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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과 용서에 대한 뉘우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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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과 용서에 대한 뉘우침이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9.04.09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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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들은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하늘은 다시 파란색 일색이었다. 흰 구름은 멀리서 어서 오라고 손짓했다.

눈이 부셨다. 해가 강렬해서라기보다는 색깔이 주는 선명함 때문이었다. 작은 가방에서 그녀는 선글라스를 꺼내 착용했다.

색은 어두워졌으나 흐려지지는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따라 몸도 흔들렸다. 음악은 경쾌했고 도로는 시원스럽게 뻗었다.

칠을 새로 했는지 차선을 넘나드는 흰색 점선이 선명했다.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해 그녀는 할 일을 생각하지 않았다.

애초 뚜렷한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기에 도착하고 나서 상황에 따라 행동하기로 했다. 그것은 리처드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계획 같은 것을 세우지 않았다. 그때그때 필요에 의해 움직이기로 한 만큼 모든 것은 도착 이후로 미뤄졌다.

그래서 딱히 빨리 가거나 느리게 가거나 할 필요가 없었다. 여유라는 것은 이런 것이었다. 시간의 여유에 그들은 마음까지 그렇게 됐다.

있던 생명이 꺼지는 순간과 같은 그런 순간과는 차원이 달랐다. 한순간 사람들은 살아 있다가 죽었다. 자신이 죽는 순간까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는 환자들은 단 1초도 소중했다.

어떤 이는 하던 말을 마저 하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다. 입을 반쯤 벌린 상태에서 운명을 맞았는데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그녀는 닫히지 않은 입의 모양에서 그 다음말을 이었다.

환자를 대신해 그녀는 조용히 그렇게 했고 그것은 대개 삶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담은 것이거나 회개와 미안과 용서에 대한 뉘우침이었다.

다시 손톱만큼의 생이 주어진다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살아 보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못다한 것에 대한 미련을 자신보다는 남에게서 찾아오려는 노력을 보고 그녀는 인간은 애초 선하게 태어났다는 착한 마음을 오랫동안 간직했다.

그러나 모든 죽음이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생에 대한 미련은 집착으로 이어졌고 그런다고 생이 연장되지 않았지만 일부는 끝내 그 사실을 인정하기않고 발버둥 쳤다.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죽음의 순간에도 자존심을 드려냈다. 간혹 속세의 갚지 못한 원수를 저주하기도 했다. 타인을 향해 악담을 퍼붓다가 정작 죽는것은 자신이라는 것을 모르고 죽을 때 그들의 표정은 온화하기보다는 험악했다.

그럴 때는 말하는 사람보다도 지켜보는 사람이 더 안쓰러웠다. 그 순간까지 끈을 놓치 못한 사무친 원한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의 곁에는 대개 가족이 없었다. 임종의 순간에 피붙이 없이 쓸쓸히 저세상으로 가는 사람들이 남기는 저주는 뜻밖에도 가족이었다.

차라리 인연이나 되지 말 것을 피로 맺어진 그들은 애초에 그래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죽었을 때 그들은 눈을 감지 못하고 부릅떴다.

평화와 봉사와 다른 사람을 위한 시간을 더 갖지 못하고 참회하면서 죽는 사람과 다른 표정이었다.

일그러진 얼굴에서 그녀는 그들의 영혼이 제대로 안식을 갖지 못할 것을 염려했다. 두 눈을 조심스럽게 아래로 쓸어내리면서 그녀는 부디 저승에서는 원한이 없는 행복한 삶이 저들에게 오기를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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