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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7 06:51 (토)
사막에서 그녀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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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 그녀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를 그렸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9.04.02 08: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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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주변 풍경은 세련되기보다는 거칠었다. 모래가 많았고 산 대신 야트막한 언덕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작은 나무들이 듬성듬성 자라고 있는 모습은 단조로웠다. 모하비를 지나면서 리처드는 술병 대신 음료수 캔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라디오 볼룸을 높였다.

마치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 라는 영화 주인공 같은 흉내를 냈다. 모든 걸 때려치고 살기보다는 죽기 위해 환락의 도시로 향하던 니콜라스케이즈의 모습이 떠올랐는지 그는 몸을 흔들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녀도 덩달아 흥이 돋았다. 마침 노래도 많이 들었던 곡이었다. 비지스가 부른 '세터데이 나이트 피버' 였다. 황량한 사막을 달리면서 이런 기분을 낼 수 있는 것은 그런 공간이 주는 색다른 묘미였다.

그가 그 영화를 알고 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리처드는 꼭 그런 모습이었다. 거리의 여자와 치명적인 사랑을 나누고 결국 파국에 이르는 장면은 슬프기보다는 아름다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도착하기도 전에 그녀는 떠나는 장면을 상상했다.

왕복 6차선 도로는 거칠 것이 없었다. 띄엄띄엄 차들이 달려오고 달려갔다. 어떤 차는 미친 듯이 속도를 올려 리처드를 추월했다. 그러면 그도 속도를 올려 따라 잡으려고 했다.

그때마다 그녀는 '테키리즈'를 외치며 그를 안정시켰다. 이 나이에 그런 것은 좋아 보이기보다는 모험이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그런 스릴도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속도위반으로 걸리지만 않는다면 기분을 내고도 싶었다. 마침 차도 컨버터블이라 280킬로가 찍히는 계기판도 장착하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그녀는 리처드가 자신의 말을 듣고 속력을 늦췄다가 다시 엑셀레이터를 밟자 이번에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차의 기계음과 라디오의 광적인 소음과 스쳐 지나가는 모래바람으로 두 사람은 자연히 뜨거워 졌다.

눈을 감고 그녀는 한국에 있는 남편이 쓰레기를 치우는 장면을 연상했다. 회사의 사장으로 직원을 호령하던 그가 마대 자루를 집고 쓰레기를 치우는 장면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은 능히 그런 일을 기꺼이 해낼 위인이었다. 상황 적응능력이 뛰어나고 형식에 크게 얽매이지 않는 성격은 그녀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위해서는 비록 손해를 보더라도 과감하게 앞으로 나가는 정신은 본받을만 했다. 그녀가 이역만리 미국 땅에서 호스피스 일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남편에게서 받은 영향도 무시할 수 없었다.

다음 달이면 남편이 미국으로 오기로 돼 있었다. 아직 비행기 표를 예매한 것은 아니지만 조만간 부부는 만나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들은 주고 받으면서 밀린 회포를 풀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그녀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번졌고 그런 모습을 보고 리처드는 그녀가 행복한 순간을 즐기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런 일에 자신이 일조하고 있고 그 순간을 함께 하고 있어서 리처드 역시 행복했다. 차는 마구 달렸다. 막히지도 않고 신호등도 없고 굽이진 길도 나타나지 않았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평지의 직선길이 두 시간째 이어지고 있었다. 아마도 이 정도면 3백킬로 미터는 왔을 것이다. 그녀는 어림짐작으로 가고자 하는 곳의 목적지가 앞으로 한 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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