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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故 임세원 교수를 애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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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故 임세원 교수를 애도하며
  • 의약뉴스 송재훈 기자
  • 승인 2019.01.14 06: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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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시작되던 어느 초겨울, 기자는 한 원로교수의 청춘과 마주 앉았다.

대한민국 의료계에 후배들이 감히 뛰어넘기 힘든 역사를 만들어왔고, 그보다 더 무수한 후학들을 양성했던 그는 뜻밖에도 의사로서 지나온 삶이 자기가 원했던 길은 아니었노라고 고백했다.

엄하디 엄했던 아버지의 강권으로 의학자가 됐다는 그는, 문학가라는 이루지 못한 꿈과 낭만을 찾아 방황했던 청춘을 소회하며 후학들을 향해 쓴소리를 던졌다.

가슴이 뜨거워야 할 의사들이 차가운 숫자(재물)에만 밝아지고 있다는 지적으로, “의학도는 이과(理科)가 아닌 문과(文科)에서 나와야 한다”는 일침이 더해졌다.

부족한 글재주에 열등감을 떨치지 못하고 늘 문학도를 동경했던 공대 출신의 기자에게, 현대인들의 감성 부족을 꼬집는 그의 일침이 영화 속 은교의 “공대생이 뭘 알아”라는 일갈만큼 섬뜩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언젠가, 기자가 만났던 인사들이 건낸 어록들을 차분히 정리할 기회가 있다면, 그 첫머리에 그의 일갈을 담겠노라고 가슴 속에 고이 간직했다.

그즈음이었다. 한 무리의 정신과 의사들이 매서운 숫자들을 들고 기자에게 나타난 것이.

그들이 들고 온 통계는 그간 기자들이 무심코 써내린 강력범죄 관련 기사 건수와 기자들 마음대로 피의자를 정신질환자라 진단한 기사의 비율, 그리고 실제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율과 일반인의 범죄율이었다.

수많은 기사를 하나하나 검색해 도출한 첫 번째 통계 속에는 강력범죄란 정신질환자이기에 가능한, 혹은 정신질환자이니 당연히 그랬을 것이란 편견들이 넘쳐났다.

하지만 두 번째 통계는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의 대부분은 일반인보다 범죄 실행능력이 부족하고, 실제 범죄율도 일반인보다 낮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그 많은 편견들을 엄중하게 꾸짖고 있었다.

그러한 편견들이 치료받고 보호받아야 할 정신질환자, 나아가 정말 위험해 관리가 필요한 정신질환자들을 치료의 사각지대로 내몰고 있다는 일갈이었다.

제발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을 거둬달라며 뜨거운 가슴으로 호소해도 들어주지 않자, 가장 앞서 편견을 만들고 있는 기자들에게 냉철한 통계를 들고 나와 읍소하기에 이른 것이다.

나아가 그들은 자신의 진료과명인 정신과에 대한 자부심을 거두고 정신건강의학과로 간판을 바꿨고, 이미 편견으로 가득 차버린 정신분열증이란 질환명을 조현병으로 바꿔가며 자신의 환자들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갖은 노력을 더했다.

심지어 찬바람이 가득했던 지난 연말에는 동료의 황망한 죽음을 접하고도 애통해할 겨를 없이 “이번 일로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을 갖지 말아달라”는 당부의 글을 먼저 썼다.

정작 가장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은 그들이었지만, 안전한 진료 환경을 외치기 전에 또 다시 편견으로 고통 받아야 할 환자들부터 감싸야 했던 것.

돌이켜보면, 오히려 차갑게 식은 가슴으로 냉엄한 통계마저 외면한 것은 우리들이 아니었을까.

생명이 꺼져가던 그 순간까지 소명을 이루지 못했음에 안타까워했을 故 임세원 교수의 명복을 빌며, 기자수첩 속에 남겨두었던 원로교수의 일갈에 부끄러운 마음을 더해 유가족들이 전한 임 교수의 바람을 적는다.

“우리 함께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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