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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에서 울리는 진실한 힘에 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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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에서 울리는 진실한 힘에 끌리고 있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9.02.26 0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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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는 그 시점이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했다.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다울 때는 나중이 아닌 당장이다.

그래야 그녀도 살고 자신도 살 수 있다고 여겼다. 무엇보다도 어처구니없이 떠난 성자가 아닌 진짜 성자로 남기 위해서도 결단의 시점은 지금이어야 했다.

할만 큼 했다. 사람으로 할 수 있는 한계선을 이미 지나친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그럴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자신은 이 일이 즐겁고 무엇보다도 병동의 환자들이 그녀를 필요로 했다.

살면서 지금처럼 자신이 다른 사람을 위해 어떤 존재가 되어 보지 못한 그녀로서는 이런 기분이 오래 가기를 바랬다.

개같이 벌어 돈을 물 쓰듯이 했다. 가난한 자를 경멸하지는 않았어도 도와 주는데는 인색했다. 그들이 가난한 것은 자신처럼 부지런하지 않았기 때문에 책임은 온전히 그들이 져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그녀는 사치를 했다. 명품 가방을 샀고 신발을 쟁여 놓았으며 철마다 비싼 옷을 사들였다. 해외 여행을 자주 갔으며 고급 음식점과 별이 많은 호텔을 들낙 거렸다.

회사는 호황을 누렸다. 스티로폼은 불티나게 팔렸다. 만들기가 바빴다. 그녀는 직원들을 독려했다. 그들고 사세가 확장되면서 늘어나는 월급에 직원들도 만족했다.

도랑 치고 가재 잡는 일이었다. 정부도 자치단체도 그 누구도 환영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 모든 것이 죄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스스로 하지 못하고 절대자의 힘을 빌린 것이지만 그녀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환자를 돌보는 것이 지은 죄를 조금이나마 덜어내는 것으로 판단했다.

부채의식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마음보다는 어떤 내면에서 울리는 진실한 힘에 이끌리고 있었다. 잘못에 대한 속죄보다는 타고한 천성이 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원래 선하게 태어났다. 천성이 그런 것이었다. 잠시 외도를 했지만 본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은 조상 덕이었다.

대대로 그녀의 집은 악함보다는 선함을 추구했다. 남편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업이라는 미명 하에 악행을 저질렀지만 이내 원내 모습을 찾았다. 

부부는 천생연분이었다. 그들은 뒤늦게 찾아온 진정한 행복으로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의 순간을 맞고 있었다. 많은 재산은 집 한 채만 남겨 놓고 다 처분했다. 명품도 그렇게 했다.

각자 시계 하나씩만 남겨 놓았다. 시계는 그들이 결혼 10주년을 맞아 각자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예물조차 교환하지 않고 검소한 결혼식을 했던 그들은 이날을 위해 매달 조금씩 저금해 목돈을 만들었다.

그리고 계획했던 것을 차질없이 실천했다. 그들이 조금 비싼 시계를 서로에게 선물한 것은 시계 그 자체에 끌렸다기 보다는 시간의 중요성 때문이었다.

째깍째깍 한 번씩 움직이는 전자 시계나 숫자로 표시되는 핸드폰 시계 대신 그들은 무브먼트 시계를 골랐다. 그들에게 시계는 유일한 사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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