는 거대한 도시였다.

사막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고층빌딩과 화려한 외관은 마치 신기루처럼 그녀에게 다가왔다. 어둠이 내리자 이곳은 지상과 천국 사이에 있는 어떤 경계지점을 연상시켰다.

건물마다 화려한 조명이 서로 경쟁을 하고 있었으며 어떤 건물 앞에는 다소 쌀쌀한 날씨임에도 분수가 하늘로 솟구치고 있었다.

흩어지는 물방울은 자연스럽게 조명과 어울려 오색 무지개를 피웠고 그녀는 그런 모습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리처드 역시 호응했다.

거기 온 사람은 누구나 그랬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나무랄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 모두 한통속이었다.

두 개의 방을 예약한 그들은 어느 호텔의 로비에서 다시 만났다. 로비의 크기가 어머 어마했다. 그 큰 로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거대한 도박 기계였다.

말로만 듣던 카지노나 슬롯머신 등의 기계가 즐비하게 늘어서 손님을 받고 있었다. 그들은 저녁 식사 전에 놀이 삼아 기계 앞에 앉았다.

코인은 리처드가 바꿔왔다. 재미 삼아 300달러 만 하기로 했다. 여기저기 빈자리를 찾아서 한 번씩 기계를 당겨 보았다.

세로로 그려진 그림은 서로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돈만 날리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표정은 슬프기보다는 기쁨으로 넘쳐났다.

도박중독자 같은 인상은 어디에도 없었다. 노부부로 보이는 백인들이 많았으나 동양인이나 흑인도 그에 비례했다. 그들은 여행의 일종으로 도박에 참여했다.

이곳에서 도박은 범죄가 아니었다. 그래서 숨을 이유도 양심의 가책을 받을 이유도 없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위로 올라와 있는 레버를 아래로 당길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나 리처드의 계속된 권유와 주변 사람들의 모습에서 용기를 내기로 했다.

그림이 움직이고 서로 엇박자를 내는 모습이 신기했다. 처음에는 저런 아이 같은 놀이에 어른들이 반응하는 것이 이상했지만 막상 해 보고 나니 은근하게 빠져 들었다.

그녀는 어느 순간 리처드보다 더 열심히 레버를 당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리처드가 여기는 ‘운빨’이 없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옆 건물로 가서 나머지를 써보자고 제안했다.

그것은 제안이라기보다는 조금 일방적이었으나 그녀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녀도 그러고 싶었기 때문이다.

둘은 분수를 쏟아내던 그 건물로 들어가 아까와 같은 방식으로 코인을 넣고 기계를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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