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넘어간다. 술술 넘어가는 술을 먹으니 몸이 축 가라앉는다.
마음도 그렇게 아래로 자꾸 내려간다. 마치 지옥의 어느 지점을 향해 뻗어 나가는 것 같다. 그러나 두려움은 없다. 끊는 물속에 담가지는 그곳에 가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내려간 곳은 지옥이 아니다. 천국도 아니고 그저 내 마음의 깊은 심연일 뿐이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병을 거꾸로 든다. 산정에서 절대자와 건배를 했던 그 순간보다 더 느리게 목을 축인다.
그 순간이 아주 오래전의 일처럼 까마득하다. 절대자는 사라졌다. 언제 또 절대자를 만날지 기약이 없다. 하지만 그는 또다시 내 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이별이 슬프지 않다. 나는 절대가가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지 않다. 그와 뒤풀이를 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지도 않는다. 절대자의 길이 있고 나의 길이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가는 길이 꼭 같을 필요는 없다. 나는 몸을 두로 기댔다. 무언가를 해 냈을 때는 좀 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바로 집으로 가기 전에 술집에서 이런 한가한 시간을 맞고 있다. 왁자지껄한 소음 속에서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나가고 들어왔다.
나는 주문한 안주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몸은 지쳤고 마음은 편안했으므로 취기가 서서히 오르기보다는 바로 올라왔다.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오는 시간이 빨랐다.
한 병을 더 시킬까 말까 잠시 고민했으나 술맛이 좋았으므로 한 병 더 먹기로 했다. 그때 마침 피자가 나왔다.
화덕피자라고 메뉴에는 나와 있으나 불의 냄새는 없었다. 화덕에 구워 화덕피자가 아니고 그냥 이름이 화덕피자인 모양이었다.
그 피자 위에 마요네즈가 뿌려져 있었다. 이리저리 굽은 모양이 마치 사방을 감싼 철조망과 같았다.
이제 땅에서 그런 것은 사라졌으므로 그것을 보기 위해서는 책의 사진이나 이런 음식의 양념으로만 연상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