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4-04-26 00:17 (금)
100. 왔던 길을 되돌아 달려 나갔다
상태바
100. 왔던 길을 되돌아 달려 나갔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8.08.28 09: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은 한 바퀴를 더 돌기로 했다. 그럴 힘이 남아 있었다. 어느 순간에 호흡을 극한까지 올려 보고 싶었다.

턱에 차는 숨소리와 가슴에서 요동치는 심장의 박동소리를 크게 들은 지가 하도 오래 됐다. 마치 물위에 올라온 물고기처럼 제 먼저 죽는지도 모르고 팔딱팔딱 뛰듯이 그런 거친 소리가 필요했다.

몸을 돌리니 역한 냄새가 올라왔다. 머리가 지근 거렸다. 잘못 내린 결정인가 하다가 정 안되면 포기하자는 생각을 하면서 왔던 길을 되집어 달려 나갔다.

마음을 바꿨어도 변한 것은 없었다. 길은 여전히 그대로 였고 주변의 잡풀이 바람에 흩날리는 것도 여전했다. 새로 갈아 없고 뿌린 꽃씨가 제법 자라기 시작했다. 뒤늦은 초록의 향연도 그런대로 봐줄만 했고 새로 조성한 9 홀 짜리 골프 연습장도 깔끔하게 정리됐다.

멀리서 섹스 폰 연주 소리가 들렸다. 달은 휘영청 밝게 떠올랐으나 주변의 가로등이 너무 밝고 많아서 제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는 사람만이 달이 중천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블랙아웃이니 하면서 전기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공적인 전기는 함부로 썼다. 내 것이 아니라고 아끼지 않는 것은 국가나 개인이나 마찬가지였다. 저런 가로등을 중간에 하나씩 만 꺼놔도 가난한자의 에어컨 비용 정도는 충분히 대리라는 생각을 했다.

거리가 가까워 올수록 소리는 더 꺼져 갔고 섹스 폰을 받쳐주는 주변 음악들이 요란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마이크를 잡고 누군가가 따라 부르는 소리도 들렸다. 무슨 음악제 플랭카드를 걸고 동호회에서 나온 연주단 일행이다.

그들은 제법 손발이 맞았다. 네 명이서 한 팀을 이뤘는데 드럼까지 있었다. 멀리서 보아도 대충 나이가 들어 보였다. 은퇴를 하고 나서 돈은 있지만 쓸 데가 마땅치 않은 이들이 취미생활을 하고 있었다.

보아서 좋았다. 편히 앉아서 감상하라고 의자까지 넓은 공터에 깔아 놓았다. 노인들의 힘이 느껴졌다. 들어 볼까 하다가 이런 경험이 한 두 번이 아니었으므로 조금 더 달려 나갔다. 주차 공간이 넓게 펼쳐져 있었는데 차들이 없어 텅 비어 있었다.

말하자면 그 곳은 사방이 노출된 곳이었다. 누군가 바지를 까고 오줌을 누고 있었다. 잠시 고개를 숙이고 달렸으므로 서서 바지를 내리는 장면은 보지 못하고 오줌 줄기가 나가는 것이 보였다.

노인이었고 매우 짜증스러웠다. 은폐, 엄폐가 전혀 안 된 곳에서 보란 듯이 싸대고 있는 노인의 옆모습은 매우 천박했으며 굽은 등은 발길질로 한 번 걷어차일 대상이었다.

키 큰 갈대숲도 있고 조금만 내려가면 개천의 으슥한 곳도 있다. 그리고 불과 100미터 안에 깨끗한 화장실이 있다. 이런 노인은 가만히 둬서는 안 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