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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미리 정해 놓은 곳으로 발 길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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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미리 정해 놓은 곳으로 발 길을 옮긴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9.13 0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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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자를 만나기 위해서는 먼저 연락을 해야 한다. 하지만 취해야 할 연락처가 없다는 것을 미리 밝혀 둔다. 그에게 전화 같은 것이 있을 수 없다. 당연히 핸드폰도 없다. 이런 점에서 절대자는 구시대 인물이 분명하다.

아니 한 세대 전의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다면 다음 방법을 찾아보자. 집으로 편지를 쓴다. 이 역시 불가능한 방법이다. 절대자의 주소를 알 길이 없다. 전화도 없고 편지를 부칠 주소도 없다. 그렇다면 직접 찾아 가봐야 한다.

절대자에게 따로 거처할 집이 있다면 좋겠다. 하지만 집도 절도 없다. 이럴 때는 난감한 상황에 처해있다고 표현한다. 나는 서울에서 김 서방을 찾을 생각은 없다.

그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말도 되지 않는 말을 믿어 보기로 했다. 왜, 이 것은 다른 사람도 아닌 나와 절대자와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갑자기 사막에 홀로 떨어진 어린왕자라도 된 기분이다.

절대자는 혼잡한 곳에서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외롭고 춥고 배고픈 곳에서 비참한 인간에게 다가올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그래서 사람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외진 곳을 찾아보고 화려한 곳 대신 소박하지만 깔끔한 장소를 두리번거린다. 절대자는 신이지만 신처럼 돼지우리 같은 곳을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

언젠가 그는 나에게 냄새에 민감하다는 사실을 넌지시 말한 적이 있다. 후각이 예민한 절대자는 돼지 똥에 익숙해져 있지 않다. 그 보다도 돼지의 꿀꿀 거리는 소리가 대화를 방해할까봐 그 것이 먼저 걱정이 됐다.

오래 기다림 끝에 이루어지는 소망이므로 정확히 의도하는 바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니 작은 바람소리만 들리고 그 바람에 묻혀 오는 치자 꽃 향기같은 것만이 존재하는 곳이어야 했다.

오래되서 바랜 옷이지만 깨끗하게 빨아 입었다. 신발도 그렇게 했고 머리도 단장했으며 손에는 시침이 멈춘 시계를 차고 가벼운 마음으로 내가 스스로 정해 놓은 장소로 발길을 옮긴다. 때는 바야흐로 걷기에 좋은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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