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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6 06:02 (금)
하늘을 살 수 만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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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살 수 만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9.04.04 0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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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모르게 신이 난 리처드는 아까 하던 대로 노래를 부르고 몸을 가볍게 흔들면서 기분을 내기 시작했다. 라디오 볼륨을 높이고 속도를 올리면서 사막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의 그런 감정이 오래도록 유지될 수 있도록 가만히 내버려 두면서 눈은 시원하게 펼쳐진 도로의 끝자락을 바라보았다.

길을 길고 평탄했으며 어디가 끝인지 그 지점을 보여주지 않았다. 넓게 펼쳐진 하늘은 파랬다. 흰 구름이 그 사이로 듬성듬성 지나가고 있었고 바람은 유월의 태양 아래 시원스럽게 대지 위로 흩뿌려대고 있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사람들이 모두 이런 길을 갔으면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런 마음을 가져보는 것은 그녀의 행복이 너무 커서 혹시 작은 불행이라도 닥쳐올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어제는 남편이 한국의 하늘을 보여주었다. 남산에서 찍은 사진인데 아래쪽의 도시는 시야를 확보하지 못해 고층건물조차 흐릿한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가까이서 찍은 사진은 흰 마스크로 얼굴의 거의 전체를 가린 황망한 사람들의 표정이었다.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한국방송 뉴스에서 미세먼지의 공포를 연일 말하고 있었지만 남의 일처럼 느껴졌었다. 그런데 남편이 직접 보내온 사진을 보니 이거 심각하다 싶었다.

그런 공해 속에서 쓰레기를 주으면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 아팠다. 그러나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 일은 매우 떳떳했으며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었다.

다행히도 남편의 적성에도 잘 맞았다. 직업에 대한 불평은 없었으며 이 정도의 일로 이만한 대우를 받는 것을 늘 미안하게 생각할 정도였다. 만족감이 높았다. 

그저 몸을 놀려 쓰레기를 줍는 단순한 일에 대한 보상치고는 과하다고 언젠가 남편은 그녀에게 말한 적이 있다.

미리 이런 직업을 알았더라면 공장에서 고생하지 않고 늦은 밤까지 회계처리로 골머리를 앓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그녀는 할수 만 있다면 이런 하늘을 뚝 떼어서 한국에다 딱하고 붙이고 싶었다. 하늘을 살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그게 가능하다면 재산의 상당 부분을 투자할 용의가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그럴 생각이 있었다. 흐린 날이 아니라 먼지 때문에 회색으로 보인다면 그것은 말하지 않아도 공포 그 자체였다.

그녀가 이런 쪽으로 방향을 돌리고 있을 때 리처드는 안보는척 하면서 그녀를 힐끗 보고는 그녀가 지금 즐기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도 즐거웠으며 그녀의 즐거움에 자신이 일조하고 있다는 생각에 더 행복했다. 멀리서 독수리 두 어 마리가 선회 비행을 하고 있었다.

사막에서 독수리가 날고 있는 것은 죽은 시체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밤새 결투가 벌어졌고 희생된 동물의 사체가 아직 뼈에 붙어 있었고 그것을 독수리들이 노리고 있었다.

그녀는 병동을 빠져나와도 삶과 죽음에서는 벗어날 수 없는 진리에 대해 무덤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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