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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3-29 13:17 (금)
검은색 잉크 자국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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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잉크 자국이 남아 있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9.03.11 17: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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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멋지게 건배를 했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잔을 비웠다. 회접시는 금새 바닥을 드러냈다. 누군가 호기롭게 외쳤다.

여기 광어회 추가. 그리고 역시 회는 바닷가에서 먹어야 제맛이야 하고 했던 소리를 또 했다. 질릴 만도 했건만 옆에 있던 사람들은 그의 말에 흔쾌히 동의했다.

그가 내는 술을 먹으면서 그 정도 성의 표시는 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다. 파도가 찰랑이는 바다와 그 위에 떠있는 섬들을 보면서 먹는 술은 그 자체로 좋았지만 안주까지 그럴싸 했으니 흥이 아니 일리 없었다.

얼마 후 수북히 쌓인 회가 올라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회만 있는 것이 아니고 뼈에 살이 붙어 있었다. 사진에서 본 모습 그대로였다. 다들 스마트 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심장이 뛰지는 않았지만 눈은 살아서 꿈틀거렸다. 동공이 움직일 때마다 일행은 큰 소리로 살아있다, 광어가 살아 있어. 한마디씩 했다.

비싼 거야. 많이들 먹어. 주문했던 그가 호기롭게 말하면서 잔을 들었다. 다같이 따라 했다. 그리고 채워진 잔을 비웠고 젓가락으로 살점을 헤집었다. 초장을 찍고 한 점을 집어 먹던 그가 아 얏, 소리를 냈다.

그리고 손바닥에 씹던 회를 뱉어냈다. 그 순간 사람들이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손을 털었다. 그런데 하필 그것이 맞은 편 사람의 식탁위로 떨어졌다.

플라스틱이다. 화를 낼 법도 한데 맞은편 사람은 화 대신 이렇게 소리 질렀다. 그리고 그것을 젓가락으로 집어 상 가운데로 모았다. 사람들이 자세히 보려고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리고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플라스틱은 살과 함께 있었다. 두툼하게 썰어낸 광어회 속에 그것이 박혀있었다. 위장도 아닌 살 속에 든 조각을 보고 사람들은 아연 실색했다.

다들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취기 때문인지 그 사실은 금새 잊고 사람들은 다시 잔을 돌렸다. 그런데 이번에도 플라스틱 조각이 발견됐다. 뼈를 추리는 과정에서 이번에는 플라스틱이 살이 아닌 뼈 쪽에서 나왔다.

그들은 더는 회를 먹지 못했다. 일행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광어회가 아닌 플라스틱 회를 더는 먹을 수 없다고 투덜댔다.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항구에는 집어등을 밝힌 배의 불빛이 희미하게 새어 들고 있었다. 만선을 하고 들어오는 배가 막 나가려는 배와 얽혀 혼잡이 일기도 했다.

시끌벅적한 항구를 뒤로 하고 일행은 차를 나눠타고 그곳을 빠져나갔다. 일행이 떠난 자리를 치우던 종업원은 회 속에 섞여 있는 플라스틱 조각에 익숙한 듯 아무렇지도 않게 술상을 정리했다.

그는 최근 들어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제 이런 장사도 다 끝난 것인가. 그는 주인이 해야 할 걱정을 대신하면서 행주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살 속의 플라스틱 조각을 집어내 불빛에 대 보았다. 선명한 그것은 볼펜 심이었다. 예리하게 잘려나가기는 했어도 비스듬히 깎인 부위에 검은색 잉크 자국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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