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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는 그녀가 성자로 남아 있기를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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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는 그녀가 성자로 남아 있기를 원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9.02.25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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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처럼 리처드도 그녀가 어느 날 훌쩍 병동을 떠날 것을 염려했다.

아니 기대했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한 것은 그녀가 이곳에서 일한 지가 벌써 3년이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간은 길었다.

그녀의 손을 잡고 떠난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리처드는 그녀도 이제는 남의 인생 대신 자신의 일생을 살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 시기가 무르익고 있는 시점이 바로 지금이라고 여겼다. 존경받던 성자가 죽어가는 환자의 손을 뿌리치고 병동을 박차고 나갔던 것처럼 그녀도 환자의 손을 놓고 그곳과 작별 인사를 하기를 바랐다.

리처드가 이런 마음을 품은 것은 그녀가 일을 그만두면 자신과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질 것을 염두해 두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녀가 너무 안쓰러웠다.

하루종일 힘든 일을 하고도 보상받지 못했으며 무엇보다 일의 종착점을 가늠할 수 없다는 점이다.

새로운 환자는 차고 넘쳤다. 병동은 늘 부족했으며 빈자리가 나는 순간 다시 채워졌다.

이 많은 환자들이 도대체 어디서 오는지 리처드는 궁금하지 않았다. 매일 사람들이 죽어 나가도 죽기 위해 사람들이 들어 왔다.

살기 위해 병동에 오는 것이아니라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서 였다. 가엾은 사람들이라고 리처드는 생각했다.

그 순간 리처드는 가슴 한쪽이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도 그러기 위해 병동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리처드처럼 죽기 위해 왔다가 살아남은 사람은 없었다.

병동이 생긴 이래 리처드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만큼 그곳은 이미 생명을 다한 사람이 마지막으로 인생을 돌아보는 종착지였다.

리처드는 그녀가 아니라도 그녀를 대신할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새로운 환자가 쉬지 않고 들어오는 것처럼 새로운 간호 인력도 꾸준했다.

비록 그녀처럼 장기간 하지는 못해도 한 두 달 길게는 일 년 정도 병동을 지키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인생의 색다른 경험을 위해서 혹은 속죄를 위해서 혹은 직업적으로 호스피스 병동에서 새로운 경험과 맞딱뜨렸다.

원해서든 원치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왔든 그들은 처음에는 열성적이었다. 자신이 환자의 마지막을 함께 한다는 어떤 숭고한 뜻에 스스로 감동 받기도 하고 환자의 말을 들어주면서 호기심이 발동하기도 했다.

그가 누구이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귀를 쫑긋 세웠다. 그래서 그들은 처음에는 얼굴빛에 생기가 돌고 발랄함이 넘쳐났다. 하지만 그런 상태는 오래가지 못했다.

죽음의 순간에 환자들은 언제나 생의 한가운데로 들어오기를 원했다. 죽는 것보다는 다시 살아나면 이런 것을 하고 싶다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미련이 가득한 그들이 어쩌지 못하고 잡은 손을 풀었을 때 봉사자들은 자신도 그렇게 되는 상황에 어쩔줄 몰라했다.

견디기 힘든 순간을 이겨내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어떤 사람들은 태연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냉정했다. 죽음의 길을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환자들은 가는 길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이런 봉사자들은 환자들에게도 도움이 되기보다는 영원한 안락의 방해자였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살고 싶은 욕망에 동참해 줄 때 그들은 편히 이승을 하직했으나 그러지 못할 때 그들은 힘들어했다.

죽는 것은 그들의 책임이 아니었다. 리처드는 그녀가 환자들에게 냉정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진짜 성자로 남아 있기를 바랬다. 그러기 위해서는 떠나야 할 시점을 정확히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이 그녀에게도 환자에게도 이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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