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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이 것은 그 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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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이 것은 그 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9.11 08: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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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선한 바람이 분다. 가을이 저기서 오고 있다. 여름이 간 자리에 가을이 들어차고 있는 순간은 경이롭다.

하늘은 높고 들판의 말은 하루가 다르게 살이 찌고 있다. 천고마비의 계절이 왔다. 이 순간이 이렇게 빨리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것은 지난여름이 참으로 무더웠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표현을 목이 마르고 허파에 바람이 들지 않아도 흥분해 있던 지난 시절에 써 먹고 싶어 안달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더웠네.'

과거형을 쓸 수 있다는 것은 현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세월을 뒤돌아보는 것은 가을이 왔을 때나 가능한 것이다.

드디어 기다리던 그 말을 내 뱉게 됐을 때 내 기분이 어떠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으로 믿는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세상은 살 만하다는 것이다. 지금이 그렇다는 말이다.

멀리 아파트의 숲 너머로 산등성이가 뚜렷하다. 이 정도라면 나안 시력이 겨우 0.7 정도인 일명 개 눈이라도 소리치지 않을 수 없다.

'보인다. 멀리 보인다.'

벌써 며칠 째 이런 날이 계속되고 있다. 이 것은 하늘이 움직이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해낼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그 것이 절대자가 힘을 쓴 결과라는 것을 안다.

절대자는 나의 불평이 극에 달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있었다. 땅에서 올라오는 지열 때문에 달리기마저 포기해야 했던 그 지난한 세월에 대한 보상을 해 주고 싶었을 것이다.

세상에서 포기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취미인 달리기를 접었을 때 나의 심정이 무너져 내렸다는 것을 절대자는 간파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시기를 보고 있었다. 저울에 달린 시계추를 보듯이 그 상황을 절단 낼 시간표를 보았던 것이다. 달리다가 포기하고 걸었을 때, 절대자는 그 시점이 바로 이 때다 라고 손가락을 튀기면서 하늘을 향해 이렇게 명령했다.

'부연 하늘은 가고 맑은 하늘만 와라. 세상의 모든 먼지와 찌꺼기는 사라지고 청명한 가을만 와라.'

절대자의 이 말은 절대적인 것이었으므로 누구도 그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하늘은 절대자의 말에 따라 순식 간게 하늘색으로 변했고 공기는 저절로 깨끗해 졌다.

절대자에 감사해야 할 순간이다. 이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지난 여름은 참으로 더웠네, 라는 말을 하는 동시에 절대자를 향해 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고개를 숙이고 주억거렸다. 세 번이나 그렇게 했고 일어선 후 다시 엎어지기를 반복했다. 이번에는 숫자를 세지 않았으나 세 번의 세 번 보다 더 많이 고개를 숙였고 다시 주억거렸다.

절대자가 이런 우스꽝스러운 짓을 좋아 하지 않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달리 그에게 어떤 보답을 할 수 있는가. 절대자는 감사 헌금이나 불심이라고 써놓은 돈 통에 돈을 넣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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