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능후 복지부 장관이 의료사고 발생시 의무보고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에 대해 의료계에선 자율보고를 강화하는 편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은 지난 17일 경남 양산에서 일어났던 산부인과 분만 중 의료사고에 대한 청와대 국민청원 답변하는 자리에서 이 같이 밝혔다.
해당 청원은 지난 10월 18일에 시작됐으며, 청원에 따르면 지난 9월 분만 도중에 청원인의 아내는 자연분만을 시도하던 도중 의식을 잃었다. 산모는 20분 만에 대학병원에 이송됐지만 뇌사 상태에 빠졌고 아이는 태어난 지 이틀만에 숨졌다.
이에 청원인은 의료사고에 대한 정부의 대책을 묻기 위해 청원을 올렸고, 21만여명이 청원에 동의했다. 청와대 청원은 청원을 신청한지 한달 이내에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 청와대나 정부 관계자가 답변을 해야한다.
청원 답변을 위해 참석한 박능후 장관은 환자안전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 환자안전사고 발생시 의무보고를 골자로 한 입법안 등을 소개하며, 의료사고 보고를 의무화해야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박 장관은 “우리 사회에서 환자안전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한 논의가 이어져왔다. 2010년 9살 어린이가 백혈병 치료를 받다가 투약오류로 숨지고 3년 뒤에 감사원이 환자안전 수준 향상을 위해 의료오류 개선 시스템을 구축하라는 권고가 있었다”며 “국회와 입법토론회를 거쳐 2015년 환자안전법, 일명 종현이법을 제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환자안전법이 있지만 의료사고 보고는 의무가 아니라 일종의 권장사항”이라며 “그럼에도 이 법이 시행되고 난 뒤에 환자안전 사고 보고건수가 급격하게 늘었다. 의무사항으로 지정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그는 “중대한 사고에 대해서는 보고 의무를 부과하고 제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환자안전법이 국회에서 계류 중”이라며 “이 법이 통과되면 중대한 의료사고가 반드시 보고되고 환자 안전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한의사협회(회장 최대집)는 박능후 장관의 발언에 대해 반발했다.
의협 박종혁 홍보이사겸대변인은 “보고 의무화 등 처벌 위주로 간다면 환자 기피 현상을 초래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며 “자율신고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박 장관이 언급한 ‘환자안전법 일부개정법률안’은 5건의 법률안이 통합·조정된 개정안으로 잘못된 수술 또는 의약품 투여로 환자가 사망하는 등 중대한 환자안전사고가 발생한 경우 의료기관의 장이 이를 의무적으로 보고토록 한 것이 핵심이다.
지난 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상정된 환자안전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윤일규 의원이 제기한 이견을 수용, 법안심사소위원회로 돌려보내 재검토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당시 윤 의원은 “‘잘못된’ 수술이나 의약품 투여로 중대한 환자안전사고가 발생했다는 결론이 나려면 대개 수년이 걸린다. 언제 의무적으로 보고해야 하느냐”며 “환자를 보호하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모든 수술환자가 사망한 경우 등’이면 몰라도 지금 상태로는 법이 실질적으로 기능을 하는데 문제가 있다.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료계에서도 환자안전사고 의무보고에 대해 우려의 뜻을 표명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긴박하게 돌아가는 중중 환자 응급환자를 보는 진료 과목일수록 예측하지 못하는 모든 진료환경에 신고의무를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의료현실을 이해 못하는 법”이라며 “갈수록 규제 위주의 법이 발의가 되면 중증 고난이도 치료를 주로 하는 의료진들에게 심적 부담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결국 이런 의료계 분위기에서 더욱 암울한 분위기를 줄까 걱정”이라며 “근본원인을 개선해야 하는데 이런 처벌 위주의 법만을 만드는 국회에 아쉬운 생각이 든다”고 강조했다.
경기도 개원의 A씨는 “환자안전사고 보고 의무화와 관련된 정책과 개정안들은 의료현실을 무시한 포퓰리즘적인 정책이고 법안”이라며 “신고의무화가 되면 환자 안전에 대한 의무화가 아니라, 의사들이 공무원이나 그것을 이용한 파파라치들의 먹이감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