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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오누이라도 된 듯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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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오누이라도 된 듯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9.02.22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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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병동의 성자는 오래가지 못했다. 곧 그는 실증을 냈다.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쳤다. 자신도 죽을 마당에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가당치 않았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손을 잡고 애원하는 환자를 거칠게 뿌리치고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그가 다시는 병원에 돌아오지 않을 것을 예감했다.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은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다. 병동의 다른 호스피스 중 일부는 동요했다. 자신이 믿고 따랐던 성자가 어느 날 배신을 했을 때 받은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어떤 사람은 성자가 떠난 후 자신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며 그의 뒤를 따라 나갔다. 그녀는 묵묵히 그런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 어떤 내색도 없이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냈다. 사람들이 떠난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그녀는 더 열심히 몸을 놀렸다.

다른 사람이 돌봐야 할 환자를 자신이 맞게 됐을 때 그녀는 물론 환자도 당황했으나 곧 서로 친숙해 졌다.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었다. 환자 중 일부는 내일 세상을 떠날 것이고 또 일부는 지금 잡고있는 손을 놓는 순간 이승을 하직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자신의 모든 것을 서로에게 맡겼다. 그녀는 그들의 간절한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았다.

눈빛은 서로 달랐으나 대개는 대동소이했다. 어떤 이는 삶의 의지를 또 어떤 이는 지금 당장 가도 아쉽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삶의 의지를 보이는 사람도 하루 이틀이 지나면 모두 이제는 가야 할 때를 알고 조용히 기다렸다.

숭고한 순간이었다. 그런 순간을 자신이 그들과 함께 있다는 것이 그녀는 너무 감사했다. 가족이 해야 할 일을 자신이 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그들의 가족을 원망하지 않았다. 차는 속도를 냈다.

둘은 잠시 조용했다. 좁은 공간에서 서로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것은 어색하다고 표현해도 좋았다.

그러나 그녀는 개의치 않고 스쳐 지나가는 창밖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생각으로 인해 마음이 혼란하기보다는 차분했으며 이번 여행에서 그녀는 무언가 얻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저 자신이 현재 처한 위치를 바라보는 것으로 족했다.

리처드도 그런 그녀의 생각을 이해하는 듯했다. 자신이 혹 실수로 드러낸 남자의 본성이 있었다면 실책이었다고 참회의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그녀를 전과 같이 대하려고 노력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리처드는 그런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 단련된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도 둘만의 장기간 여행에 흔쾌히 동행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이 되자 둘은 되레 편함을 느꼈다. 마치 오누이라고 된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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