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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의 한 숨을 쉬고 몸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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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의 한 숨을 쉬고 몸을 흔들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9.01.29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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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두 사람은 점심식사를 했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다운타운의 한 곳에서 한국식 음식을 주문했다.

그녀는 굳이 한식을 고집하지 않았으나 리처드가 그렇게 했다. 세심한 배려를 그녀는 느꼈다. 김치와 전과 된장찌개가 식탁에 올아왔다. 리처드는 맛있게 먹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행복이 밀려왔다. 카운터에서 그는 이쑤시개를 찾았다. 그리고 한국인처럼 그것으로 잇새를 돌아가면서 쑤셨다. 둘은 마주보고 웃었다.

커피는 그녀가 사겠다고 그를 끌고 간 곳은 스타벅스 였다. 미국에서 미국문화를 제대로 맛보고 싶었던 그녀는 아메리카노를 앞에두고 리처드보다 더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지도를 펼쳐 들었다. 그들이 가야 할 곳이 미리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 가고 싶은 곳을 하나씩 찍기로 했다.

리처드는 라스베가스를 원했다. 그녀는 시카고를 선택했다. 뉴욕에서 어느 방향을 먼저 갈지는 거리를 기준으로 하지 않고 가위바위보로 했다. 리처드가 이겼다.

그러나 그는 라스베가스가 아닌 시카고로 방향을 틀었다. 그녀가 그 곳을 여행지로 꼽은 것은 한국에 있을 때 보았던 대청호 때문이었다. 그녀의 처가가 그곳에 있었다.

어린 시절을 보냈던 추억의 한자락이 이역 만리에서 갑자기 꿈틀거렸다. 그녀는 잔잔한 호수가 주는 마음의 평정을 그리워했다. 오대호가 있는 시카고를 고를 이유였다.

둘은 차를 몰았다. 한참을 달렸다. 미국은 생각보다 컸다. 시내를 빠져 나와 고속도로로 접어 들었으나 방향 표지판은 그녀가 가고자 하는 곳을 표시하지 않았다.

눈을 감기도 했고 뜨기고 했으며 간혹 창문을 열기도 했다. 리처드는 음악을 틀었다. 팝송이 나오다가 갑자가 가요가 흘러나왔다. 한국음악을 녹음해 두었던 리처드는 그녀에게 고향생각을 선물했다.

그녀는 옆으로 고개를 돌려 그에게 감사함을 표시했다. 말로 하지 않았으나 한 번의 눈웃음만으로도 리처드는 신이 났다. 그는 차의 엑셀을 강하게 밟았다.

성능좋은 오픈카는 제로벡을 0.1초에 끊기라도 하듯이 갑자기 앞으로 치고 나갔다. 전투기의 발진음 같은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녀는 몸이 앞으로 갔다가 갑자기 뒤로 쏠리는 느낌을 받았다.

슬로우, 슬로우. 그녀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달리던 리처드는 규정 속도를 유지했다. 그리고 안도의 한숨을 쉬고 몸을 흔들었다.

그녀도 긴장이 풀렸는지 이 노래는 한국에서 90년대 유행했던 노래라고 했다. 그리고 그 노래에 얽힌 이야기를 했다. 가수는 김현식이고 그는 33살에 요절했는데 그 전에 대마초 사건에 연루됐으며 사망원인은 간경화 때문이라고 했다.

리처드는 33살이라는 말에 충격을 받은 듯했다. 천재는 한국에서도 요절하는 모양이지? 어색한 분위기를 누르기 위해 그가 이렇게 말했을 때 그녀는 나의 모든 사랑이 떠나 가는 날은~ 하고 그 노래의 첫 소절을 흥얼거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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