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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설악 어디인가 소리의 주인공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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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설악 어디인가 소리의 주인공이 있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9.03.29 0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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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자 생각을 하자 다시 마음이 급해졌다. 느긋해야 한다고 다짐했던 것이 불과 수 초전의 일이었다. 아, 인간은 왜 이다지도 변덕이 심한가.

그러나 나는 그런 변덕이 심한 태도를 문제 삼을 정도로 한가한 상황이 아니었다. 절대자를 지금 이순간 만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절대자는 그 어디에도 없으며 아무 데서나 출현한다.

그래서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을 한 번 두리번거렸다. 사방에 인기척은 없었다. 넓은 산속에서 홀로 남겨지자 혼자라는 외로움보다는 이 넓은 세상을 독차지 한데서 오는 푸짐함이 밀려 왔다.

이런 때 절대자가 불쑥 나타나서 관악산에서처럼 나무 의자를 만들고 그곳에 앉아 진한 포도주를 불러오는 상상을 했다. 나는 그것을 마시면서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환상을 품었다.

숲은 숨쉬기에 아주 편했다. 바로 어제 비가 온 뒤라 나무들은 아직 마르지 않았고 이슬 같은 물방울을 온몸에 머금고 있었다.

작은 개울들도 소리를 내면서 흘렀고 좌측의 큰 계곡에서 우렁찬 포효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초입에서 보았던 토왕성폭포의 웅장함이 다시 살아났다.

직벽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는 가히 천하 절경이었다. 족히 수백 미터 위에서 단계를 이루며 아래로 쏠리는 폭포는 비가 와야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었다.

계단식으로 떨어지는 폭포를 나는 한동안 지켜봤었다. 그런 풍경이 물줄기를 타고 오르며 잔상으로 남아 겹쳐졌다.

내가 외설악의 초입에서 직선으로 정상을 타지 않고 주변을 오르내린 것은 아마도 폭포가 주었던 감회를 연장하고 싶었던 마음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보였다가 안 보였다가 들렸다가 안 들렸다를 반복하면서 잠깐 잠깐 모습을 드러냈다. 흐린 안개가 갑자가 물려 올 때면 사방이 어둑해졌고 그것이 바람을 따라 흩어지면 맑은 기운 사이로 하얀 물줄기가 선명했다.

숨바꼭질하는 기분이 들었다. 보였을 때는 숨은 사람을 찾아 환호했고 보이지 않을 때는 찾기 위해 두 눈을 부라렸다.

나는 잠시 전에 만났던 젊은 외국인 한 쌍이 지금쯤 어디로 향했을지 궁금해했다. 그들은 아마도 대청봉으로 올라 바로 하산길을 선택했을 것이다.

아니면 산장을 미리예약해 놓고 1박을 할지도 몰랐다. 운이 좋으면 그들을 산의 어느 곳에서 다시 만날지 몰랐으나 딱히 만나야 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그러던지 아니던지 큰 문제는 아니었다.

나는 비로 끊어진 다리를 우회하기도 하고 넘쳐나는 물을 피해 펄쩍 뛰기도 하면서 위로 방향을 잡았다. 올라갈수록 산은 경사를 더하기도 했으나 어떤 곳은 평지가 오래지속돼 이런 길만 있어도 괜찮겠다 싶었다.

아직 초봄이라 산은 초록보다는 겨울에 가까웠다. 두꺼운 잎은 새싹을 드러내기보다는 움츠려 있었고 피워야 할 꽃잎들도 여전히 몸을 감추고 있었다.

아직은 그들이 세상에 나와 소리칠 시간은 아니었다. 그것들이 여기저기 손짓을 했으면 더 좋았으련만 아쉬움이 몰려왔다.

그렇다고 그들은 탓하는 마음이 든 것은 아니었다. 그런 것이 없어도 산은 아무 때나 좋았다. 좁은 길로 접어들었을 때 나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작은 소리를 듣고 우뚝 멈춰섰다.

소리의 의미를 파악해 주인공을 찾아볼 심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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